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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깨 37 호

가난한 천막교회에서도 제자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2004년 07월 박정식 목사(인천 은혜의 교회 담임목사)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절망적인 질병의 치유를 통해 주님을 만나게 된 저에게 은사주의를 추구하는 신앙패턴의 귀결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저의 목회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소명을 받아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성령의 능력을 더 공급받기 위해 기도생활에 힘쓰며 제 스스로도 다양한 은사를 체험케 된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향도 갖게 되었습니다.

천막교회 개척과 갈등
장로교 합동측에서 부교역자로 섬기다가 순복음 교단의 부교역자로 사역지를 바꿀 만큼 저는 사역의 촛점을 성령의 역동성에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한 확신과 지나친 자신감 속에서 86년 초에 천막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인천 학익동하면 교도소, 사창가, 판자촌이 상징물이라 할만큼 낙후되고 가난한 지역이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이었는데도 도로포장도 되지 않고, 아침 저녁이면 굴뚝마다 장작때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공동 변소를 이용해야 하는 곳이 바로 제가 개척을 시작한 곳이었습니다. 남의 텃밭을 조금 세 얻어서 10여평의 천막을 치고 시작된 천막교회에서부터 지하예배당을 전전하면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성령의 표적에 심취하기를 일년 여, 30여명의 교인들이 모이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목회의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도무지 성숙이 없는 신자들,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전도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모여도 갈등, 흩어져도 갈등의 연속이었기에 짧은 목회기간에 상처만을 간직한 채, 환멸을 갖고 목회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마음은 정리했지만 그래도 합리적으로 끝내기 위해 한 주간 동안 금식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이미 결정된 결과를 놓고 기도한다는 것이 도무지 무의미한 것이어서 영적으로 탈진된 상태로 마지못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가르쳤다”에 대한 충격-사역의 U턴그런데, 그것이 저의 사역에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껏 수없이 읽어왔던 성경이었지만, 유독 새롭게 제 눈에 클로즈업되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가르쳤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기사와 이적들이 ‘가르쳤다’로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주님의 사역의 핵심이 ‘십자가와 부활의 구속의 복음’일 뿐 아니라 ‘가르치심의 사역’임을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주님의 지상명령조차도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2장의 성령강림이후에 힘을 얻은 사도들이 성령의 표적 나타나시기만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역에 힘썼음과 11장부터는 ‘가르침의 사역’이 복음의 전파와 더불어 더 증폭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마지막 장인 28장의 ‘바울의 로마에서의 사역’에서 온몸에 전율이 이는 충격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87년 겨울, 그것은 저에게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성령을 체험했던 것 이상으로 심장이 터질듯한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했던 누가는 바울사도의 장엄한 순교장면으로 사도행전을 끝맺을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바울의 최후를 주님의 말씀을 ‘가르쳤다’로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완성해 나가야할 사명앞에서 목회 포기를 결심했던 제가 감격의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목회의 방향전환 -『평깨』와의 만남
말씀사역의 감격을 안고, 어떻게 교회를 섬겨야할 것인지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C.C.C의 10단계 성경공부와 네비게이토의 교재를 참고로 해서 집사직분을 가진 16명과 제자훈련에 돌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1년 6개월 동안의 산고 끝에 얻게된 수료자는 불과 2명뿐이었습니다.-그 중의 한 명은 제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실패의 참담함이 아닌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이 더욱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평깨』를 접하게 되어,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또다시 숨이 콱 막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에 제가 그토록 갈망하고 추구하던 사역의 목적들이 펼쳐져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날 사랑의교회로 찾아가서 제자훈련교재를 구해 하나하나 연구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어 본격적인 「제자훈련」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나 지난 후 1992년 「제16기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에 참석해서, 비로소 제가 걸어왔던 사역을 검증받고 보완하며 결코 꺼질 수 없는 열정을 충전받기도 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감격의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치질이 있던 제가 제자반을 끝내고 일어서자 방석과 제 바지에 피가 낭자했던 에피소드도 있었고, 몸살이 나면 링거주사를 팔뚝에 꼽고 제자반을 하기도 여러번이었습니다. 지금의 동역자들은 자신들이 함께 했던 제자훈련시의 감격을 잊지 못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발견들
저는 제자훈련을 하면서 몇가지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에 대해 잘못된 고정관념들을 가지고 있음도 알게 되었고 제자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제자훈련을 인도하고 또 그 은혜들을 경험하면서 잘못된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수정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첫째로, “제자훈련생은 어느 정도 학력수준과 좋은 환경이 구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저희 교회를 방문해 주시는 목회자들께서, 가장 많이 하시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성장한 지금에는 어느 정도의 학력수준과 환경적 조건을 갖춘 분들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초창기때의 제자훈련생 대부분은 학력수준이 매우 낮은 편이었습니다. 대부분이 국졸, 중졸, 고졸학력이 최고학력이었지만 그것도 많지 않았습니다. 저희 교회가 위치한 지역 자체가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교재의 질문 내용이나 심지어 Q.T의 본질 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교재에 성경구절만 잔뜩 적어오기가 다반사였고, Q.T 역시 성경 한 장 한 장을 그대로 필사하다시피 써 왔습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은 ‘성령’이 기뻐하시는 현장이요, 함께 하시는 현장입니다. 다소 이해력이 떨어지는 분들도 몇 과 정도 문제를 잘 숙지시켜주고 질문을 쉽게 풀어 나가노라면,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성령의 강권하심을 더 체험케 되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제자훈련 1과의 경우 바울의 간증을 이야기 식으로 먼저 설명하고 그 내용에 개개인의 간증을 비교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면 구수한 입담과 눈물어린 고백으로 인생살이의 고통들을 토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정과 언어표현에 있어 절제가 부족한 것이 흠이었지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울고 웃으니 카타르시스의 은혜가 풍성했습니다. 적어도 은혜의교회에서는 학력이 제자훈련의 장애는 되지 못했습니다. 지금 저희 교회 교구장으로 섬기는 20여명 중에 대졸자는 한명도 없습니다. 중졸, 심지어 국졸의 학력이 전부인 분도 있지만 훈련을 마치고 멋지게 사역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쓰시고자 하시면 읽고 쓸 줄만 알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추구하는 삶과 Vision을 가진 훈련생들을 찾고자 하는 목회자의 예리한 시각, 스스로를 작게 여기면서도 주님을 위해서는 크게 헌신하려는 훈련생의 결단일 것입니다.

