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네가지 역동적인 원리
나에게 있어서 제자삼으려는 첫 시도들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나는 내 삶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생각에 도전받아 열정적으로 그 사역을 시작했다. 내가 한번에 한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까지 성장하도록 돕는다면 내 수고를 효과적으로 배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어떻게 그 과정이 기능하는지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첫 “제자”를 발견하고 훈련을 시작했다.
“경건의 시간을 함께 가집시다.”
“잠시 외출해서 우리의 신앙을 함께 나눕시다.”
“함께 성경을 공부합시다.”
내가 잠시 동안 훈련시켰던 첫 제자는 곧 다른 부분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훈련이 중단되었다. 나는 “그래 좋아. 다른 사람을 찾지 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제자훈련에서도 비슷한 실패를 경험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왜 나의 노력이 풍성히 열매맺지 못하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역동적인 원리(dynamics)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방법(methods)만을 적용하고 있었다.
역동성이란 무엇인가? 내가 가진 사전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역동성이란 진보를 이루어내는 원칙들이다.” 역동성은 어떤 것이 제 역할을 감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것이 어떻게 가동되는지에 대한 역학을 배우는 것은 꽤나 간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바로는 역동적인 원리로 강화되어지지 않는다면 제자훈련의 역학은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의 초기 제자훈련 경험들은 홍해가 갈라지게 만든 믿음의 “역동성”을 인식하지 못한체 홍해를 건넌 모세의 “방법”을 모방하려했던 불행한 애굽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히11;29) 똑같은 방법이었지만 너무나도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제자삼는 사역에 있어서 효과성을 만들어내는 역동성은 무엇인가? 나는 최고의 제자훈련자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 질문에 대답하려고 한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삼는 사역이 진리, 사랑, 적절성, 믿음이라는 네가지의 중요한 역동적 원리에 의해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진리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르치는 자들에게 진리를 드러내 보이기를 원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많은 비유를 베푸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세우려한 왕국의 가치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위선자의 잘못을 발견하실 때 그 위선에 맞서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께서 가장 일반적으로 “선생”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타락한 세상을 구원해야하는 예수님의 사명은 소수의 제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가르친 것들을 이해하고 믿고 적용하도록 돕는데 달려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공식적인 사역에서 수많은 군중들을 가르치셨지만 가르침의 대부분을 제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셨다. 특별히 이 세상의 사역을 마감하셔야할 때가 다가올 즈음에는 더욱더 그러하셨다. 사역을 마감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르치신 진리가 제자들을 지속적으로 변혁시키도록 기도하셨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우리들은 어떤가? 제자들이 진리와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졌다면 우리들의 마음에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진리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우리안에 “풍성히 거하지”(골3:16) 않는다면 삶 대(對) 삶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역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의 제자삼는 사역의 효과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한 자리에 비례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나를 훈련시켜주었던 리 브레이스(Lee Brase)씨에게 정말 감사한다. 내가 젊은 신자였을 때 리 브레이스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안에서 흠뻑 적셔진 스펀지에 물처럼 되기 원한다. 스펀지를 누르면 물이 스며나올 정도로 흠뻑 적셔진 물 말이다.” 나는 성경속에서 내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진리를 찾으면서 그와 함께 여러 시간을 보냈다. 내가 질문하면 리 브레이스씨는 관련성경구절을 정확하게 찾아주었다. 나는 모임이나 회의에서 그가 가르치는 내용을 들었다. 또한 그가 내 삶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하는 성경구절들을 때때로 마지못해하며 듣기도 했다.
사랑사도바울은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전8:1)고 말했다. 제자들을 세우기 원하는가? 사랑만이 삶에 지속적인 변화를 창조할 만큼 충분하고도 철저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때 우리는 우리가 그를 얼마나 귀중하게 평가하는지를 표현하게되고 그런 표현은 그 사람의 가장 필요한 부분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문을 열게된다.
그 누구의 사랑도 예수님의 사랑에 비할 수 없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아주 바쁜 사역의 시간을 보낸 이후에 잠시간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떠나시려는 노력을 보이심으로 제자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시몬에 대한 사랑과 확신을 증명해 보이셨다.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의 무덤가에서 예수님께서 울고 있을 때 구경꾼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라!”(요11:36)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최후의 만찬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요13:1) 예수님께서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시절이 다가옴에 따라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22:15) 각각의 제자와 맺어져 있던 스승-제자관계는 점점 더 깊어져갔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을 표현하시며, 사랑의 봉사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이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가운데 일부분은 예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최후의 표현들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나는 나를 사랑한 사람의 손에서 양육되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해마지 않는다. 나를 예수님께로 인도했던 사람은 나에게 소책자를 주고 떠나갔다. 그러나 리 브레이스씨는 내 삶에 사랑으로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나는 나를 향한 그의 사랑에 대해 눈을 열어주었던 작은 사건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우리는 내가 살고 있던 홀랜드 근처의 작은 마을을 방문했었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리 브레이스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께요. 그러고 싶어요.” 그것은 작은 사건이었지만 그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부분에서만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를 한 인격(person)으로 평가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건이었다.
