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새 천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전 세계가 요란합니다. 물론 한국교회도 새 천년을 바라보며 많은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교회의 모습은 목회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목회자인가라는 질문은 새 천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근래에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목회자로서의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사도행전 20:17-21의 말씀을 통해 변화하는 시대에서 변하지 않는 말씀을 들고 사역하는 목회자의 모습이 어떠해야할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말씀이지만 이 말씀속에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아야 할 목회자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에베소교회에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만 보더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쉬우나 좋은 마무리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바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도 역시 육신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도 약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유혹이 오면 흔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에게도 3년간의 에베소 사역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3년 정도 되면 사람냄새가 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1-2년은 긴장하기에 감출 수 있고 그러므로 신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긴장이 풀어지면 약한 부분이 노출됩니다. 그래서 첫 임지에서 3년만에 위기가 온다는 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하는 부분입니다. 저 역시도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실패하는 동역자들을 많이 보고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이든 부교역자이든 부임하고 처음은 긴장하고 또 열심을 가지고 사역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긴장은 사라지고 쉽게쉽게 사역하거나 성도들 앞에서 헛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자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제자반은 참으로 뜨겁게 준비합니다. 훈련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게 되면 준비할 틈도 없이 허겁지겁 제자훈련 시간에 임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준비하지않고 기도하지않아도 훈련생들을 손에 쥐고 마음껏 요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역자들을 통해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목회자로서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은 첫사랑, 첫 열심, 처음의 긴장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야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은혜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의지란 참으로 변덕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겸손과 눈물(19절)”, “3년이나 밤낮 쉬지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것(31절)” 우리는 본문에 나타나는 이런 말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요? 저는 여기에 큰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눈물없이 사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가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3년 내내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월이 흐르면서도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복음에 대한 감격, 영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그가 사역하는 3년 동안 한결같았다는 말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바울의 사역이 능력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사역의 전략과 능력 이전에 이러한 목회자로서의 태도가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쉽습니다. 그러나 3년을 한결같이 사역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의 비밀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되기위해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기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어느 정도의 관계이냐?”가 우리의 태도와 우리가 하는 목회의 차원을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누리는 은혜와 감동이 비례합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갈수록 심령의 투명성도 비례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 체험, 은혜 체험이 영감을 좌우하며 사역의 진실성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를 진단하고 평가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너의 눈에 눈물이 마르는 날 너의 사역도 변질될 것이다. 너의 사역이 변질된다면 하나님께서 너를 통해 일하시지 않을 것이다.” 나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그저 경험이 많은 노련한 사역자입니까? 나의 욕심을 위해 열심을 내는 사역자는 아닙니까? 아니면 서툴긴 해도 첫사랑, 첫 열심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역자입니까? 직업적인 목사가 되기는 쉬워도 진실한 목사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열심히 뛸 수는 있지만 진실한 목회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1년을 진실하게 일하기는 쉽지만 2-30년을 그렇게 일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사역을 하면 할 수록 그것을 통감합니다. 그렇지만 사역의 능력이 진실함과 순수함에 있기에 이 부분에 있어서 실패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순수함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제자삼는 사역에 힘을 쏟기 원하는 목회자들입니다.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들이 이러한 진실함과 열정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과 같은 눈물이 없다면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제자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머리만 커져버린 이상한 사람들이 태어날지도 모릅니다.
새 천년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먼저 기본에 충실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터위에서 균형을 가져야한다고 믿습니다. 부실한 기초위에 세워진 방법론과 프로그램들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처음과 끝이 같았던 바울, 눈물이 있었던 바울의 모습을 마음에 새겨봅시다. 동역자 여러분들이 섬기는 사역의 현장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새천년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