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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깨 31 호

나의 제자훈련을 돌아보며

2004년 05월 조현용 목사(목포 빛과 소금교회)

에베소에 도착한 사도바울이 거기서 만난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고 묻자, 제자들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9:1)” 고 대답했던 것처럼 “제자훈련을 하십니까? 아니요 나는 제자훈련에 대해 들어 본적도 없습니다” 라고 대답해야 했던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1989년에 “제7기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광인론을 비롯한 여러 강의를 듣고, 사랑의 교회라는 제자훈련의 현장을 보면서 “아!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했던 성경적인 목회가 바로 제자훈련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저는 교회로 돌아와서 즉시 제자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가져온 “새가족 모임” 교재를 가지고 주일 낮 예배 시간에 전 교우 대상으로 새가족 공부를 실시한 후 제자훈련에 대한 상당한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다고 자평한 저는 곧바로 일곱 개의 제자반을 조직하여 전 교인 제자훈련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제자훈련이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낙오자나 결석하는 훈련생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어 강하게 밀어 부쳤으니 심지어 아이를 출산하고 몸조리를 하고 있는 훈련생을 찾아가 제자훈련을 보충할 만큼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리한 훈련을 하다 보니 제게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쉴 틈 없이 목을 사용한 결과 성대에 결절이 생겨 성대 결절 제거 수술을 받고 두 달 정도 말을 못하는 벙어리 신세가 된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는 뒤쪽에 앉아서 “과연 앞으로 정상적인 목회가 가능할까?” 하며 염려하였으니 기세 좋게 출발한 7개의 제자반과 섬기던 교회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당분간은 숨도 크게 쉬지 말라는 주치의의 신신당부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 제자훈련의 맛을 본 저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주여! 믿습니다” 하면서 다시 제자훈련을 시작하였고 그 동안의 공백을 만회할 요량으로 더욱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훈련생들은 회개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변화되고, 교회는 좋은 소문과 함께 성장하는 일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임 교역자를 축출하는 등 교회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던 몇 안되는 기존 제직들과 그 친척들은 좋은 교인들이 등록하고 숫자가 늘어가면서 교회가 교역자 중심으로 든든히 세워져가자 주도권 상실을 걱정했던지 제자훈련을 반대하면서 교회 출입문에 못질을 하고 교인들의 출입을 봉쇄하게 되어 저는 더 이상 그 교회에서 목회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목회 할 교회가 없어졌지만 저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그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우리 집 좁은 방에서 제자훈련을 계속하는 중에 주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교회를 설립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빛과 소금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오늘까지 제자훈련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지난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동역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동안 나 자신과 주변 동역자들의 제자훈련을 보면서 생각해 왔던 몇 가지를 적어 보려고 합니다.

