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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깨 38 호

인격과 삶으로 이끄는 지도자

2004년 07월 편집부

- 마태복음 23장이 사역자들을 향해 던지는 질문 8가지 -

나는 마태복음 23장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나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면을 폭로하신 예수님의 강력한 말씀은 전임 교역자들을 상대로 한 것이지 나같은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은 다른 신자들을 훈련시키면서, 특별히 훈련생들이 나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실망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는 문제에 대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깨달은 나는 신약에 나오는 지도력에 대한 모든 본문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마태복음 23장에 도달하게 되었다. 사실 이 말씀은 이전에는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고 제쳐두었던 말씀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그 말씀에서 빈약한 지도력에 대한 여덟 가지 통렬한 고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더욱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말씀이 나에게도 적용되었던 말씀이라는 사실을 발견 한 것이다.
나는 더 깊은 연구를 통해 바리새인들이 모두가 “성직자”는 아니었으며 많은 바리새인들이 평신도들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엑스포지터스 성경 주석은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은 “교사와 같은 직업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열려진 위치”라고 정의한다. 랍비를 포함한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마태복음 23장은 나와 같은 사람들, 다시말해 주일학교 교사,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제자훈련 지도자나 멘토, 소그룹 인도자, 학부모 등과 같은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전임사역자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돕고 있는 모든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분명한 잣대를 가지고 자격이 있는지를 검증받아야만 하는 중요한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담당하고 있는 사역의 책임한도가 어떠하든 간에 지도자라는 우리의 위치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점검해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다. 당신은 인격과 삶으로 이끄는 지도자인가? 나는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인격과 삶으로 인도하는 지도자들의 특징들을 가지고 자신을 평가해보도록 당신을 초청한다.

1. 내가 보여주는 행동은 나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마 23:2-3)
예수님 시대의 회당 전면에는 교사가 앉아 가르치는 돌로 만든 의자가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을 만한 자격을 갖춘 교사로 인정받는 무리였다. 그러나 그들은 심각한 약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가르침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은 행하라.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그저 따라하지는 말라.”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도 주님께 동일한 평가를 받고 있지는 않은가? 예를 들자면

●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도록 권면한다. 그렇다면 나는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있는가?
●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나누도록 격려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 믿음을 나누고 있는가?

우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우리의 가르침은 인정하지만 우리들의 삶의 스타일은 존경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나는 그 지도자의 능력을 존중해, 하지만 그분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 이것은 슬픈 일이다. 절대로 자신을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사람처럼 소개하지 말라. 아프리카의 전설적인 의료선교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모범을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수단이 아니라 유일한 수단이다.” 인격과 삶으로 지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르친 대로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는가?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23:4)
어느 수련회에서 설교하고 있을 때 한 대학생이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몇 분 후 세 번째이자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강단으로 올라가려고 준비중이었다. 그 날 선포한 말씀은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강력한 도전의 말씀이었다.
“왜 설교에 온통 도전하는 내용뿐이죠? 저는 격려가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그 학생의 표정에서 욕구불만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날 아침의 설교를 위해 나는 두 가지 메시지를 준비했었다. 하나는 완벽하게 준비되지는 않았지만 “솜털 같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또 다른 하나는 “과격하게“ 도전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희망을 던져주는 메시지가 충분하게 강력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 방에 설교 원고를 남겨두고 집회장소로 떠났다.
그 학생은 주님께서 보낸 메신저였다. 나는 완벽하게 준비되지는 않았지만 격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메시지를 기억을 더듬어가며 설교했다. 전달은 훌륭하지 못했지만 그 주말에 주님께서 어떤 메시지를 가장 잘 사용하셨는지는 물어보나 마나였다. 도전하는 것은 진정으로 격려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예수님께서 “네가 지도하는 사람을 향해 도전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도전하고 나서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그 짐을 질 수 있도록 아무런 도움도 제공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강한 도전을 하고 나면 그 짐을 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들어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기 위해 훈련하고 있습니다”라고 도전하고 나면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마가복음을 이용한 30일간의 경건의 시간”이라는 인쇄물을 제공한다.
인격과 삶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며 주님을 섬길 때 우리는 우리가 돕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

