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설교는 듣는 이들이 말씀 속에 빠져들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삶은 하나님의 음성에 청종하는 삶임을 느끼게 하였다. 또한 그와의 대화는 지혜 그 자체를 느끼게 하였다. 그야말로 그는 말씀의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씀이 여기있사오니...” 하고 그에게 모여든다. 그리곤 변화가 일어난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이런 사람이 되길 갈망할 것이다. 나는 실제 이런 목회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큐티의 사람들이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하는 목회를 나는 큐티목회라고 부른다.
제자훈련목회는 큐티목회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교회에서의 제자훈련은 소그룹 상황이 최적격인 것이 사실이지만, 제자훈련적인 강단사역이나 맨투맨 관계를 통한 제자훈련, SELF TRAINING 차원의 제자훈련을 소홀히 해서는 ‘온전한 사람’ (엡4:13), 즉 균형과 능력을 갖춘 제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제자훈련의 목표 중 하나가 각 성도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홀로 서기를 하는 사람, 즉 장성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라면 특별히 SELF TRAINING의 차원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제자훈련이 이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을 때에는 교역자가 이끄는 제자훈련을 끝내고도 여전히 의존적이고 타율적인 미성숙한 제자로 남아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 SELF TRAINING 차원의 훈련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큐티훈련이다. 그리고 이 큐티훈련을 중심으로 개인기도 훈련이나 경건 서적 독서 훈련을 지속적으로 확실히 시키면 아주 멋있는 제자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사실 교역자 중심의 소그룹 제자훈련시 하는 여러 가지 훈련들 중 큐티생활만 잘 정착시켜 주어도 제자들은 꾸준하고 훌륭하게 성장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이제 제자훈련목회를 하는 교회라면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큐티목회를 진지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큐티목회란 목회자가 큐티에서 영감을 얻고 힘을 얻어 하는 목회이면서 성도 하나 하나가 큐티생활을 하도록 힘쓰는 목회를 말한다. 더 나아가 큐티 활성화를 위한 토양과 환경을 만들어 교회 전체가 큐티 공동체가 되게끔 하는 목회를 말한다. 아마 “교회는 학생선교단체가 아니지 않는가?” 하고 항변하고 싶은 목회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자훈련 과정 중에서 큐티를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이왕 큐티를 가르친다면 보다 철저히 큐티 생활이 건전한 습관이 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러면 큐티목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여기서 목회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첫째, 무엇보다도 먼저 큐티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아마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새벽기도회와 큐티와의 조화를 어려워 할 것이다. 두 가지를 다 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벽기도회를 직접 이끄는 목회자라면 분명 매일 설교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이 경우 큐티를 날마다 하는 목회자라면 별로 고민할 것이 없다. 하루 먼저 한 큐티 본문이 설교 본문이 되고 큐티 시 발견한 점들이 설교 내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실용적 이유보다도 목회자는 예배 인도자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예배자가 되어야 함을 상기해야 한다. 큐티를 시키는 자이기 전에 먼저 예배자가 되어야 함을 상기해야 한다. 큐티를 시키는 자이기 전에 먼저 그 자신이 큐티의 맛을 날마다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큐티의 즐거움을 목회자가 못 누리면서 성도들에게 큐티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큐티하는 목회자에겐 사실상 설교거리로 고민하는 것이 이상스러운 것이다. 매일같이 맛본 큐티 본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과 나눌 영감 있는 말씀들을 한없이 떠올려주시기 때문이다. 특별히 말씀으로 살아가는 목회자에게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이큐티(EQT:EXTENDED QUIET TIME) 즉 평소보다 두 세배 정도는 길게 함으로써 심도 있게 말씀 속에 들어가는 큐티 시간을 권장하고 싶다. 이 시간을 통해 목회자 자신이 내적 치유의 경험을 가질 수 있는가 하면 관계상의 문제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와 파워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고 목회를 위한 훌륭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기독교 서점에 가보면 큐티 교재들이 십여 종류가 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른바 큐티 마켓이 아주 넓고 큐티 비즈니스가 비교적 짭짤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동시에 큐티하는 성도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적 목회자 자신은 어떤가? 