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밀레니엄을 눈앞에 두고있는 요즘, 미래목회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목회전략과 효과적인 목회방법론에 대해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미래의 목회현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전략가운데 하나가 소그룹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서점에 나가보면 최근에 소그룹 목회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소그룹이 미래목회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출간된 크리스티안 A. 슈바르츠(Christian A. Schwarz)의 “자연적 교회 성장(Natural Church Development)”은 세계 36개국의 1,000여 교회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하여 420만개의 응답을 분석하고 종합해서 내놓은 보고서이다. 슈바르츠에 의하면 교회의 성장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이다. 즉 성장할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되면 교회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자연스럽게 자란다는 것이다. 그는 또 성장하는 교회마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환경을 8가지 질적특성으로 정리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전인적인 소그룹”이다. 전인적인 소그룹이란 성경말씀을 토론하고 해석하는데서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도록 만드는 그룹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그룹 안에서 자신이 처해 있는 개인적인 문제와 질문을 내어놓고 치유를 받으며 양육을 받을 때 그곳에 건강한 교회가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8가지 질적특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원리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두말 할 것도 없이 소그룹을 꼽는다.
소그룹에 대해서 많은 이론과 모델이 있다. 다양한 이론과 명칭에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소그룹의 다양한 이론과 모델이 어디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고 건강한 소그룹 목회현장을 갖기 위한 대안을 찾아 정리해보려고 한다.
다양한 소그룹 이론들
메타교회라는 개념을 통해 많은 교회에 도움을 주고 있는 칼 조지(Carl George)의 이론의 핵심에는 소그룹이 자리잡고 있다. “다가오는 교회혁명 이렇게 대비하라”와 “성장하는 미래교회 메타교회”라는 두 권의 책에서 그는 평신도들에게 목회자의 임무를 부여하고 교역자들은 평신도 목회자를 길러냄으로써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조언한다. 그가 말하는 평신도 목회자들은 셀 그룹이라는 작은 단위의 공동체 속에서 성도들 개개인에 대한 인격적 접촉과 보살핌을 감당하게 된다. 이들이 목회자와 함께 목회를 감당하는 작은 목사, 평신도 동역자인 것이다.
칼 조지의 컨설팅을 받아 소그룹의 체계를 잡은 교회가 여럿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교회가 시카고에 위치한 윌로우크릭교회이다. 이 교회에서 소그룹 사역을 담당한 빌 도나휴(Bill Donahue)는 칼 조지의 소그룹 이론을 교회에 접목시켜 섬김이라는 측면에 강조점을 두는 윌로우크릭 나름대로의 소그룹 사역으로 발전시켜 정체상태에 놓여진 이 교회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자신의 교회에서 경험한 소그룹 사역의 원리를 잘 정리해서 “윌로우크릭 소그룹 이야기”(도서출판 디모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미국과 싱가폴의 셀 목회 현장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는 랄프 W. 네이버(Ralph W. Neighbour) 2세가 쓴 “셀 목회 지침서(Where Do We Go from Here?)”는 소그룹에 대한 기초적인 원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셀교회는 우리 몸이 수많은 세포, 즉 셀(cell)로 구성되어져 있고 하나의 세포는 나머지 다른 세포들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교회는 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러한 세포들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어야한다고 설명한다. 셀교회는 세포분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룹의 재생산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셀에 소속된 개개인에 대한 양육과 훈련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의 도움으로 셀 목회를 정착시킨 싱가폴의 “믿음침례교회(Faith Community Baptist Church)”는 각 그룹마다 지도자들의 독특성을 인정하여 마치 교회마다 목회자의 개성에 따라 목회의 모습이 달라지듯 다양한 형태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소그룹의 모델들이 있다. 미국 달라스에서 목회하는 진 게츠(Gene Getz) 목사의 소그룹 사역은 교제와 교회개척이라는 특성을 강화시킨 형태이며, 세렌티피티의 레이먼 콜먼(Lyman Coleman)은 소그룹에 참여한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성경 속에 이입시켜 보도록 하는 독특한 질문과 함께 체계적인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데일 겔로웨이는 소그룹안에서의 돌봄에 강조점을 둔 TLC(Tender Loving Care)라는 셀그룹으로 좋은 모델을 보여준다. 미국 휴스턴의 서울침례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영기 목사의 가정교회는 내적치유와 목장의 세포분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소그룹 사역의 효시로 알려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구역은 소속감을 강조한다.