둘째로, “제자훈련하면 교회가 부흥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목사는 성공적인 사역이란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으로부터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그 핵심적인 사역이 바로 “제자훈련”이라고 확신합니다. 성도를 온전케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동역자를 세우는 것이 목회의 본질입니다. 또한 영감있는 제자훈련을 통해 세워진 훈련생들의 철저한 헌신은,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양육하는 고귀한 씨앗이 됩니다. 그러므로 영감있는 제자훈련의 작은 불꽃은 진정한 교회부흥의 큰 불길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교회 부흥의 수단이 아닌, 교회와 목회의 목적으로 삼을 때, 교회부흥은 반드시 열매로 나타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은혜의교회는 그런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셋째로, 제자훈련을 위한 토양조성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제자훈련의 토양조성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교회라면 어느정도 분위기를 먼저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먼저 새가족과정을, ‘교회론 길라잡이’라는 제목으로 몇 그룹으로 나누어 실시해 본다던지, 저희 교회처럼 ‘베델성서연구’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워밍업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개척 초기에 학력에 대한 열등감과 말씀 훈련을 위한 기초마련을 이룰 목적으로 고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교회에서는 모든 동역자들이 인정하고 교회안에서만은 납득되는 학력(?)을 도입하게 되었는데 그중 좋은 것이 베델 성서대학이었습니다. 교회의 모든 섬김과 제직, 제자훈련 지원 자격을 베델 성서 졸업자로 규정했습니다. 세상에서 좋은 대학 나와도 이 과정을 졸업하지 않으면 명함도 못내밀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성장의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이것은 교회의 변화와 제자훈련을 위한 좋은 준비가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이 과정을 통해 준비될 뿐 아니라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델성서 졸업자라는 동일한 학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학력에 대한 컴프랙스들이 많이 없어져서 성경연구 본래의 감격만을 크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89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를 통해 졸업자가 211명이며 현재 150명이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은혜의교회에서는 5주동안의 새가족과정을 졸업해야 등록을 할 수 있습니다. 담임목사의 사모가 새가족들을 파악하고 그들의 은사와 신앙 정도에 따라 교회에 적응하고 사역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데 매주 10명 정도가 등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새가족 모임은 당장의 숫적 성장보다는 교회의 비전에 동의하고 동참할 동역자들을 찾는 과정으로서 큰 유익이 있습니다. 지난해인 98년에만 새가족과정을 마치고 등록한 교인이 300명을 넘었는데 대부분 교회의 일원으로 함께 성장해나가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새가족과정에서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 가능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은사를 점검하고 결정할 뿐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의 상처들을 먼저 치유받고 교회생활에 원할히 적응해 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제자훈련을 하면 목회자의 권위에 손상을 입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 중에 큰 부분들은 목회자가 완벽하지 못해서만이 아닌, 지나친 폐쇄성과 권위주의가 불신과 맞물려 손상을 받을 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은 투명성일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솔직한 마음,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을 갈망하는 영적 겸손이 오히려 성도들의 삶에 큰 감화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에이든 토저의 “참된 권위는 당신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고백은 제자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 목회자들에게 신선한 청량제일 것입니다.

은혜의교회가 누리는 축복들
제자훈련을 통해 은혜의교회가 누리는 축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질적 성장만이 아닌, 양적 성장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제자훈련을 통해서 20명의 교구장 150여명의 순장들이 세워져서 약 1,200여명의 성도를 함께 섬기고 있으며 7개의 제자반과 2개의 사역반이 양육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비전과 목회철학의 공감대를 폭넓게 형성하고 공유하게 되었습니다.예배의 감격을 통해 전인치유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배의 역동성은 참된 예배자가 만들어짐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통해서 참된 예배의 회복과 감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목사에게 특별한 신유의 능력이 있거나 강요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고 성령의 어루만지심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 열려있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믿습니다.

첫 숟가락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실패를 겪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한번에 많이, 쉽게 이루어 보려고 하는 과욕일 것입니다. 또한 이 세미나, 저 세미나 다니면서 그때마다 목회의 철학과 방향이 급선회한다면 교인들이 겪는 영적 혼란은 가히 충격에 가까울 것이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보면, 아예 무관심 속에서 체념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이세대에 하나님의 목적을 좇는 사역일 뿐만 아니라 목회자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의 특권임을 확신합니다. 이 축복이 여러 동역자들의 목회현장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