1.목회자들의 제자 훈련에 대한 오해
진정 바람직한 제자훈련을 위해서는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 자신이 제자훈련의 본질을 알아야 됩니다. 제자훈련은, 평신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훈련하여 주님처럼 하나님이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목회의 본질이지, 목회자의 제자나 질 좋은 규격화된 교인을 만들어 내는 목회의 방편이 아닙니다.
물론 성숙한 제자는 목회자의 진정한 동역자가 되고 순종과 섬김의 모범을 보이며 적극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자훈련 중이거나 앞으로 실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의 본질을 간과하고 제자훈련을 교회부흥의 한 방편으로 효과적인 성경 공부의 한 프로그램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제자훈련은 목회자의 사람을 만들거나 목회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목회관에 편중 된 제자를 양산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교회를 병들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제자훈련을 통하여 목회에 유익이 되는 좋은 평신도 지도자를 키워보겠다는 생각은 제자훈련을 시도하는 목회자들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기대일 것입니다.
제가 제자훈련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던 이유는 전술한 내용대로 당시의 교회 형편에서는 제자훈련으로 교인들을 변화시켜 성경적인 목회를 하지 않으면 달리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진행해 가면서 옥한흠 목사님의 “평신도를 깨운다”를 비롯한 참고서적들을 읽고, 갈 62 모임, 지역모임 등에 참석하면서 저의 목회철학을 정립하고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는 일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특별히 지난 1996년에 섬기는 교회를 휴무하고 사랑의 교회에서 2개월여 동안 탐방목회를 했던 것은 커다란 유익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자훈련 지역모임등 제자훈련에 관한 것이라면 열심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는 배우는 자이어야 한다”는 핸드릭슨의 말을 기억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계속해서 배우고 경험하면서 좀 더 바람직한 제자훈련으로의 궤도를 수정 보완하고 있지만, 저는 지금도 너무나 부족한 종일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훈련은 목회의 근본이요 본질 그 자체임을 확신하기에, 훈련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철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우는 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된 제자훈련 하시기를 희망하신다면 먼저 자신이 배우기를 기뻐하는 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제자훈련의 과욕에 따르는 문제들
제자훈련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목회의 본질입니다. 이것을 아는 목회자는 제자훈련을 시작할 때 큰 희망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시작하게 되기에 때로는 성급하거나 과욕을 부릴 수 있습니다. 자갈과 잡초가 널려 있는 밭에 씨부터 뿌리는 농부같이, 교회의 분위기와 흐름이 제자훈련하기 좋은 옥토로 바꾸어지기 전에 일단 제자훈련을 시작부터 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쇠뿔은 단김에 뽑아야 한다”지만, 제자훈련은 단숨에 뽑을 수 있는 쇠뿔과 같은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물론 무한정 토양만 다듬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토양을 다듬는 동시에 제자훈련의 씨를 뿌리는 작업을 병행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섣부른 제자훈련을 강행하면서 적잖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저는 그때의 일이 큰 경험이 되어 그 후로는 종종 항존 직원 전체 또는 제자훈련을 받지 않는 직원들과 교회 학교 전 교사들을 제자훈련을 잘하는 교회로 보내서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교회를 탐방케 하여 제자훈련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며 도전을 받게 했습니다. 그 결과 훈련생의 조기확보가 용이해지는 등 교회에 제자훈련을 정착시키는데 큰 유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표적인 제자훈련의 과욕은 지도자의 과욕에 의한 과중한 제자반 운영입니다. 많은 설교와 심방을 계속해야 하는 담임목사가 몇 개의 제자반을 인도하면 목회자 자신의 영, 육에 큰 무리가 따르며 부실한 제자를 만들어 낼 위험이 적지 않습니다. 참된 제자훈련은 훈련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성령님의 변회시키는 능력으로 작은 예수로 만들어 내는 그야말로 해산의 수고가 필요한 일이기에 제자훈련은 양이 아닌 질이며, 인격과 삶이 변하여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훈련받은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는 능력 있는 제자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과욕을 부리지 말고 인격과 삶이 변화되는 성숙한 제자를 양육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3.제자 훈련생 선발의 문제
어떤 사람을 훈련생으로 선발하는가에 따라 제자훈련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좋을 만큼 훈련생 선발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시작하는 대부분의 교회 실정은 목회자의 입맛에 맞는 후보생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제자훈련 후보생의 조건을 구비한 성도들이 적을 뿐만 아니라, 제자훈련을 시키기에는 무리라 생각되지만 교회의 일꾼 된 직원들을 빠뜨릴 수 없어서,“그래도 목사가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이끌어 가면 웬만한 제자로 되지 않을까?” 하는 은혜스러운 생각으로 제자훈련을 시키게 되면, 때로는 이런 훈련생들 때문에 제자훈련의 수준과 질이 떨어지게 되고 제자훈련을 계속할 수도, 중단할 수도 없는 난감한 경우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 왜 밤새도록 기도하신 후 제자들을 부르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훈련생 선발의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훈련생의 선택이 제자훈련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하게 되는 이유를 온 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인데, 제가 섬기는 교회에 대학 교수를 비롯한 고학력 교인들이 상당수 등록하였습니다. 그 때 저는 “우리 주님께서 훌륭한 제자후보생들을 보내 주셨구나” 생각하면서 속으로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 후 옥목사님을 뵙는 자리에서 “목사님! 공부도 많이 하고 생활도 안정된 훌륭한 제자훈련 후보생들이 많이 등록하였습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릴 때, 옥 목사님께서 주신 말씀은 지금도 제 귀에 너무 생생합니다. “조목사! 사람 보지말고 주님께서 주신 제자가 누구인지 기도 많이 하라” 시면서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예언처럼 제가 기대를 걸었던 그 분들 중 아직도 여러 분이 만년 제자훈련 후보생입니다. 정말 우리 주님께서 택하신 제자가 누구인지 우리들도 주님처럼 밤새워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바람직한 훈련생이 부족하여 소수와 함께 몸부림 쳐야 하는 형편일지라도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주님의 은총을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할 때, 우리 주님이 주시는 열매는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4.제자 훈련은 성령의 능력으로 해야 한다.
제자훈련을 하는 분들은 다 경험하여 아는 내용입니다만, 참된 제자는 인도자의 능력에 의하여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역사 하시는 결과로 얻게 되는 열매입니다. 누가 훈련하는가에 따라 훈련생에게 나타나는 열매도 다르지만, 육신의 사람을 주님의 제자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은혜롭게 제자훈련을 시작하여 순향을 하며 좋은 열매를 맺어 가던 분들이 얼마 가지 못하여 훈련을 중단하거나 힘들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마음을 다하여 성령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약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행18장에 나오는 아볼로와 사도 바울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말 잘하고 성경에 능하고 열심 있던 아볼로와 외모와 말에는 졸하지만 성령충만 했던 사도 바울의 사역을 비교해 볼 때, 우리가 전적으로 의지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 금방 알게 됩니다. 새벽마다 무릎을 꿇고 훈련생들 하나 하나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성령께 그들의 영혼을 부탁드리는 기도는 말할 것도 없고, 제자훈련을 준비할 때나, 제자훈련을 진행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훈련생들에게 어떻게 역사 하시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 훈련이 되도록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성령께 결과를 맡기는 훈련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 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 이상으로 놀랍게 열사해 주시는 보혜사가 되어 주십니다. 제자훈련을 진행하다 보면 훈련자의 수고와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훈련생들의 문제점을 성령께서 은혜롭게 변화시켜 주심을 시간 시간마다 수 없이 체험하게 될 것이며, 전심으로 성령님을 의지하는 훈련자를 만난 훈련생들 역시 성령의 사람으로 견고하게 세워져 가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4:6)