사랑의교회의 다락방은 양육에 강조점을 둔 소그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랑의교회의 다락방은 독립된 소그룹 사역이라기 보다는 평신도를 깨워 목회의 동역자로 삼는다는 제자훈련 철학이 열매를 맺는 사역현장이다. 다락방은 모세혈관과 같이 교회 전체에 생명력을 유지시켜주며 전도와 양육의 모판역할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얼마나 많은 소그룹을 가지고 있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그룹이 목회의 시스템에 핵심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소그룹으로 이루어진”교회냐가 더 중요하다.
왜 소그룹을 이야기하는가?
소그룹이 미래목회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이유는 이곳에서 성도들의 삶의 문제가 치유되고 가장 강력하게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분명한 정보의 전달이 필요하다. 말씀이 가슴에 감동적으로 다가와 살아있어야 한다. 소그룹에서 귀납법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성경을 보는 과정은 성경말씀을 내 것으로 만들어 오랫동안 기억하도록 돕는다. 남에게 들은 말씀보다는 내가 직접 생각하며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찾아가는 말씀이 훨씬 더 기억에 남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변화되도록 돕는 다음 단계는 자신이 느끼고 감동받은 진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느낌을 표현함으로 마음 문을 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게 된다. 또한 자신이 결심한 바를 표현하게 되면 그 말에 대해 책임감을 갖게되고 실천에 옮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소그룹은 이렇게 자신의 느낌과 견해를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말씀을 연구하며 삶을 드러내어 놓고 느낌을 표현하면서 사랑의 관계를 맺게되는 소그룹은 강력한 삶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런 측면에서 소그룹을 지적인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성경공부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소그룹의 핵심, 리더십 개발
사실 한국교회는 소그룹으로 자리를 잡았고 또한 소그룹이 교회 성장의 주된 역할을 감당해 왔다. 구역 또는 속회라고 불리는 제도가 정착된 것이 오래 전이다. 이러한 소그룹 제도가 소그룹다운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한낱 제도로만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최근 들어 많은 교회가 소그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형태의 소그룹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소그룹의 형태로 교회체제를 바꾼다고 모두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전인적 소그룹의 핵심은 소그룹 지도자이다. 지도자가 준비되지 않으면 소그룹은 실패한다. 지도자의 한계는 그룹의 한계를 의미한다. 교회 안에 소그룹 사역이 성공할 것이냐 실패할 것이냐는 어떤 소그룹 지도자들이 어떻게 배출되어 소그룹을 이끌어가게 되느냐에 달려있다. 그저 교회의 구조와 조직을 소그룹으로 나누어 놓았다고 소그룹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셀 목회나 가정교회의 이론을 접목하면서 많은 목회자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건강한 평신도 지도자들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그룹만 작게 나누어 놓았기 때문이다.
각 교회마다 자질을 갖춘 평신도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소그룹을 잘 이끌어가는 지도자로 서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소그룹 지도자는 먼저 말씀과 성령의 능력에 의해 다듬어진 신앙인격의 소유자이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저 사람만 좋다고 지도자로 세워서는 안된다. 그리고 학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외적인 조건만으로 결정해서도 안 된다. 소그룹 지도자로 세우기 전에 신앙인격과 역량이 점검될 수 있는 시간과 여과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했다고 해서 소그룹을 잘 이끌어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 안에서 소그룹의 역동성을 경험하며 자란 평신도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모임만 가지면 그저 묵도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누군가 나서서 설교하는 패턴에 깊숙이 젖어있다. 그러므로 소그룹 지도자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그룹의 역동성을 경험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미국의 상황은 우리와 다르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연구하며 자신의 것을 정리해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그러므로 회심한지 얼마 되지 않아도 소그룹의 장이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토론이 이루어지고 소그룹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누릴 수 있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상황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정답이 무엇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잘못 대답해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내어놓는 사람도 많지 않다. 자신의 의견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의도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화이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쉽게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설사 입을 열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하더라도 견해가 다를 때에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생각을 하는 흑백논리의 횡포 때문에 분위기가 살벌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안에서 소그룹을 소그룹답게 이끌어가는 지도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그룹 그 자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새들백교회가 하듯 단기간의 강좌 몇개를 이수했다고 소그룹을 잘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키우는 것은 결코 인스턴트화 될 수 없다. 한 사람이 변화되기까지는 수고와 고통이 수반된다. 사람을 키우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경비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저 그룹을 쪼개어 놓기만 하면 교회가 성장한다고 생각하는 단순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사람을 키우는 과정을 일컬어 일반적으로 제자훈련이라 부르지만, 그 이름이야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함께 동역자로 서서 목회의 짐을 나누어질 수 있도록 평신도 지도자를 키워가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람을 키우되 소그룹 안에서 소그룹의 역동성을 체험하며 배울 수 있도록 해야 좋은 소그룹 지도자를 얻을 수 있다. 제자훈련은 평신도 지도자를 키우는 것이다. 제자훈련 외에 소그룹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길은 없다.
