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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깨 36 호

제자 훈련과 설교,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2004년 06월 정근두 목사(울산교회 담임목사)

어떤 면에서는 제자훈련과 설교의 역할이 다른 것 같습니다. 설교는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전체 성도를 향한 함포 사격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진압이 되면 소총부대가 중앙청에 가서 깃발을 꽂습니다. 폭격만 해서는 그 어떤 영토도 점령하지 못합니다. 공군이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자훈련과 설교는 목회에 있어서 피해갈 수 없는 요소입니다. 설교가 잘 안되어서 대안으로 제자훈련을 택한다고 하면 틀림없이 제자훈련도 실패하고 설교도 실패할 것입니다. 오히려 주일 메시지가 귀납적 성경연구를 통해서 강해설교가 되어지고 전체적인 토양이 기경된 이후에 제자훈련의 씨앗을 뿌렸을 때 제대로 잘 자랄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옥한흠 목사님의 메시지가 없는 사랑의교회 제자훈련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이만큼 제자훈련이 될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들어가는 말

설교는 하는 행위와 준비하는 행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오늘 제가 강조할 부분은 설교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하는 부분에 더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설교 한편을 준비할 때 12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본문을 연구하고, 6시간을 원고작성에 할애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해 여러분을 자극하겠지만 실제로 본문을 붙들고 고민하는 시간을 대신해줄 수는 없습니다. 설교문을 준비하는 것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시간을 들여 준비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선택하라.

본문을 어떻게 선택할까하는 문제부터 말씀드리면 좋겠습니다. 대체로 가장 안 좋은 방법은 주일저녁 설교가 끝나면 다음 주일 설교 뭘 할까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보다 나은 방법은 책을 하나 정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관심 있는 책을 하나 정해서 일단 시작하면 설교가 끝나자마자 다음 설교 본문이 어딘지 알게 됩니다. 이 방법이 갖는 장점은 설교의 폭을 넓혀 준다는 것입니다. 관심사를 가지고 주제별로 설교를 하면 설교자들 마다 관심 갖는 분야가 달라서 아무리 다양하게 설교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권의 본문을 가지고 계속 설교하다보면 본문의 강조점이 그날 설교의 무게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설교의 주제가 계속해서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또,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설교를 하더라도 본문이 진행되어 가는 순서대로 하는 중에 특정 주제에 관련된 본문이 나올 경우 오해를 받지 않고도 바른 설교를 할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또한 설교자의 주관에서부터 해방을 시킬 수 있습니다. 주제 설교를 하는 분들은 지금 교회상황에 필요한 설교를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그것이 갖는 함정이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잡아야 하는데 거기에 부딪히기 전에 이 본문이 이 말을 해주길 바라고 접근해 가므로 마치 부흥강사를 청하면서 교회상황을 처음부터 말하고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처방을 좀 해주십사 하고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본문을 주관적으로 대할 위험이 아주 큽니다.
본문을 선택하는 세번째 방법은 큐티를 해 나가면서 자기에게 은혜가 될 때 택하는 방법입니다. 특별히 교회 전체가 하나의 큐티교재를 가지고 매일 큐티를 하는 교회 같으면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본문 연구를 통해 중심 주제를 발견하라.

