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이야기

2024년 03월

언더우드, 한국 선교의 아버지

선교사이야기 김예성 목사

<큐티프렌즈> 친구들!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한 사람을 알고 있나요? 맞아요. 라이트 형제예요. 또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사람은 누구일까요? 1969년 미국에서 발사한 우주선인 아폴로 11호에 타고 있던 닐 암스트롱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한 최초의 선교사님은 누구일까요?

 

″왜 너 자신이 가지 않느냐?″

지난 호에서 배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언더우드 선교사님 부부를 비롯해, 그 맏아들 부부, 맏손자까지 묻혀 있어요.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어떤 분이길래 모든 가족이 한국에 묻힌 것일까요?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 이름 원두우)는 1859년 7월 19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언더우드가 열세 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어요. 총명했던 언더우드는 뉴욕대학교와 네덜란드 개혁신학교를 졸업해 목사가 되었어요.

 

언더우드는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의학과 인도어를 공부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언더우드는 서양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을 접하게 되었어요. 1,300만 명의 사람이 살고 있는 한국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언더우드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어요. “왜 너는 한국을 위해서 그 땅으로 가지 않느냐?”

 

언더우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1884년이 되자 미국 북장로교선교부는 언더우드를 최초의 한국 선교사로 임명했어요. 그렇게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맨 처음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선교사님 중 한 명이 되었어요.

 

최초, 최초,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 선교사님을 ‘한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해요. 한국 선교 역사상 ‘최초’라는 이름이 붙는 많은 일을 하셨기 때문이에요. 사실 한국에서 시작된 근대 교육은 모두 선교사님들이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요. 차근차근 살펴볼까요?

 

교육에 큰 꿈을 가졌던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먼저 한국 최초의 고아원을 세웠어요. 그리고 고아원 안에 근대식 학교를 세워 수많은 인재를 길러 냈어요. 이 학교가 지금의 경신고등학교예요. 도산 안창호, 우사 김규식 등 수많은 독립투사의 모교이기도 하지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금의 대학에 해당하는 고등 교육 기관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해,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치며 민족주의 교육에 힘썼어요. 후일 연희전문학교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와 통합해 지금의 연세대학교가 되었답니다.

 

또한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1887년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를 개척했어요.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집에서 14명의 성도로 시작한 정동교회는 새문안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요.

 

그뿐 아니라,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성서번역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었으며, 그동안 낱개로 돌아다니던 찬송가를 150장으로 묶어 책으로 만들어 낸 최초의 선교사였어요.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한국의 친구 언더우드 가족

언더우드 선교사님 부부는 당시 서양 사람을 배척하던 분위기에서도 꿋꿋이 복음을 전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보살폈어요. 아들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한국 이름 원한경)는 일본이 저지른 제암리 학살 사건을 외신에 알린 분이에요. 또한 연희전문학교 교장이 된 후에는 한국어 교육을 금지하던 일본에 맞서 교수들을 보호하는 등, 소망이 보지 않던 어두운 식민지 시절 한국을 사랑하고 보호한 친구였어요.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손자 또한 목사님이 되어 한국 전쟁에 참전하고 기독교 대학을 세우는 등 한국을 떠나지 않았답니다. 총 120년, 4대에 걸쳐 한국에서 복음을 전한 언더우드 선교사님 가족의 헌신으로 오늘 우리나라의 수많은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지요.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뿌린 작은 씨앗은 작은 나라 한국이 지금의 한국이 되는 데에 큰 역할을 감당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에 순종하는 것은 이처럼 놀라운 일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으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큐티프렌즈> 친구들이 되길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