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20년 07월

태동하는 초대 교회와 과학

과월호 보기 임준섭 목사 (사랑의교회, 분자생물학 이학 박사)

 누군가를 잘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돼요. 과학을 신앙적으로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죠. <큐틴> 친구들이 미래의 영적 리더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기독교와 과학이 함께한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해요. 역사를 아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그럼, 가장 먼저 교회가 탄생했던 시기의 과학 이야기로 출발해 볼까요?


교회의 탄생
교회가 처음 생겨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인, 대략 1세기 중엽이에요. 이때부터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4세기 중엽까지를 흔히 초대 교회의 시대라고 해요.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 등 여러 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지고 확산됐는데, 그 과정에서 두 가지 큰 어려움이 있어요.
첫째는 로마의 극심한 박해였어요. 당시 로마는 황제 숭배 사상을 강조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예수님만 구원자로 믿는 교회를 핍박했어요. 네로 황제나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특히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를 당했죠.
둘째는 수많은 이단의 출현이었어요. 당시 대표적인 이단은 영지주의였는데, 이들은 그노시스(gnosis)라고 부르는 지식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이 주장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기독교와는 본질적으로 달랐죠. 로마의 박해와 영지주의 같은 이단들이 가져온 혼란 때문에, 이 시기 초대 교회가 참되고 바른 신앙을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어요.


초대 교회 시대에 과학은?
초대 교회가 발흥한 1세기 전후의 고대 사회에서 과학은 지금처럼 주목받는 학문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당시 고대 사회를 지배하던 로마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죠. 로마는 주로 법과 윤리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또한 이단인 영지주의도 물질세계를 악하게 여겨 과학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겼고요. 결국 당시 사람들은 의학과 천문학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자연 과학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듯해요.
한편 당시에는 철학과 과학이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아서 철학자들이 과학자와 같은 역할도 했어요. 대표적인 인물로 플라톤이 있는데, 그는 이 세상이 ‘보이지 않는 완전한 이상 세계의 불완전한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불완전하더라도 이 세상의 자연 만물은 일정한 체계와 질서를 가지고 있어서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과학적 접근이 필요했죠.


서로 도왔던 초대 교회와 과학
자연에 대한 과학적 관심이 크지 않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초대 교회도 자연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차츰 “자연은 숭배되어도 안 되지만, 거절되어서도 안 된다”라는 통일된 의견을 갖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피조물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 숭배받으셔야 한다는 거예요.
한편, 초대 교회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은 자연을 통해 얻은 과학적 지식들이 하나님을 드러내고 성경의 말씀과 신앙을 지키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했어요. 예컨대, 초대 교회의 교부(敎父) 중 한 사람인 그레고리우스(Gregorius)는 자연 세계를 깊이 살피고 연구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 수 있다고 믿었어요. 또한 초대 교회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지도자로 손꼽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깊이 묵상하며 과학적 지식을 잘 활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결국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잘 믿을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싶다면 그분의 창조물인 자연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이처럼 초대 교회와 과학은 서로를 도우며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소중한 첫걸음을 내디딘 거예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와 과학이 서로 대적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데, 상부상조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소중한 역사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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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잘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돼요. 과학을 신앙적으로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죠. <큐틴> 친구들이 미래의 영적 리더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기독교와 과학이 함께한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해요. 역사를 아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그럼, 가장 먼저 교회가 탄생했던 시기의 과학 이야기로 출발해 볼까요?


교회의 탄생
교회가 처음 생겨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인, 대략 1세기 중엽이에요. 이때부터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4세기 중엽까지를 흔히 초대 교회의 시대라고 해요.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 등 여러 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지고 확산됐는데, 그 과정에서 두 가지 큰 어려움이 있어요.
첫째는 로마의 극심한 박해였어요. 당시 로마는 황제 숭배 사상을 강조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예수님만 구원자로 믿는 교회를 핍박했어요. 네로 황제나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특히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를 당했죠.
둘째는 수많은 이단의 출현이었어요. 당시 대표적인 이단은 영지주의였는데, 이들은 그노시스(gnosis)라고 부르는 지식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이 주장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기독교와는 본질적으로 달랐죠. 로마의 박해와 영지주의 같은 이단들이 가져온 혼란 때문에, 이 시기 초대 교회가 참되고 바른 신앙을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어요.