본문을 선택했으면 그 단락에 대해서 읽는 것부터 시작을 합니다. 읽는다는 것은 본문에 대해서 듣는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읽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 모두다 방법이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모델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본문에 깊이 잠기는 정신말입니다. 말씀에 대해 시간을 보내는 건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 보면 1대지, 2대지, 3대지로 딱딱 나눠지는 본문도 있지만 어떤 본문은 도대체 이런 성경말씀은 왜 있는지. 이 본문은 다만 설교자를 괴롭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할 정도로 황량한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 데서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콸콸 솟아나는 샘물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 때 그 설교자만이 갖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문을 계속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문이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를 발견하기까지 계속 고민해야합니다. 필요하다고 하면 본래 가지고 있던 생각을 포기하기도 해야 합니다. 본문을 처음 봤을 때는 이것을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하지 않으면 처음에 기대했던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다는 정직한 결단을 내려야만 본문이 여러분에게 새롭게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묵상할 때 제일 좋은 방법은 본문이 말하기 시작할 때 쓰는 방법입니다. 감동될 때 쓰라는 것입니다. 쇠는 달았을 때 망치질을 해야합니다. 뜨거울 때 망치질을 해야 원하는 모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감동이 식어지면 그때 그 기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감동되었을 때 무조건 쓰라는 것입니다. 독서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록한 것들은 잠정적인 out-line일 수도 있습니다.
해석학자들은 “Word is event”라는 말을 합니다. 말씀 사건이 생기게 되면 말씀 자체가 폭발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을 접하게 됩니다. 전에는 주석 펴놓고 열심히 설교준비를 했는데 그 때부터 달라졌습니다. 본문을 충분히 묵상하고 읽되, 궁금하면 주석으로 가는 것입니다. 주석은 여러분의 생각을 더 깊게 해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감의 깊이를 깊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은 2,000년 동안 여러분이 처음 대한 본문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보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주석을 보되 깊이 있게 보고, 은혜를 받기 위해 주석에서 한마디 하고 지나갔지만 나는 열마디, 백마디 생각하며 쉽게 풀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역성경을 붙들고 웬종일 걸리는 것 보다 좋은 주석을 가지고 같이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공자가 그런 말을 했잖아요. 사흘 안자고 밤낮 고민하고 있었는데 좋은 책을 펴서 보니까 자기의 고민이 정말 잘 정리되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그런 지혜에 대해서 무시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배경을 연구하고, 헬라어, 히브리어라는 언어 자체가 동사에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에 동사들을 연구하고, 중요한 단어가 무엇인지, 시제, 장르....을 살펴봐야 합니다.
이렇게 본문을 깊이 연구하고 나면 처음 접근할 때 가지고 있던 생각은 접어두고 이 본문이 말하고 싶어하는게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리해 보는 것입니다. 저자가 그 주제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지 본문의 구조를 파악하고 나면 서신서에서는 저 같으면 설교대지가 나옵니다. 대체로 저자가 논지를 전개하는 대로만 나가면 타당합니다. 이야기체인 경우에는 대체로 본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살펴야 되는데 많은 경우에 기승전결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대로 말해주면 사람들이 제일 잘 알아듣습니다.


청중을 분석하라.

본문의 핵심을 파악했으면 청중의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것은 저도 잘 안됩니다. 5학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제가 청중을 보통이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청중은 1학년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십시오. 그러면 설교하는데 훨씬 마음의 부담을 덜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훨씬 청중이 잘 받아들입니다. 설교자는 일주일 내내 본문을 가지고 씨름했지만 청중들은 자기 생활에 바빠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주일예배에 헉헉거리며 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빨리 조율시킨다는 것이 힘든 부분입니다. 청충의 처지를 알아 필요에 따라 설교해야합니다. 뭘 듣기를 원하는지 무시하고 시작하면 처음부터 마음을 닫아 버리게 됩니다.
본문에서 발견한 주제는 골프공과 같고 여러분이 청중을 바라보는 것은 홀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일단 공을 놓으면 어떤 방향으로 때릴 것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설교자들이 실패하는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이 왜 저 설교를 하는지, 도대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설교들도 있습니다. 설명을 위한 설명은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설명을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설교를 통해서 청중들에게 어떤 변화를 기대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 설교해야 하는데 아무런 목표도 열정도 없이 A4용지 5-6장을 채웠다고 설교준비를 그냥 끝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청중들은 설교자가 자기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말하는지, 시간을 떼우면서 말하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청중을 사랑하라.