3. 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하는가?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마23:5, 6-12절도 읽어보라)
유대인들은 민수기 15:38-40의 교훈을 따라 그들이 입는 옷의 가장자리에 옷술을 달고 다녔다. 장식용으로 달고 다닌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달고 다닌 것이다. 경문은 구약성경 구절을 넣어 팔이나 이마에 달고 다니는 작은 가죽 상자였다. 자신들의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해 바리새인들은 옷술의 길이를 길게했고, 경문의 넓이를 넓게 했다. 더 많이 눈에 뜨일수록 더 거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경문을 차고 다닌 적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하는 마음은 내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일으켰다. 특별히 나이가 어렸을 때는 더욱더 그랬다. 언젠가 나는 일본에서 온 베테랑 선교사와 식사하는 특권을 누린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진 훌륭한 겸손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마음먹고 손님들에게 뜨거운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나의 “겸손”을 나타낼 일에 아무도 동참해주지 않기를 원했다. 내가 서둘러 커피를 커피잔에 부어 쟁반 위에 옮겨 담았을 때 나는 그 선교사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정말 겸손한 젊은이로군. 그리고 정말 재빠른 친구야…” 바로 그 때 나는 뜻하지 않게 펄펄 끓는 커피를 성경공부 인도자의 약혼녀의 등에 쏟았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다른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냅킨을 건네주었다. 12번 테이블에는 20초 동안 혼란이 휩쓸고 지나갔다. 식당전체가 고요해졌다. 나는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는 욕망이 우리의 연약한 부분이라면 대화를 영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주님께서 이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라든지 “오늘 아침 90분동안의 기도시간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말들은 아주 심오할 수 있지만 마음속의 은밀한 동기는 뽐내고자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상관없이 섬기는 법을 배울 때 인격과 삶으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된다.

4. 내게 배우는 사람들이 나를 능가할 때 기뻐하는가?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23:13)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가진 형식주의적 가치관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자신이 가본 곳 너머로 사람들을 이끌어갈 수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당신이 훈련시키고 있는 사람이 영적으로 당신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영역까지 경험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우리가 자세히 주의하지 않는다면 바리새인들처럼 훈련생들의 영적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우리는 훈련생들이 나를 능가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전쟁기간동안 챨스라는 젊은 수병이 한 그룹의 네비게이토 선교회원들을 통해 제자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는 성경공부와 성경암송, 신앙을 나누는 일의 기초에 대해서 배웠다. 그는 장래가 아주 촉망되었고, 그런 자질을 개발하도록 많은 격려를 받았다. 만약에 네비게이토 선교회원들이 바로 그 훈련생 “척 스윈돌”을 그들의 수준으로 제한하려 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겠는가?
나의 목표는 내가 지도하는 이들이 나를 뛰어넘어 신앙의 세계를 탐험해가는데까지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24은 이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훈련생들을 숨막히게 하지 말라. 그들이 기쁨을 경험하도록 도와주라.

5. 훈련생들이 나를 닮아가게 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가?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사역의 초창기에 나는 사랑스런 훈련생이 나를 모방하면 속으로 우쭐해졌다. 그러나, 나는 곧 내가 말씀보다도 나의 사적인 의견을 더 많이 가르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성경을 내 의견을 증명하는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3에서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나는 자주 나의 훈련생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붕어빵처럼 나를 본받도록 애쓰곤 한다. 훈련생들이 내 의견을 알아가기를 원했지 비길데 없는 그리스도의 지혜를 배워가기를 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프로테제들에게 본받을 만한 모델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빌 3:17)라고 담대히 말했다. 그러나 바울은 구세주의 자리를 찬탈하고 싶지 않았다. 나아가 바울은 골칫거리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이 하나님의 명령인지 자신의 의견인지를 말해줄 정도로 정직했다.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고전7:12) 바울은 자기 의견과 하나님의 뜻을 동등시하지 않았다.
훈련생들이 당신의 이미지를 닮아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성경이 독단적일 때만 독단적으로 요구하라. 개인의 의견일 때에는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하지 말라. 모든 논쟁점들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훈련생들이 스스로 말씀에서 보화를 캐내도록 자극하라. 인격과 삶으로 인도하는 지도자는 훈련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6. 나는 중요한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마23:23)
부엌에 앉아 조그마한 채소씨앗의 십일조를 가려내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바리새인이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더 큰 것 다시 말해서 공의와 같은 측정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는 실패했다. 예를들면 이런 것들이다.