초대 교회 시대에 과학은?
초대 교회가 발흥한 1세기 전후의 고대 사회에서 과학은 지금처럼 주목받는 학문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당시 고대 사회를 지배하던 로마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죠. 로마는 주로 법과 윤리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또한 이단인 영지주의도 물질세계를 악하게 여겨 과학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겼고요. 결국 당시 사람들은 의학과 천문학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자연 과학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듯해요.
한편 당시에는 철학과 과학이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아서 철학자들이 과학자와 같은 역할도 했어요. 대표적인 인물로 플라톤이 있는데, 그는 이 세상이 ‘보이지 않는 완전한 이상 세계의 불완전한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불완전하더라도 이 세상의 자연 만물은 일정한 체계와 질서를 가지고 있어서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과학적 접근이 필요했죠.


서로 도왔던 초대 교회와 과학
자연에 대한 과학적 관심이 크지 않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초대 교회도 자연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차츰 “자연은 숭배되어도 안 되지만, 거절되어서도 안 된다”라는 통일된 의견을 갖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피조물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 숭배받으셔야 한다는 거예요.
한편, 초대 교회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은 자연을 통해 얻은 과학적 지식들이 하나님을 드러내고 성경의 말씀과 신앙을 지키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했어요. 예컨대, 초대 교회의 교부(敎父) 중 한 사람인 그레고리우스(Gregorius)는 자연 세계를 깊이 살피고 연구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 수 있다고 믿었어요. 또한 초대 교회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지도자로 손꼽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깊이 묵상하며 과학적 지식을 잘 활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결국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잘 믿을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싶다면 그분의 창조물인 자연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이처럼 초대 교회와 과학은 서로를 도우며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소중한 첫걸음을 내디딘 거예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와 과학이 서로 대적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데, 상부상조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소중한 역사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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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잘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돼요. 과학을 신앙적으로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죠. <큐틴> 친구들이 미래의 영적 리더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기독교와 과학이 함께한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해요. 역사를 아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그럼, 가장 먼저 교회가 탄생했던 시기의 과학 이야기로 출발해 볼까요?


교회의 탄생
교회가 처음 생겨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인, 대략 1세기 중엽이에요. 이때부터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4세기 중엽까지를 흔히 초대 교회의 시대라고 해요.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 등 여러 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지고 확산됐는데, 그 과정에서 두 가지 큰 어려움이 있어요.
첫째는 로마의 극심한 박해였어요. 당시 로마는 황제 숭배 사상을 강조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예수님만 구원자로 믿는 교회를 핍박했어요. 네로 황제나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특히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를 당했죠.
둘째는 수많은 이단의 출현이었어요. 당시 대표적인 이단은 영지주의였는데, 이들은 그노시스(gnosis)라고 부르는 지식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이 주장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기독교와는 본질적으로 달랐죠. 로마의 박해와 영지주의 같은 이단들이 가져온 혼란 때문에, 이 시기 초대 교회가 참되고 바른 신앙을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어요.


초대 교회 시대에 과학은?
초대 교회가 발흥한 1세기 전후의 고대 사회에서 과학은 지금처럼 주목받는 학문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당시 고대 사회를 지배하던 로마는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죠. 로마는 주로 법과 윤리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에 관심이 있었어요.
또한 이단인 영지주의도 물질세계를 악하게 여겨 과학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겼고요. 결국 당시 사람들은 의학과 천문학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자연 과학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듯해요.
한편 당시에는 철학과 과학이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아서 철학자들이 과학자와 같은 역할도 했어요. 대표적인 인물로 플라톤이 있는데, 그는 이 세상이 ‘보이지 않는 완전한 이상 세계의 불완전한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불완전하더라도 이 세상의 자연 만물은 일정한 체계와 질서를 가지고 있어서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과학적 접근이 필요했죠.


서로 도왔던 초대 교회와 과학
자연에 대한 과학적 관심이 크지 않았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초대 교회도 자연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차츰 “자연은 숭배되어도 안 되지만, 거절되어서도 안 된다”라는 통일된 의견을 갖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피조물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 숭배받으셔야 한다는 거예요.
한편, 초대 교회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은 자연을 통해 얻은 과학적 지식들이 하나님을 드러내고 성경의 말씀과 신앙을 지키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했어요. 예컨대, 초대 교회의 교부(敎父) 중 한 사람인 그레고리우스(Gregorius)는 자연 세계를 깊이 살피고 연구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 수 있다고 믿었어요. 또한 초대 교회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지도자로 손꼽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깊이 묵상하며 과학적 지식을 잘 활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결국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잘 믿을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싶다면 그분의 창조물인 자연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이처럼 초대 교회와 과학은 서로를 도우며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소중한 첫걸음을 내디딘 거예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와 과학이 서로 대적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데, 상부상조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는 소중한 역사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