설교자에게는 본문만 가지고 12시간 이상 씨름할 정도로 본문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청중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서론이 왜 필요합니까? 청중 때문입니다. 본론은 왜 필요합니까? 청중 때문입니다. 결론은 왜 필요합니까? 역시 청중 때문입니다. 서론을 통해 듣는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듣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왜 그 설교를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유발시킵니다. 내가 이 설교를 통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주제를 소개할 수 있습니다. 서론 끝에는 사람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합니다.
본론은 어떻게 발전시켜야 합니까? 통일성과 질서와 진지성을 증진시켜줘야 합니다. 이 세가지가 없으면 관심이 떨어지게 됩니다. 통일성과 질서와 진지성을 증진시키는 첫번째 방법은 모든 부분이 전체를 지원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지가 주제를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대지 사이의 관계가 분명히 보여야 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 대지는 안성군에 대해 얘기하고, 다른 대지는 칠곡면에 대해서 얘기하면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군에 대해서 잡기 시작했으면 안성군, 평택군, 용인군을 얘기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게 중심이 같은 것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첫번째 것이 첫번째로 와야 하고, 두번째 것이 두번째로 와야 하고, 세번째 것이 세번째로 와야 하는데 설교를 들어보면 첫째, 둘째, 셋째가 나오긴 나오지만 왜 그런 순서대로 정리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연관성이 없는 그런 첫째, 둘째, 셋째는 쓰지 말아야합니다.
그 다음 결론의 목적은 지금까지 했던 말은 무엇인지, 설교를 들었으면 어떤 행동을 해야 되는지를 드러내보이는 것입니다. 결론을 들을 때 설교 전체가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합니다. 강해설교는 본문을 잡았으면 한 핵심을 가지고 한 송이의 국화꽃을 만드는 것입니다. 중간에 끝내서는 안됩니다. 꼭 결론을 맺어야합니다.
결론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논지를 포함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할 수는 있지만 앞에서 말하지 않았던 것은 꺼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결론은 생동감이 있어야하고, 분명하고 간결하게 결론을 내려야합니다. 서론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다면 그 약속을 지켜줘야 합니다. 그래서 충분하게 시간을 들이되 불필요하게 들여서는 안됩니다.


제자훈련 사역과 전도설교

제가 로이드 존스에게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전도설교부분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일주일에 설교를 3편 하는데 3편 중 반드시 한편은 전도설교였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처음 나오는 청중이 많은 주일밤에 전도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적인 상황을 고려해볼 때 저는 처음 나온 청중을 위한 전도설교를 주일낮에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주일낮이야 말로 전도설교를 들어야할 계층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전도설교의 청중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경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은 흥미가 없습니다. 그들이 아는 이야기에서 출발해야합니다. 그래서 서론의 길이가 다른 설교와는 달리 길어질수 있습니다. 전도설교를 통해 교회에 다니고 있는 불신자들을 신자화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또한 교회 밖에 있던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설교 원고를 작성하라.

설교 원고를 작성할 때는 눈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귀를 위해 써야합니다. 여러분은 설교 원고를 눈으로 읽지만 사람들은 귀로 듣는다는 것입니다. 원고를 작성할때는 이 사실을 꼭 염두에 두어야합니다. 사람에게 스타일이 참 중요합니다. 만약에 2차대전 후 처칠이 “영국민은 영국 공군에 대해서 굉장히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처칠은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하지 않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의 전투사에 있어서 그 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그 처럼 소수의 사람들에게 빚진 적은 없었습니다.” 소수의 공군에 의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빚진 일을 인상적으로 뇌리에 깊에 새겨지도록 표현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좋은 문체와 나쁜 문체의 차이입니다.


성령께 의존하라.

에베소서 6장 19-20절을 보면 바울이 설교자인 자기를 위해 성도들에게 두가지 기도제목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고, 두번째는 내가 입을 벌려서 말할 때에 담대히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설교는 preaching과 sermon 두 가지입니다. sermon은 토요일까지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설교자에게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sermon을 가지고 실제로 preaching할 때에 설교가 설교되게 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면 설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실제로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원고를 쓸 때 감동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실제로 말할 때에 우리를 감동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까 나의 도구인 원고 쓰는 부분만 의존하지 말고, 말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강권하시도록 의지하며 자유롭게 말하면 그 말이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