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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깨 32 호

목회자의 영성관리

2004년 05월 강준민 목사 (미국 로고스교회 담임목사)

목회자로서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의 영혼을 관리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주님께서 맡기신 양에게 꼴을 먹이고, 양을 돌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의 영혼을 누가 돌보아 줄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헨리 나우웬은 현대 목회자를 “상처 입은 치료자” 라는 말로 묘사했다. 나는 현대 목회자만큼 상처가 많은 사람들도 없다고 생각한다.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상처를 고통 중에 싸매면서, 신자들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있는 목회자들이 현대교회의 목회자들이다.
어떤 목사님은 목회자의 마음을 “썩은 고목” 같다고 하셨다. 목회에서 시달린 목회자의 고갈된 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문제는 썩은 고목 같은 목회자의 마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목회자의 마음이 물고기가 살아 약동할 수 있는 큰 저수지가 되라고 하셨는데, 어느덧 상처와 아픔과 고통으로 뒤범벅이 된 썩은 고목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썩은 고목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설교는 신자들에게 생명이 되기보다는 상처가 되고, 때로는 영혼을 죽이는 칼이 되기도 한다. “양을 치라”는 말이 분명 “양을 먹이고 돌보라”라는 말씀인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양을 때리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그것은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경험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썩은 고목 같은 목회자의 마음을 진리와 사랑으로 가득 찬 저수지와 같이 변화시킬 수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목회자의 영성관리는 출발한다.
목회자의 영성관리의 출발점은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데서 시작된다. 정확한 진단은 값싸게 제시하는 방법과 기술보다 더욱 진기한 것이다. 문제점을 발견하면 치료책은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다. 문제 속에는 언제나 해결의 씨앗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영성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것은 목회자를 괴물처럼 괴롭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목회에서 경험하는 상처, 복잡한 인간 관계의 갈등에서 오는 분노, 동역자들 사이에서 매일 겪어야 하는 경쟁의식, 비교의식에서 오는 열등감, 자신의 야심을 이루려는 성취욕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려는 열정이 뒤섞인 사역의 동기, 그리고 힘든 목회를 포기하고 싶은 충동에서 일어나는 좌절감 등이다. 교계 신문이나 목회 잡지들을 읽을 때면 좋은 정보에 대한 감격보다는 앞서가는 목회자들의 사진과 목회일정 등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것이 목회자의 현주소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런 마음의 고통을 이전에는 도전으로 받아들이고,‘거룩한 불만족’을 가지고 노력했던 열정이 언제부턴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고든 맥도날드의 표현처럼 사역자들이 영적인 열정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많은 사역들이 무감각, 무관심, 그리고 영적 침체 속에 빠져들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직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지나치리만큼 분주하게 사역에 몰두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이유는 가장 만나기 싫은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목회자의 현실은 깊이 있는 신앙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든 것이 “체”하는 삶으로 변질된 무력한 사역자의 삶을 살게 된다.

폴 투르니에는 “신앙의 가장 큰 장애물은 겉모양만의 신앙이다” 라고 말했다. 그의 통찰력은 대단히 탁월하다. 가까운 선배목사님이 들려준 자기 교회 제자반에서 있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그 교회에 새로 출석한 한 장로님이 제자반에서 자신이 먼저 성경암송의 모범을 보이는 목사님을 보면서 “목사님도 성경암송을 하시는군요.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성경암송을 하시는군요.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성경암송을 안하시죠. 그리고 암송하는 체 하시죠”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장로님의 말 앞에 손을 들고 큰소리로 항변할 수 있는 목회자가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이것이 평신도의 눈에 비추어진 사역자의 모습이다. 목회자에게 찾아오는 가장 무서운 병은 바로 겉모양의 신앙, 실천하지 않으면서 실천하는 체하는 신앙이다. 그런 이중적인 삶에서 오는 괴로움과 공허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사역자만의 고민일 것이다.

