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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깨 23 호

새벽을 깨우는 산돌교회만의 진풍경

2004년 05월 신민철 목사

전남 여수는 인구20만의 소도시이다.1970년 후반에 들어선 인근 여천공업단지로 다소 활기를 찾았지만 아직은 여러모로 개발의 여지가 남아있는 지역이다.이곳에 120여개의 교회가 있다.그리고 그 가운데 한교회,여수 산돌교회는‘제자훈련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이것은 여수지역이 제자훈련이라는 낯선 이름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왜 이곳에서 제자훈련하는 교회를 찾기 힘든 것일까.마치 이물음에 대답하기 위한 것처럼 우뚝 서있는 교회,여수 산돌교회를 찾아가 본다.

산돌교회(담임 신민철목사)가 이곳에 세워진 것은 11년전의 일이다.개척한 목회자는 인근 애양원의 손양원 목사를 기념하며 그의 호를 따서‘산돌’이라는 교회이름을 지었다고 한다.평신도생활을 거쳐 뒤늦게 목회의 길에 들어선 신민철 목사는 광주시에서 부교역자 시절을 보내고 6년 전에 이곳으로 왔다.
훈련목회의 꿈을 안고 있던 그에게 사랑의 교회 제자훈련은 큰 도전이 되었다.이미 여러 가지 성경공부 프로그램에 익숙해 있던 교인들도 제자훈련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12기 세미나를 다녀와서 바로 제자반을 모집했다.장로와 안수집사들로 남자 한반,그리고 여자반 두 반을 신목사가 직접 인도했다.1기 제자반이 계속되는 동안 교회는 새로운 부지에 건축을 시작했다.아무리 분주하여도 제자훈련만은 계속해야 한다는 신목사의 신념이 새벽으로,늦은 밤으로 모임을 계속하게 만들었다.담임목사의 확고한 인도에 교인들도 제자훈련에 다른 성경공부와는 다른 우선순위를 두게 되어 모임은 별 어려움 없이 계속 되었고 사역반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역반이 계속되는 동안 2기 제자반이 시작되었고 시간에 쫓긴 신목사가 제자반을 여교역자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2기 남자반은 신목사의 인도로 계속했지만 여자 세반의 경우 여교역자를 거쳐 사역반부터 신목사가 맡았는데 많은 수가 탈락했을 뿐 아니라 제자훈련의 성격도 다소 변질되고 말았다.
“여러 가지 형편상 불가피 했지만 교회 안에 제자훈련이 채 성숙되기도 전에 부교역자에게 맡긴 것은 저의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작년부터 그들을 맡아 사역반을 인도해보니 많이 다르더라구요.어떤 이유로든 담임목사가 제자반을 놓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입니다.저의 경우는 1기 제자훈련을 돌아볼 때 교인들의 변화나 섬김의 열매들이 있지만 참으로 미숙했다고 생각됩니다.무엇보다도 지도자인 저 자신이 부족했지요.제자훈련을 하면서도 계속적인 자기개발과 영적인 공급이 목회자에게는 중요한 일이라고 느낍니다.자주 서울에 올라가서 배우고 여려 교회의 훈련을 참고로 했는데 하면 할수록 더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제자훈련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작년9월부터 시작된 사역반들은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한다.그 훈련의 현상을 보기 위해 기자는 여수산돌교회를 찾아갔다.

