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이야기 김예성 목사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는 신분 제도가 있었어요.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보통 왕과 귀족과 같은 상류층 계급, 상인이나 농부와 같은 평민 계급, 노비와 같은 천민 계급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노비보다 더 천대받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잡아 파는 일을 하는 백정이었지요. 백정들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귀한 사람이었음에도, 살생을 해 먹고산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멸시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어요. 그러나 낮은 곳을 향하는 예수님의 복음은 결국 백정들에게도 전해져, 이들의 삶을 바꾸었답니다. 가장 낮은 이들에게 가장 귀한 복음을 전한 선교사님의 이야기, 궁금하지요? 이번 호에서는 사무엘 무어 선교사님을 만나 보아요~!
신분에 상관없이 복음을 전한 사무엘 무어
사무엘 무어(Samuel Forman Moore, 한국명 모삼열)는 1846년에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무어는 시카고의 매코믹신학교를 다니던 중 언더우드 선교사님을 만나 깊은 감화를 받았어요. 그러면서 자신도 한국에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열정을 품게 된 무어는 서른두 살이 되던 해, 드디어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했어요.
한시라도 빨리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무어 선교사님은 한국말을 열심히 배워 꾸준히 노방전도를 다녔어요. 무어 선교사님은 3개월 동안 무려 60개가 넘는 마을에 복음을 전하고, 1,000km가 넘는 거리를 걸으며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증거했어요. 무어 선교사님은 25개나 되는 교회를 개척하고 학교를 세워 교육에도 힘썼는데, 이중 곤당골(지금의 소공동)교회가 있었어요.
복음 앞에 차별은 있을 수 없다!
어느 날 곤당골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던 학생 봉출이는 엉엉 울며 무어 선교사님을 찾았어요. 장티푸스에 걸린 아버지가 위독했지만 의사에게 진찰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봉출이네 가족은 백정이었던 까닭이었지요. 이를 딱하게 여긴 무어 선교사님은 고종 황제의 주치의로 일하던 에비슨 선교사님에게 부탁해 봉출이의 아버지를 고쳐 주었어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황제를 치료해 주는 의사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백정을 돌보아 목숨을 구해 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백정 박 씨는 아들만은 백정으로 살게 하기 싫어 공부를 시키고 싶었어요. 그러나 백정의 자식을 받아 주는 곳이 없어 곤당골교회에 보내며, 공부만 하고 절대 예배는 드리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였던 박 씨는 크게 감동했어요. 그래서 곤당골교회에 나가며, 세례도 받고 ‘성춘’이라는 이름도 새로 얻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양반 성도들이 백정과 같은 교회에 다닐 수 없다며, 박성춘을 쫓아내라고 요구한 거예요. 무어 선교사님은 복음 앞에 차별은 있을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고, 이들은 따로 교회를 세워 나갔어요.
그러나 후에 곤당골교회는 이들과 다시 연합하며 승동교회로 이름을 바꾸었어요. 심지어 갈등의 불씨였던 박성춘이 초대장로로 선출되는 벅찬 감동이 있었답니다. 승동교회는 여운형, 이동녕 등 독립운동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인재를 배출했으며, 지금까지도 서울의 중심인 종로에서 한국 역사와 함께하며, 한국 교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어요.
낮은 자를 향한 복음의 열매
한편 박성춘의 아들 봉출이는 ‘서양’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어요. 박서양은 제중원의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를 1회로 졸업하고,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며 환자를 치료했어요. 그러다가 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자 중국으로 이주해 병원과 교회, 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을 지원했어요. 그뿐 아니라 박서양 자신도 독립군에 입대해 군의관으로 독립운동에 힘썼답니다.
복음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무어 선교사님의 신념은 멸시받던 백정과 천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이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차별을 없애는 것에 일조하는 열매를 맺었어요.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아닐까요? 예수님의 뜻에 따라 주변을 사랑하고 섬기는 <큐티프렌즈> 친구들이 되길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