목회자의 영성관리의 문제는 목회자의 내면세계의 문제이다. 목회자의 영성관리의 본질은 그 장애물을 제거하고 그 해결책을 추구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목회자의 영성관리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첫째로 - 외면세계보다 내면세계를 관리하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싸움은 내적인 싸움이다. 가장 무서운 전쟁터는 자신 안에 있다. 가장 격렬하게 싸워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가장 정복해야 할 대상은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고 말씀한다. 또한 잠언 16장 32절에 보면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한다. 결국 마음에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면세계의 중심부인 마음을 관리하기보다는 외면세계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쓰고 산다. 외면세계에서 요구하는 인기와 평판을 관리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리챠드 포스터는 현대 교회의 비극은 “복음에 대한 이미지보다는 목회자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는데 있다” 라고 말했다.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예언자적인 음성이다.
앤드류 머레이는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활동무대이다” 라고 말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은 마음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먼저 내면의 마음을 관리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매일 새벽 조용한 시간을 가지셨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 보면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은 매일 조용한 시간을 가짐으로 하나님과 교제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정돈하셨다. 그 시간에 자신의 삶의 목적을 점검하셨고 우선순위를 정하셨다. 누구를 만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점검하셨다. 예수님은 결코 충동에 따라 움직이시거나 사람들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선순위를 따라 사셨던 것이다. 그 분은 사람들의 인기나 평판보다는 인격과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가지셨다. 예수님은 누구와도 싸우지 않으셨다. 다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셨다. 누구하고도 경쟁하지 않으셨다. 다만 자신과의 경쟁을 통해서 탁월한 삶을 사셨다. 목회자의 영성관리는 바로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로 - 마음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내면세계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은 영성관리의 열쇠이다. 그런 깨달음과 함께 마음을 가꾸는 지혜가 목회자들에게 있어야 한다. 고든 맥도날드는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이라는 책에서 내면세계를 관리하는 것을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것으로 비유했다. 마음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생명체는 가꾸지 않으면 황폐해진다. 그리고 생명체는 가꿀수록 아름답다. 또한 생명체는 매일 돌보아야 한다. 목회자들의 탈진과 침체는 자신의 영혼을 매일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데 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눅 9:23)고 말씀하셨다. 제자도의 핵심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아가는 것이다.
영성관리의 비결은 매일 돌아보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영성관리의 다른 표현들이다.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다양한 표현들인 것이다. 마음의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마음을 방치해 두면 무성한 잡초들이 자라게 된다. 그리고, 마음에 무엇을 쌓아두느냐는 우리의 언어와 행동에 영향을 끼진다(눅 6:45).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마음을 돌아보면서 육신의 열매들과 죄들은 회개하고, 성령의 열매로 가득 채우는 것이 마음을 가꾸는 것이다. 바울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고 말씀한다. 결국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이 되는 것이다. 사랑으로 충만해서 모든 사역의 동기가 사랑이요, 존재 자체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로 - 가장 기본적인 영성 훈련에 충실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영성관리에 가장 큰 문제는 신앙 훈련의 기본적인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따라 사는 것이다. 목회자의 침체는 우선순위를 망각하는 데서 온다고 본다. 예수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셨다.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성경을 암송하셨다. 말씀을 묵상하셨다. 말씀을 가르치셨다. 복음을 전파 하셨다. 영적 전쟁에서 말씀을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삶의 동기와 원동력은 사랑이었다. 예수님은 가장 기초가 되는 영성훈련에 충실하셨다. 그런데 사역자들의 문제는 이런 기본기를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것처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처럼 강조하면서 자신들은 소홀히 할 때가 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초대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대 사도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순위를 정립한 것과 사도로서의 기본적인 영성훈련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사도들은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 6:4)고 결단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이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고 기록하고 있다. 목회자의 지혜는 지엽적인 것보다는 본질적인 것에 충실하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영적인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본적인 영성 훈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경암송을 점검하고, 기도, 말씀묵상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안식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분주한 활동보다는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시키는 일에 시간을 투자한다. 이 기본적인 일에 자신을 드릴 때마다 문제는 해결되고 영적인 부요를 경험했다. 기본기에 탁월한 사람이 탁월한 목회자가 될 수 있다. 훈련도 받지 않은 사령관처럼 위험한 지휘관은 없다.


넷째로 - 다른 사람의 영혼을 관리하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관리하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원리 같지만 실천하기에는 많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 목회자의 영적 상태와 그가 섬기는 양들의 영적인 상태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리챠드 백스터는 “내 마음이 차가와 질 때는 나의 설교도 차가와 진다. 내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에는 나의 설교도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나의 설교가 차가와 질 때에는 신도들 역시 차가와 진 후에 신도들이 하는 기도를 들어 보면 그 기도는 나의 설교와 같이 냉랭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어린 자녀들을 위한 유모들이다” 라고 목회자의 영혼 관리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소유하지 않은 것은 줄 수 없다. 지혜를 주려면 지혜를, 사랑을 주려면 사랑을 소유해야 한다. 말씀을 주려면 말씀을 소유해야 한다. 결국 사역의 첫출발은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선생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목회자는 먼저 자신을 움직일 수 있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가르치고, 자신을 훈련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훈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제자삼는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은 자신을 관리하는 데 탁월해야 한다. 제자삼는 사역은 일반적인 목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영적 전쟁아래 있다는 사실과 양육하는 제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이중적인 부담감을 안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목회자의 사명이요 보람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나누어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내적인 충만과 부요를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관리해야 한다. 목회는 차고 넘치는 진리의 저수지가 되어야 한다. 내어 주는 것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더 많아야 한다. 바로 그 일을 위해 먼저 자신의 영혼을 관리하는 것은 승리의 비결이요, 지혜중에 지혜이다.

영성관리가 잘 된 목회자는 "썩은 고목"이 아니라 "향나무"와 같다. 예수님은 향나무와 같으셨다. 향나무는 상처를 받고, 찍혀도 아름다운 향을 발한다.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무시당하고, 버림받았지만 예수님은 끝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셨다.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향내나는 사랑이셨기 때문이다. 목회에서 받은 상처를 잘 관리하면 그 상처를 진주로 만들 수도 있다. 그 상처 때문에 더욱 깊이 있고, 성숙한 목회자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더욱 잘 이해하고 치유하는 목회자가 될 수 있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비단을 만들어 내고, 뱀은 독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상처를 안고 진주를 만들어 내고, 상처를 먹고 비단을 만들어 내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찍혀도 찍혀도 향을 발하는 향나무가 되자. 예수님처럼 사랑만 부어 주는 목회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