1996년 1월30일.화요일 오전10시.
여수산돌교회 1층 신목사의 목회실에는 8명의 훈련생들이 정확하게 모였다.한 달가량의 방학이 끝나고 모이는 새학이 첫모임날이었다.3,40대 여집사들이 대부분인 이들은 교회에서 꽤 먼 거리에서 서둘러 참석한 이도 있었다.인상적인 것은 모임장소였는데 담임목사의 서재를 선뜻 개방한 것도 놀라웠지만 방 한가운데 놓여있는 회의용 탁자가 제자훈련을 위해 준비된 장소임을 보여주고 있었다.훈련생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신목사로부터 방학기간동안의 숙제를 점검받았다.첫모임이라서 그런지 엄격한 신목사의 점검에 분위기가 다소 딱딱해진 것 같았다.
“여러분,늘 말씀 드리지만 매일 큐티와 성경읽기 설교요약 암송 등의 숙제는 제자훈련의 핵심이기 때문에 제가 양보하지 않겠습니다.오늘 미흡하신 분들은 다음에 꼭 최선을 다해 주세요.”
숙제점검에 덧붙이는 신목사의 한마디.그러나 곧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는 신목사의 아이디어는 방학기간 동안의 일들을 나누는 교제로 이어진다.훈련생들이 나누는 이야기들 속에서 그들의 삶이,기도제목들이 쏟아진다.함께 울고 웃는 가운데 모여 앉은 그들의 마음이 금방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거기에는 중간중간 신목사의 솔직한 나눔들이 더해진 이유도 있었다.자녀문제,부부와 시댁문제,영적생활의 부진함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자신을 드러낸 이 시간을 신목사는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의 순서로 맺었다.
이제 사역훈련 교재를 펴고 말씀 앞에 앉는 시간이 1시간 반가량 이어졌다.교제와 중보기도로 활짝 열린 훈련생들의 마음이 준비해온 교재내용을 따라 나누어졌다.리더인 신목사는 최소한의 참여로 훈련생들의 귀납법적인 접근을 도왔다.제자반과 4개월 남짓의 사역반 경험이 이미 이들에게는 훌륭한 소그룹으로 자랄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일까.

찬양과 기도로 모임을 정리한 뒤에는 훈련생들과 기자의 질의 응답시간이 이어졌다.다른교회에서도 제자훈련은 이렇게 힘든건가요?하는 어느 참석자의 애교섞인 푸념에 모두가 웃고 말았다.그러나 숙제가 너무 힘들다.교재가 너무 어렵다,큐티를 매일 하는 것이 힘들다..등등의 푸념 뒤에는 모두가 그래도 제자훈련받는 것의 축복과 변화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이제 곧 평신도 지도자가 될 이들은 마음에 부담도 있다고 했다.목사님처럼 우리도 한 영혼 한 영혼을 섬기고 사랑으로 돌볼 수 있을지에 대해 이들의 이‘아름다운 부담’이야말로 제자훈련의 귀한 열매를 약속하는 듯 했다.

‘배우지 않으려면 가르쳐라’이런 도전적인 메시지를 신목사는 강단에서 계속 던져 왔다.그리고 제자훈련의 가장 첫 열매는 하나님과 자신이 회복되고,가정이 회복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로 교인들의 삶을 도전해왔다.그래서 이 교회에는 유난히 남자교인들이 활발하다.제자훈련도 남자반이 더욱 활성화되어 있다.요즘도 월요일 새벽5시면 어김없이 졸린 눈을 비비면서 나타나는 남자반 교인들.그들의 변화된 모습에 아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한다.뜨거운 오뎅국을 만들어 온가족이 대접하러 따라나오는 집도 있다고 하니 새벽을 깨우는 산돌교회만의 진풍경이라 하겠다.
이제 산돌교회는 훌륭한 교회건축을 끝낸교회일 뿐 아니라 날로 영혼들이 새롭게 변화되는 제자훈련으로 젊어지는 교회이다.
“이제 시작이지요.앞으로 10년을 바라봅니다.결코 조급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가장 문제는 저 자신이겠지요.토양이나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개간하고 일구어갈 목회자가 관건이니까요.교회주변에 신시가지가 형성되어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올 한해는 수료자들을 전도와 양육리더로 세우려 합니다.훈련시킨 그들을 좋은 사역의 장으로 이끌어주는 일도 목회자의 몫입니다.”

신목사의 바램은 이제 교인들을 넘어서 그들이 이루는 제자들의 공동체로 산돌교회가 바로서서 이 지역의 교회들을 위해서 제자훈련을 나누어주고 함께 자라기를 기도하고 있다.제자훈련을 통해서 신목사의 비전에는 산돌교회라는 한 지역교회를 넘어 선 주님의 교회들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