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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깨 37 호

“목회자 훈련은 말씀 묵상으로 부터”

2004년 07월 박은조 목사(분당 샘물교회 담임목사)

지난 98년 9월 10일은 평소처럼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새벽기도회를 인도한 후 본당 옆에 있는 서재에 앉았습니다. 그 날도 저는 몇주간째 계속하고 있던 기도를 간절하게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17년을 섬기던 서울영동교회를 떠나 분당에서 분리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영동교회 당회가 500평 정도의 전세금 5억을 목표해서 9월말에 헌금하고 10월말에 새교회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5억은 너무 큰 돈이었습니다. 성도들 중 어떤 분은 박목사가 성도들을 배신하고 떠나려 한다고 생각하며 섭섭해하고 그 위에 사탄의 교묘한 공격까지 겹쳐 교회 분위기는 날마다 나빠져 갔습니다. 개척을 하러 나가기로 한 저로서는 돈이 큰 문제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도는 더욱 억지 같은 내용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교회에 시무하면서 교인들 주는 봉투도 안 받고 생활비는 사찰집사, 부목사와 같은 수준으로 받으면서 지낸 것 아시지 않습니까? 5억 주셔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봉투를 안받는다고 하면서도 철저히 하지는 못했고, 생활비도 결코 모자라지 않았고, 교회헌금으로 영국유학 2년반, 미국 안식년 1년을 가족들과 함께 보냈으니 결코 교회 돈을 적게 쓴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초조해지고 불안해지면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의 주장으로 채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회자 자신의 훈련이 먼저

이런 저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전혀 뜻밖의 그러나 참으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애끓는 기도를 마친 후 말씀묵상을 위해 성경을 펼쳤습니다. 누가복음 4:1-4 말씀이었습니다. 수도 없이 읽고 묵상하고 설교했던 예수님의 첫 시험 기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한 후 무척 주린 상태에 계셨습니다. 그 분에게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우선 배고픔의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사탄이 미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0일 동안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예수님께서는 먹는 문제보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음성이 저의 가슴을 치는 순간 저는 입을 다물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뿌리면서 통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사역을 굶주리며 시작하셨는데 이 미천한 종이 제자의 길을 가겠다고 하면서 돈 없이는 안된다고 떼를 쓰다니!
그 날 아침 참 오랜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울며 찬송하며 결단하며 한 시간을 보낸 후 놀랍게도 그렇게 걱정되던 마음이 평안으로 채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이 변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하실 주님에 대한 기대로 채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척교회의 목회자로 부르신 제 자신의 훈련을 먼저 시작하신 것이었습니다.

목회자 훈련은 말씀묵상으로 부터

목회자는 자칫하면 날마다 요리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식욕이 없어 잘 먹지 못해 건강을 잃는 부인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신학교 때에는 읽어야 할 책과 숙제 그리고 헬라어 히브리어에 쫓겨, 정작 성경을 읽고 힘을 얻는 일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교회의 부사역자가 되면 교회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됩니다. 맡은 성도들의 대소사를 담임목사를 대신해서 다 챙겨야하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뛰다보면 말씀묵상은 항상 내일의 과제로 미루어집니다. 담임목사의 경우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설교준비는 많고, 해결해야 할 일은 계속해서 몰려들고, 사람은 만나야 하고… 교회 밖의 일까지 맡은 목사라면 시간은 더욱 없게 됩니다. 결국 많은 목회자들이 날마다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삶을 살면서도 정작 자신은 말씀으로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제가 17년을 섬기던 교회를 떠나게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영적 매너리즘에 빠지는 일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리고 상당한 기간 동안에는 열심히 재미있게 섬겼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큰 어려움이 없어지고 그럭저럭 잘 굴러가면서 어느 땐 가부터 제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나타난 증상이 말씀묵상이 깊이 있게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옛날같은 감동과 적용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설교준비를 하고 설교를 힘있게 외쳐도 전과 같은 감격과 열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성도들은 별로 눈치를 못 채는 것 같았고 제 아내조차도 저의 영적 균열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너무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뭔가 대책이 있어야 했습니다. 94년 11월에 혈관이 터져 일주일 입원을 하고 한 달을 쉬면서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95년 8월 안식년을 가면서 마지막 주일예배때 성도들에게 기도부탁을 하면서 맨먼저 한해 동안 말씀묵상을 잘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안식년을 가져보고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해 보기도 하고 결국 분당의 분립개척교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말씀묵상이 약해지고 생활이 흔들리는 것이 근본 문제였습니다. 말씀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할 때 제자훈련이며 설교며 어떤 사역이 힘있게 진행될 수 있겠습니까?
개척교회를 준비하던 중 말씀을 통해 가르치시고 훈련하시는 하나님을 뵙던 그 날 저는 몇 해 동안의 저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영적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그 씨름이 어디에서 끝을 보아야 할 것인지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물속이든 불속이든 주께서 명하신 길을 가는 것이 제자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말씀묵상을 통해 목회자 자신이 훈련되기만 한다면 제자훈련은 문제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봉한 책을 열라