적절성훌륭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그 내용을 하나도 기억할 수 없는 설교를 들어본적이 있는가? 때때로 이런 현상은 그 가르침이 그 당시 당신의 삶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다. 설교 내용과 실재 삶의 경험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도 발견할 수 없기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강력하다. 하지만 그 말씀이 당신의 마음밭에 뿌려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훈련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경험했던 사건들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들을 필요가 있는 바로 그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열두 제자에게 복음전도를 훈련시키신 것을 생각해보자. 둘씩 둘씩 짝지어 전도하러 나가야될 시간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셨다(막 6:6-13을 보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곧바로 적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판에 세길 수 있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 전반에 걸쳐 이와 같은 예들을 발견하게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만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서 몇몇 어린아이들을 돌려보내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보이신 반응을 절대로 잊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예수님의 꾸짖으심은 모든 개인의 귀중함에 대한 강력한 교훈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가장 크냐는 논쟁이 일어났을 때 섬기는 종이 상전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다른 가치체계를 말씀해주셨다.
한번은 리 브레이스씨가 우리 집에 있었는데 그때 내가 아버지와 나누는 길고도 열띤 대화를 주목해서 듣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우리집에서 암스테르담에 있는 리 브레이스씨의 집으로 가는 가장 좋은 길에 대해서 논쟁하고 있었다. 나중에 리 브레이스씨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하는 것이 정말로 큰 차이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했다. 그때 나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열려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다. 리 브레이스씨는 아버지와 나와의 논쟁을 가르침의 기회로 인식했고 내 삶에 있어서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질문을 던질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나는 상황이 내 삶에 변화를 요구했기 때문에 주목해서 들었다. 나중에 리 브레이스씨가 나와 함께 나눈 성경말씀은 실제적인 삶에 뿌려졌기 때문에 내 삶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믿음마지막으로 제자훈련의 과정에서 믿음이 차지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믿음을 떠나서는 우리가 사역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서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 의존하는 것이 사역에서 열매를 맺는데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셨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의존을 표현할 수 있는 한가지 길은 기도이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셨는지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거룩하도록 그래서 하나되도록 기도하셨다. 기도의 말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시도록 위탁하셨고, 성령님을 통하여 제자들의 삶에 계속될 예수님의 사역을 위탁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우리가 제자삼는 사람들을 위해 믿음으로 구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사역하는동안 우리를 지도하시는 성령께 의존해야만 한다. 한번은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던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투쟁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찾아가는 것을 거의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사람의 집을 방문하는 동안 나는 그가 딸에 관련된 실제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이 내 견해를 들을 만큼 열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절망속에서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꾸었다. “주님, 내가 무엇을 행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기억나게 하심으로 내게 응답하셨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6) 나는 하나님께서 제자삼는 사역에 있어서 그분을 신뢰하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내 친구를 위해서 기도했고 우리의 관계를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도록 요청했다.
그렇게 기도한 다음 한번은 내가 그 사람의 삶에서 발견한 것에 대해서 무언가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문제에 관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감동을 기억하며 믿음 안에서 밀고 나갔다. 내가 친구에게 말했을 때 상황은 얼음이 녹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내가 나눈 것에 대해 아주 잘 반응했다.
비록 내 믿음이 겨자씨 만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날 분명히 산을 옮겨주셨고, 우리들의 관계는 한 걸음 진보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서 일하셔서 그분을 신뢰하도록 격려하신 것처럼 우리가 그 친구의 삶에 있는 어려운 문제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 내 친구의 마음속에서도 주도면밀하게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보고 놀랐다.
역동적인 질문방법보다 역동성을 통해 제자삼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는 이런 역동성을 마음속에 유지하도록 돕는 몇 가지 핵심질문들을 발견했다. 내가 나눌 필요가 있는 적절한 진리는 무엇인가? 내가 제자삼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순간 그가 처한 삶의 환경은 어떠한가? 내가 믿음 안에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도울 때 우리는 불가피하게 실수하게되고 낙담하게된다. 그러나 제자훈련의 네가지 역동성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성취시키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
-Dirk C. van Zuylen
Discipleship Journal, 110호, pp 76-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