목회자 자신은 이러한 큐티 문화로부터 차단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성도들은 오히려 목사님을 놓고 “우리 목사님, 큐티하는 목사님 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둘째, 큐티를 나누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목회자를 비롯 온 성도들이 매일 같은 본문을 놓고 큐티를 한다는 것은 목회 전략적으로도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공동체를 묶어주는 말씀의 위력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그리고 성도와 성도 사이에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보다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우선 매일의 새벽기도 시 큐티 나눔이 설교를 통해 가능하다. 심방을 가서도 그 날의 큐티 본문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나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이면 반드시 있게 마련인 순장 모임에서도 목회자는 그 주간의 큐티 본문 중 가장 은혜스러운 말씀을 가지고 잠깐 설교를 하고 순장 모임을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순장을 다락방 또는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 시 자신이 큐티를 하면서 발견한 점들을 나눌 것이고 그 구성원들도 서로 큐티 나눔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역시 목회자의 큐티 나눔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주일 강단을 통한 나눔이다. 나는 가끔 내가 맡은 부서에서 정한 큐티 교재로부터 설교 본문을 택하고 나 자신이 큐티를 통해 받은 은혜가 강단을 통해 흘러가도록 하곤 한다. 이렇게 될 때 같은 본문을 갖고 큐티 한 성도들의 경우 보다 그 설교에 친숙해지는 것을 볼 수 있고 회중 사이에 큐티하고픈 욕구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교역자들이 모이는 정기적인 모임 시간 중에도 큐티 나눔의 시간을 갖는 것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의미심장한 것이다. 회의를 통해서만 서로를 대하는 것이 아니고 큐티 나눔을 통해 GBS의 효과를 맛볼 수 있을뿐더러 교역자들 사이의 인격적 교류와 신뢰관계가 더욱 발전될 것이다. 나는 이 때 목회자의 나누는 태도가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이 정말 큐티의 즐거움에서 나누는 것이 되어야지 큐티를 강요하는 목적으로, 전시용으로 나누다가는 큐티율법주의로 교회가 오히려 화석화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싶다.
셋째, 큐티 시키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큐티는 상호점검 없이는 개인이나 공동체 안에 정착되기가 무척 어렵다. 이런 점에서 큐티는 개인적 이라기 보다도 공동체적인 면이 많다. 함께 같은 본문이나 같은 큐티교재를 선정해서 큐티를 하는 것이 성도들로 하여금 큐티생활을 갖게끔 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그래야 나눔이 가능하고 또한 부수적으로 점검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씩 나의 부서의 주일 강단에서 “반갑다 큐티야!” 라든다 “큐티야 안녕!” 큐티야 놀자!“ 하는 식으로 인사를 하고 성도들 사이에 그런 인사를 하도록 유도한다. 반복교육을 통해서 큐티를 한동안 잊은 성도들에겐 다시 큐티를 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고 큐티를 비교적 잘하는 성도들에겐 은연중에 칭찬과 격려를 해주기 위해서이다. 역시 큐티는 제자훈련과정 중 숙달되도록 하는 것이 최고이다. 그래야 리더가 될 그들이 소그룹 모임에서 큐티 시키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정기적으로 큐티학교나 큐티클리닉 과정을 개설해서 큐티문화를 이따금씩 갱신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역자들 사이에 또한 평신도 지도자들 사이에서 큐티목회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고 심화되고 있는지 자주 심도 있는 논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큐티목회는 꽃을 피울 것이다.
큐티하는 목회자, 큐티 나누는 목회자, 큐티 시키는 목회자가 주도하는 큐티목회는 결국 ‘은혜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성도를 배출하는 목회이다. 마디마디가 살아있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몸은 곧 전체적으로 병들기 시작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각 지체인 성도가 은혜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목회가 제 구실 못하는 수많은 성도들을 치다꺼리하는 것이라면 교회를 통해서 만물을 충만케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계획은 큰 장애를 맞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큐티성도를 배출함으로써 성도들이 자기문제는 가능한 한 자기가 해결할 능력을 배양하고, 목회자의 강단 사역이나 소그룹 성경공부를 통해서는 선교적인 소명과 세상을 향한 보다 진취적인 능력이 구비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큐티목회로 모아지는 제자훈련 목회가 필요하다. 그리고 제자훈련을 마친 평신도 지도자에게 세월이 갈수록 가장 문제되는 것이 그들의 매너리즘이나 은혜의 고갈증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속적인 갱신과 계속되는 성장의 문제는 부메랑이 되어 다시 목회자에게로 돌아옴으로써 목회자의 또 다른 고민이 되고 큰짐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를 위해서도 큐티목회를 지향하는 제자훈련목회를 보다 철저히 재고해야 할 것이다.
고직한 전도사 (사랑의 교회 대학청년부 담당)
사랑의 교회 초창기부터 대학생 사역에 헌신하여 사역해온 고직한 전도사는 IVF의 총무와 학복혐 총무를 역임하면서 한국교회 청년대학부 사역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며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연세대와 호주 SMAB를 졸업했고, 현재는 사랑의 교회 젊은이선교팀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