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사역에 대한 컨설팅을 하다보면 교회 안에서 신앙의 기초적인 양육이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제자훈련을 시작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종종 보게된다. 양육을 받아야 될 사람이 제자훈련반에 들어 와서 본인뿐아니라 인도자까지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제자훈련과 양육에 대해 분명한 개념정리와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한국교회는 양육과 훈련이라는 개념을 혼용(混用)해 왔다. 그래서 양육을 제자훈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제자훈련을 소그룹 형태의 또다른 성경공부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제자훈련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양육과 제자훈련이라는 개념을 차별화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룹을 구성할 때나 그룹을 지도할 때 그 목적과 필요에 맞게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념정리가 되어 있지않다면 양육받아야 될 사람들이 제자훈련반에 들어오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고 제자훈련이 양육과 구별되지 않은 또하나의 양육 프로그램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훈련과 양육
넓은 의미에서 제자훈련이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예수님처럼 살도록 돕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제자훈련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다(엡4:13). 즉 성숙이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이 있고 청·장년의 수준이 있다고 말한다. 어린아이는 젖이나 먹게 마련이지만 장성한 자들은 단단한 음식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다(히5:12-14).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은 스스로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초보의 수준을 버리고 완전한 데 나아가도록 부름을 받았다(히6:1-2). 또한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명령받았다(벧후3:18). 장성한 자의 모습은 골로새서 2:7에서 나무에 비유되어지고 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렇게 이해할 때 훈련과 양육은 분명히 공통분모가 있고 서로가 서로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협의적인 의미에서 볼 때 제자훈련이란 영적으로 강건하여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섬길 수 있는 지도자로 세워가는 고급과정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반면에 양육이란 영적으로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리에까지 갈 수 있도록 돕는 초보적인 모든 과정을 말한다. 이렇게 양육을 정의하게되면 양육에서는 돌봄이라는 요소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양육의 단계에서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세심한 돌봄의 손길이 필요하다. 양육은 신앙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들의 균형잡힌 성숙을 도모하는데 그 목적이 있고 훈련은 어느 정도 갖추어진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워가는데 그 목적이 있다. 때문에 양육이라는 말은 쉽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반면 훈련은 우리에게 상당히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양육의 핵심 , 균형잡힌 성숙
협의적인 의미로 양육을 정의한다면 양육의 과정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숙”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젖을 떼고 이유식을 거쳐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양육이다. 그런데 “성숙”에 있어서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요소가 바로 “균형”이다. 성숙은 균형있게 자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 해온 양육은 종교적인 관습과 행동이라는 측면으로 치우쳐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의 균형,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의 균형, 복음전도와 사회봉사의 균형, 예루살렘과 땅 끝의 균형이 필요하다.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테드 워드(Ted Ward) 박사의 이론을 따르자면 균형잡힌 영성은 우리의 삶의 전(全) 영역, 즉 신체적(Physical), 정신적(Intellec-tual), 감성적(Emotional), 사회적(Social), 도덕적(Moral) 발달영역의 균형을 의미한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양육체계는 교파나 교회의 문화에 따라 한가지 영역으로 치우친 모습을 보여왔다. 어떤 교단은 인지적인 측면만을 강조해왔고, 어떤 교단은 감정적인 면에만 집중해왔다. 또한 의지적인 측면에서 실천만을 강조한 흐름도 있었다. 그러나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결코 건강한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인지적인 교육에 길들여진 성도들이 우연한 기회에 한번 감성적인 교육을 접하고 감동을 받으면 아예 극단적인 신앙형태로 돌아서게 되어 물의를 빚게되는 모습을 종종 보게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취약한 감정적인 영역을 균형있게 개발할 수 있도록 공동체적 분위기속에서 양육을 받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인 영역 역시 양육의 취약한 부분이다.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재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재정관리 세미나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정치적 안목, 환경문제에 대한 자세 등에 대해서도 성경적 관점에서 명확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모든 부분이 포함될 것이다. 또한 건강한 부부관계, 자녀양육, 교회생활, 사회생활과 같은 관계적 측면을 다루는 양육의 과정이라든지 성경의 전체를 개관하도록 돕거나, Q.T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기도하도록 돕는 양육의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결국 양육의 목표를 “균형있는 성숙”이라고 이해할 때 양육의 과정자체도 그러한 목적에 맞게 계획되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양육체제의 문제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양육시스템이 가지고 있던 또다른 문제는 획일적이고 계단식이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양육과정을 생각하면 우리는 새신자반을 거쳐 일대일 성경공부, 기초양육반, 초급 제자반, 중급 및 고급 제자반 등의 일련의 과정을 만들어놓고 거쳐가도록 만드는 커리큐럼을 떠올린다. 이러한 경직된 개념은 양육체계를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생각하지 못하고 일률적인 과정을 통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증을 주는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오늘날의 교회를 학원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말았다. 그저 좋다는 프로그램들을 모아 놓은 짜집기식의 양육시스템이 대부분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성도들 개개인의 삶의 영역 속에서 채워지고 보강되어야 할 최소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채워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하는데 그런 적응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선교단체나, 여러기관들의 양육프로그램들이 그대로 교회에 도입되면서 생겨난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양육체계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 삶의 현장 속에 실재하는 아픔과 고통과 문제들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춘 맞춤식 양육시스템을 세워가야 할 것이다. 관리자 위주의 시스템이 아니라 양육대상의 필요에 초점을 맞춘 필요중심적인 양육 프로그램이 이루어져야한다.