모든 묵시가 마치 봉한 책의 말씀처럼 덮여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사 29:11). 선지자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인간의 오해와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전해지는 일은 늘상 있어 왔습니다.
제가 어느 지역에서 집회 인도를 할 때 신실하고 열심있는 집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자신의 교회와 목사님을 얘기하면서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써 온 예로 자기 교회에선 모든 여성들이 바지를 입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신명기 22:5을 말씀하면서 성경에 분명히 여자가 남자 옷을 입지 말라고 하셨는데 자신이 모르고 있었다고,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말씀대로 살자고, 남자 옷인 바지를 아무 생각 없이 입어온 모든 여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지를 추방하자고 설교했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성도와 목사님에게 신 22:5은 분명히 봉해진 책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으로 들어갈 이스라엘에게 남녀가 옷을 섞어 입지 말고,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옷을 입지 말고, 짐승을 섞어 겨리하여 농사하지 말고, 씨앗을 섞어 뿌려 농사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숭배와 관련된 생활습관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알이 남녀가 옷을 섞어 입으면 축복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런 생활습관이 생겼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생활양식을 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봉한 책이 되지 않게하기 위해서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와 그 백성들에게 그 말씀을 주신 의도가 무엇인지 발견한 후 오늘 우리 문화 속에서 우상숭배가 어떤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생활양식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명기의 말씀대로 우리 또한 우상숭배의 결과로 생겨나고 있는 오늘의 생활양식을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가 말씀묵상을 통해서 봉한 책을 열지 못하면 제자훈련도 설교도 모두 빗나가고 말 것입니다.

어전회의에 참여했는가?

구약의 선지자가 참된 선지자인가 거짓선지자인가를 구별할 때 그가 어전회의에 참여한 사람인가고 묻습니다.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회의한 것처럼 하나님의 의중을 아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신비체험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큰 능력을 행했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중을 바로 알고 그분의 뜻을 제대로 전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신명기 5:22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바지추방운동을 벌인다면 그는 어전회의에 참여하지 못했던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오늘에도 하나님께서는 어전회의에 참여한 것처럼 왕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리고 전할 제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 기초가 바로 되지 않으면 제자훈련은 모래 위에 짓는 집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바른 말씀묵상을 하면 누구나 어전회의에 참여한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묵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결코 많은 학문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여졌고 성령을 모신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성령께서 기록하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신학공부를 하지 않은 평신도라 해도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신학공부를 한 사람보다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필자는 20여년의 목회와 10여년의 제자훈련 사역을 통해서 그런 예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집사님이 신학공부를 하고 신학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목회자보다 더 탁월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며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말씀묵상은 많은 학문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목사든 평신도든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앉는 축복의 마당임을 확신합니다.
어전회의에 참여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잘 받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배들을 통해서 주시는 유산들은 무엇보다도 큰 축복입니다. 성경과 함께, 우리 앞서 성경을 붙들고 씨름한 신앙선배들의 도움을 받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중을 보다 바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험기사는 공관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기록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짧고 간단합니다. 마가복음 주석가 중 마가복음 1:12-13의 시험기사에 오면 아무 내용도 없이 “내 마태복음 4:1-11 주석으로 가시오”라고 써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적어도 마가복음 1:12-13을 주석할 때는 어전회의를 하지 못한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마태와 달리 마가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하게 하신 의도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로마에서 핍박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고난받는 종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목적으로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험기사도 마가의 기록의도에 맞추어 기록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승리하셨는지는 마가의 관심이 아닙니다.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고,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계셨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 마가의 주된 관심입니다. 이런 고난을 받으신 주님의 제자된 우리가 핍박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피하겠느냐? 하는 것이 마가를 통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마태는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시험기사를 다룰 때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사탄을 어떻게 이기시는가?” 하는 점에 초점을 두고 기록하도록 의도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분명히 어전회의를 해보지 못한 선지자가 틀림없다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깨우침을 주는 신앙의 선배들이 남겨 준 글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선포될 때 그 말씀의 흥왕함을 인해 하나님의 교회가 힘있게 세워질 것입니다. 샘물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하고 우리가 부름받아 섬기는 모든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워가시는 교회,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목사 장로 임기제를 제안합니다. 부족하지만 필자가 섬기는 샘물교회에서 장로는 5년 시무 후, 목사는 6년 시무 후 신임투표를 받고 1년 안식년을 갖도록 내규를 정했습니다. 2/3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1회에 한해 연장 시무가 가능합니다. 말씀이 바로 선포된다면 그리고 말씀을 중심한 교회라면 담임목사가 바뀌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도록 양육될 것입니다. 목사가 바뀌면 약화되고 심지어 무너지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분명히 말씀이 흥왕하는 교회가 아님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목회자 자신의 말씀묵상으로부터 시작하여 말씀에 근거한 제자훈련이 이루어지고 말씀 중심의 교회가 세워져서 우리 시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