5.한 사람 한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제자 훈련이어야 한다.
복음서는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겨 주셨는지를 확실하게 보여 줍니다. 주님은 무리와 제자를 구분하셔서 비유의 말씀을 제자들에게는 자세히 풀어 가르쳐 주셨고 생애 마지막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13:1) 주님을 본받아 제자를 훈련하는 목회자는 자신이 먼저 제자가 되어야 하고, 주님처럼 끝까지 제자를 사랑으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온전한 목회자가 없듯이 목사 앞에 온전한 성도가 얼마나 되겠습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제자훈련이 아니면 그 제자훈련은 연약한 성도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훈련이 되고 맙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의 능력과 갈보리 십자가의 사랑이지 잘못을 지적해 주는 책망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특별히 크리스천은 갈보리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았으며, 그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나를 위해 자신을 산 제물로 십자가에서 깨뜨려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연약한 나는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의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크리스찬입니다. 사실 제자훈련은 사랑훈련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감사하며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이 땅을 살아가게 하는 훈련입니다. 훈련생들의 약한 부분을 사랑하고 감싸주고 격려하지 못한다면 꼭 필요한 책망도 할 수 없고, 나아가서는 책망에 따른 참된 회개의 역사와 은혜의 열매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잘못을 책망하고 지적하기는 쉽지만, 이것으로는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목사가 훈련생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훈련생들은 어떤 책망도 기쁘게 들으면 삶의 변화가 따르게 됩니다. 제자훈련을 더 잘 해 보고 싶은 저의 가장 큰 소원은 훈련생들을 진실로 사랑하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6.제자훈련을 통하여 받은 축복들
제자훈련은 어떤 축복이나 목회의 유익을 추구하는 방편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목회자의 가장 큰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으로 제자훈련을 계속하면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교회는 사랑과 은혜로 충만하며 목회자는 훌륭한 평신도 동역자들의 전폭적인 협력을 받으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적인 목회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요!
개척 9년을 앞두고 있는 우리 교회는 그 동안 세 번에 걸쳐 장로를 선출하고 임직식을 거행하여 현재 5명의 시무 장로가 있는데, 그 동안 장로를 선출할 때마다 장로 후보들이 서로 겸양하여 후보를 사퇴하고 항상 적임자로 생각되는 분을 만장일치 박수로 선출하여 임직식을 거행함으로 온 교우가 함께 기뻐하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가운데 교회는 날이 갈수록 은혜로운 교회로 소문이 나고 온 교우들은 목사를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갈수록 교회가 크게 부흥하여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리라 믿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하는 목사인 제 자신도 은혜 중에 날이 갈수록 좋아져 가고 있음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는 날이 갈수록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리라는 희망을 온 교우가 함께 가지고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꿈과 희망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렇게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크신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신 주님께서 앞으로 남은 길도 더욱 잘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들과 아버지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라 명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제자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든 동역자들을 크신 능력으로 축복하여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에 힘을 다하는 교회마다 이런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