또한가지 교회내에 균형있고 체계적인 양육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장애물이 된 것은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지금 당장 열매를 보고싶어하는 조급함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을 기르는 일이란 사람들에게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고 땀을 흘려야 하는데 목회자들이 이러한 과정에 헌신하는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까이에 다가가 충격을 주기보다는 그저 멀리서 감동을 주는 존재로 남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은 일만 스승은 있으되 아비된 자가 없다는 말씀처럼 자식의 배설물을 받아가며 부모의 심장을 가지고 섬기는 모습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그저 하나의 과정,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이루어지는 양육이 균형잡힌 성숙으로 열매맺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양한 방법을 통한 양육
지도자가 양육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양육이라는 과정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실 “양육”의 강점이 있다면 다양한 방법이 사용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 평신도들의 활발한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흔히 교육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고 말한다. 즉 공식적 교육(Formal Education, 사회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교육과정으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학위과정과 같은 것을 말한다)과 비형식적 교육(Informal Education, 사회화라고도 하는데 의도적이거나 혹은 의도성이 없는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을 말한다), 그리고 비공식적 교육(Nonformal Education,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 교육은 아니지만 개인의 필요에 따라 참석하는 교육의 형태를 말한다)이다. 교회교육에는 말 그대로의 공식적 교육은 없다. 단지 공식적 교육에서 행해지는 교육형태의 틀을 그대로 교회 안에 빌려다 사용하는 교육이 있다. 교회라는 틀 안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정해놓은 교육의 과정을 밟는다면 공식적 교육의 틀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양육은 한국교회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이것은 일관성과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강점이 있지만 필요에 따라 변화를 준다거나 균형있는 양육을 이루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수시로 마련되어지는 비공식적(nonformal) 교육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양육의 강점은 필요에 따라 적용시키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교육의 형태는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비형식적(informal) 교육의 현장이다. 양육의 가장 기본적인 현장은 소그룹이다. 소그룹이야말로 모든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자연스럽게 양육을 제공할 수 있는 조직이다. 소그룹 지도자를 통해서 신앙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양육이 이루질 때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 소그룹 지도자들은 목회자가 가지고 있는 비전을 가슴에 품고 함께 목회를 돕는 연장선(extension)이다. 이들이 없다면 양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목회자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감당할 수 있는 성도들의 숫자는 70명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평신도 목회자들이 세워지면 그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교회의 사이즈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그룹안에서 평신도 지도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형태의 양육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조직으로 남아있는 것은 21세기를 맞이한 한국교회가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소그룹을 통한 관계중심의 양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소그룹 지도자를 세워가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사람이 준비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눈물과 땀, 정열을 쏟아부어야만 사람이 세워진다. 그러다 보니 많은 목회자들이 쉬운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공식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 놓고 모두가 이 과정을 거쳐가도록 강요하거나,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단기적인 세미나 위주의 양육으로 때우게 된다. 양육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소그룹과 같은 환경 속에서 준비된 지도자들을 통해 영향을 받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기본적인 양육의 환경이 조성되면 공식적인 교과과정이나 비공식적 교육방법이 힘을 얻게된다. 상승작용(synergy)이 일어나는 것이다. 제자훈련을 통해 평신도 지도자들을 길러낸 교회들은 소그룹 안에서 자연스럽게 양육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내의 다른 양육 프로그램들이 채워줄 수 없는 전인적인 부분을 다루어 줌으로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시너지를 활용하라
물론 앞서 말한 세가지 차원에서의 양육은 균형이 필요하다. 사회화를 통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해서 공식적 교육과정이나 비공식적 교육방법을 무시하면 안된다. 성도들의 필요에 민감한 진단과 대안을 따라 형성된 비공식적 양육 프로그램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교육방법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나누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단체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디모데성경연구원,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 직장사역연구소, 프리셉트, 파이디온선교회 등의 전문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들의 노하우를 활용하는 것은 수준높은 양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현실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의 80%를 차지하는 중소도시의 작은 규모의 교회가 수준있는 양육의 체계를 갖기 위해서는 교회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교회일수록 목회자가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좋은 강사를 모시려고 해도 경제적인 부담이 이만저만 크지 않다. 그러므로 같은 목회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이 연합하여 각 교회의 장점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실례로 진주에 있는 몇몇 교회는 네트워크를 이루고 각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모든 교회가 함께 나누는 형태로 각종 세미나와 교육 이벤트를 공유하고 있다.
또한 한 교회가 가진 은혜를 다른 교회와 나누는 지혜도 필요하다. 한 교회에서 적용해 열매를 본 프로그램을 형제교회와 나누며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울산교회(담임목사 정근두)의 새생명운동이나 제자교회(담임목사 정삼지)의 양육, 평택대광교회(담임목사 배창돈)의 전도와 같이 열매있는 사역을 함께 나눌 때 보다 심화된 사역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기쁨으로 사역의 노하우를 내어놓을 수 있으며 겸손하게 배울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삶이 변화되고 균형있게 성장해가기 위해서는 양육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제자훈련과 양육은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양육이 없는 제자훈련은 불가능하며 훈련된 평신도 지도자들이 없이 교회안에서 균형있는 양육이 이루어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새천년을 맞이하면서 양육의 중요성은 더욱 무게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할 사실은 양육은 방법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으로 사람이 자라지 않는다. 양육자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바울의 말처럼 아비의 심정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인생을 향하여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비전으로 기대하며 나아갈 때 진정한 양육이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