● 당신은 다양한 성경공부방법을 개발시킬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가정에서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이 터뜨리는 분노에 두려워 떨고 있다.
● 당신은 훌륭한 3대지 설교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간혹 은밀하게 케이블 TV의 포르노 채널을 즐긴다.
● 당신은 절대로 경건의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언젠가 부모님들과 좋지 못한 관계를 맺고 있는 캠퍼스 사역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자기자신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아주 완고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많은 기도를 통해 결국 그녀는 부모님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나겠다고 동의했다. 나는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그녀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어땠어요?”라고 낙관적으로 물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제 생각에는 좋았어요. 저는 프런트 소파에서 성경구절을 암송했어요. 부모님들은 제게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어요”라고 말했다.
가족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의로움과 자비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성경구절을 암송하기에 적당한 시간이 있다. 인격과 삶으로 지도한다는 것은 최고의 가치를 외적인 변화나 행동이 아니라 인격과 마음의 문제에다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7. 방종을 가리기 위해 외모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23:25, 26-28절도 읽어보라)
방종(indulgence)이라는 헬라어 단어의 뜻은 “자기절제가 필요하다”라는 뜻이다. 만약 당신과 내가 개인적인 습관을 절제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서 지도력을 기대하던 사람들은 곧 다른 사람에게로 몰려갈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몰려든다. 왜냐하면 훌륭한 지도자는 자기자신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항목 중에서 당신의 삶에 존재하는 은밀한 방종의 영역은 없는가? 당신은

● 당신이 즐기는 어떤 음식을 먹고싶은 욕망에 압도당하지 않는가?
● TV 오락 프로그램에 푹 빠지지 않는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은가?
● 편의점에서 지저분한 잡지를 넘겨보고 싶지 않은가?
● 기분전환을 위해 쇼핑을 하려고 쇼핑몰에 무작정 나가지 않는가?

스스로 방종하도록 내버려두는 영역은 내 사역에 있어서 침묵하고 있는 영역이다. 은밀한 방종은 지도자로서의 온전함을 손상시킨다.

8.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마23:30, 31-36절도 읽어보라)
바리새인들은 좋지 못한 영적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당신과 나도 여기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빈약한 지도력을 발견할 때 “나는 절대로 저렇게 하지 않을거야”라고 코방귀를 뀐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자부심이다.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부패함을 잘못 이해한 것이요, 남들 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을 은연중에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우월감은 성취해야할 과업에 대해 눈이 멀게 할 수 있다. 200여 년 전 독립전쟁시 독립군 파견대가 다리를 건설하기 위해 숲에서 벌목을 하고 있었다. 파견대 장교는 군인들을 독려하고 있었지만 작업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정체불명의 말탄 사람이 나타나 상황을 파악한 후 장교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당신은 병사들과 함께 일하지 않죠?” 그러자 그 장교는 “저 말입니까 선생님? 저는 장교입니다”라고 대꾸했다. 그 정체불명의 사람은 곧바로 말에서 내려 작업이 끝날 때까지 병사들과 함께 일했다. 그런 후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제넘지 않게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정체불명의 사람이 누구였을까? 바로 죠지 워싱턴 장군이었다.
우월감은 워싱턴 장군을 자기 대신 육체 노동하게 만들었던 젊은 장교가 했던 것처럼 우리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게 만든다. 당신은 우월감이라는 거만한 자리에서 인도해낸 사람들을 관찰해 보았는가? 아니면 그들과 함께 지내며, 더러운 곳에 손을 함께 담궈 일하고, 고된 영적 노동으로 인해 굳은 살이 생긴 경험이 있는가? 인격과 삶으로 지도한다는 것은 겸손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항상 책임지는 삶
누가 사역에 헌신한 사람들의 온전함을 점검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동일한 정밀조사를 받을 수는 없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은 멘토나 지원그룹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경우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도자로서의 온전함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책임져주는 그룹(accountability group)이 있기만 해도 올무로부터 벗어나기는 쉽다.
결국 인격과 삶으로 인도하는 리더십이란 그리스도께 대한 매일의 정직함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윤리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던지신 점검표를 붙들고 정기적으로 기도하기를 시작하라.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인격과 삶으로 인도하는 영향력있는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당신을 따르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스토트 몰튼(SCOTT MORTON)
Discipleship Journal 104호 pp5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