영단어 A to Z 소문수 목사 (사랑의교회)
‘임마누엘’이 무슨 뜻인가요?
12월에는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그러나 점점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퇴색되고, 왜 기뻐하며 무엇을 기억하고 보내야 하는 날인지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이런 때에, 주님의 자녀인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이름과 탄생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통해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더욱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오늘은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에 대해서 알아보자.
구약에 나타난 ‘임마누엘’
히브리어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마태복음이 기록되기 약 800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이사야 7장 14절에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기록돼 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의 패권을 가지고 있던 앗수르가 맹렬하게 위세를 떨치며 이스라엘 쪽으로 영토를 확장시켜 나갈 때, 아람왕 르신과 북이스라엘왕 베가가 화친을 맺고 앗수르의 세력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들은 남유다에게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남유다는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친 앗수르 정책을 펼친다. 분단된 국가였지만,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곁에 붙어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먹고자 했던 남유다가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먼저 남유다를 침공해 아하스를 폐위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좌에 앉히는 계획을 세운다.
아하스는 모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 살아남으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하스에게 이사야를 보내셔서 신적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 주신다. 처녀가 잉태해 아이를 낳게 된다는 약속은, 불가능한 일이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불가능한 상황에서 희망을 품게 하신 것이다. 이 예언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표이기도 했다. 유다 백성을 보호하심으로써 다윗 왕가를 보존하고, 그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보호하시겠다는 의지였다. 메시아의 도래는 하나님 나라를 열어 갈 구원 역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져야 할 약속이었던 것이다. 약속의 징표는 그대로 이뤄졌다. 위용을 떨치던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군대도, 또 당시의 모든 패권을 쥐고 있었던 앗수르와 이후에 일어난 수많은 강대국들도 모두 역사 속에 사라졌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서 지금도 하나님 나라는 확장돼 가고 있다.
약속의 성취 ‘임마누엘’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인간 역사에 보내셔서 구속의 장엄한 성취를 이루신다. 마태복음 1장 23절은 주의 사자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들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명령하며 시간을 뛰어넘어 이사야서와 마태복음을 연결 짓고 있다. 8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 예언은 비단 이사야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주전 4세기에 기록된 미가서 5장 2절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이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다. 베들레헴을 좀 더 살펴보면 재밌는 그림 몇 조각이 더 맞춰진다. 누가복음 2장으로 가 보면, 마리아와 요셉은 갈릴리 나사렛에 머물고 있었다. 만약 만삭의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출산을 하게 된다면 미가서의 말씀은 빗나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로마의 황제였던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으로 모든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을 정리해야만 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말씀이 그대로 성취됐다.
우리가 성탄을 기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역사는 자생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하고 섬세한 계획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이 기쁨이고, 지금도 그분의 손길 안에 있는 것이 기쁨이다. 그리고 아직 이뤄지지 않은 수많은 예언 역시 정확하게 성취될 것을 믿기에 우리는 기쁠 수 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탄생을 기쁨으로 축하하는 성탄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