공유된 비전(Vision)
제자훈련을 통해 소그룹 인도자의 리더십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비전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꿈을 나누게 되면 헌신하게 된다. 우리가 섬기고 헌신하는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선명한 그림을 가슴에 품은 자는 평생을 걸 수 있다. 함께 영광을 누릴 소망을 가슴에 품은 자는 웬만한 어려움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다.
1952년, 아주 용감하고 강한 젊은 여인이 지금까지 어떤 여자도 통과하지 못했던 카탈리나 섬과 캘리포니아 해안 사이의 해협 횡단에 도전했다. 플로랜스 체드윅은 노련한 장거리 수영 선수였지만 7월 아침의 조건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물은 너무나 차가왔고 두꺼운 안개까지 끼어있었다. 코우치와 가족들은 배를 타고 따라 가면서, 그녀를 격려했다. “계속해, 플로랜스! 너는 할 수 있어!” 짙은 안개가 앞을 가렸다. 그리고 15시간이나 수영을 해 왔지만, 여전히 해안은 보이지 않았다. 낙담이 되고 너무나 피곤하여, 그녀는 마침내 마지막으로 한번 휘젓고는,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도에 포기한 것이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플로렌스는 너무 일찍 포기를 한 것이었다. 그녀는 25 마일하고도 반 마일이나 더 수영을 했지만, 끝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반 마일을 남겨두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반 마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만 했더라도!
오늘 교회마다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끝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꿈과 비전은 나누지 않고 그저 나를 믿고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이 빚어낸 결과이다. 꿈을 나누면 함께 그 길을 걸어갈 동역자를 얻게되고 그러한 동역자와 함께 하는 사역은 힘이 있게 마련이다.
소그룹과 제자훈련
소그룹은 독립된 목회의 한 영역이 아니다. 다양한 사역과 연결되어 있다. 소그룹의 생명력은 전도에 있다. 번식하고 새로운 생명을 끌어안는 새생명의 기쁨이 없는 소그룹은 죽은 것이다. 강력본드로 붙여놓은 것 같은 교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소그룹은 생명을 상실한 것이다. 전도를 통해 새로운 피로 수혈되어야 소그룹이 살고 소그룹이 살아있을 때 교회가 건강하다.
소그룹의 기초는 리더십에 있다. 리더의 한계는 곧 소그룹의 한계를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시간을 두고 사람을 키우는 지도자 양성과정이 치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제자훈련은 교회에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이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소그룹이다. 훈련받은 평신도가 자신의 비전을 가지고 열정을 쏟아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곳이 소그룹인 것이다.
소그룹의 발전은 리더의 배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저 소그룹을 다시 쪼개어 놓는다고 소그룹이 탄생되지 않는다. 준비된 리더가 세워짐으로 새로운 소그룹이 탄생한다.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것이다. 21세기 목회현장에 소그룹이라는 소담스런 꽃을 피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오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한다. 사람 세우는 일에 시간과 열심을 쏟아부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제자훈련 없이 소그룹은 성공하지 못한다.
소그룹은 목회현장의 한 가지 프로그램이 아니다. 교회의 체질이 되어야 하고 목회 시스템의 핵심에 위치한 제자훈련의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소그룹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 평신도들의 삶과 사역의 현장으로 제 몫을 감당할 21세기 목회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