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로서 한 생명이 태어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큰 기쁨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 또한 소그룹 사역을 통해서 이런 기쁨을 맛보고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고, 또 함께 모여 있을 때에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하고 특별한 은혜들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한 사람의 지속적인 변화와 구체적인 성장의 열매들을 발견하고 거두게 되는 장은 역시 소그룹이 아닌가 생각된다. 수년간 제자훈련을 인도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감사는 바로 그런 류의 것이다. 모나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함께 웃고 울며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서로를 빚어가시는 것을 보는 감격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부족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감사와 보람, 또 계속해서 주님의 도구로 쓰임받고 싶은 기대와 바램, 그것이 소그룹을 인도하는 인도자로서의 나의 심정이다.
그러나, 소그룹을 통해 한 사람의 영혼과 전인격을 어루만지고 돌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그룹을 인도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절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근본적으로 본다면 살아있고 변화가 나타나는 소그룹을 인도한다는 것은 소그룹을 이해하고 몇 가지 기술을 익힌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한두 번의 세미나와 몇 차례의 강의를 듣는다고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다. 소그룹을 통해 사람이 변화되고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면 먼저 소그룹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변화되고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맡아 섬기는 그룹 멤버들에 대한 깊은 애정,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해 가지셨던 그런 목자의 심정이 있어야된다고 생각한다. 섬기는 영혼에 대한 사랑없이 소그룹 사역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다.
소그룹 인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기술중의 하나가 “경청”하는 것이다.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자는 벙어리와 같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소그룹이라는 환경에서 듣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소그룹 인도자가 섬기는 이들에 대한 애정이 없이 “경청”에 대해 배운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기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소비자의 심리를 연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소그룹 인도자는 섬기는 이들에게 헌신한 사람이다. 섬김의 목적은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멤버들에 대한 애정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전제 하에 소그룹을 효과적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한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듣는 것이다.
듣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듣는 것이 어렵다구? 나는 오늘도 듣고 있는데? 내 청각 기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물론 우리 대부분은 훌륭한 청각기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소그룹을 이끄는 지도자, 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기를 소원하는 지도자들에게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청각기능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소그룹 인도자에게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존 파웰(John Powell)은 “진정한 경청이란 언어의 이면을 꿰뚫어 언어 속에 숨은 뜻을 이해하고 그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상대방을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는 듣는 것을 통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나 정보와 같은 내용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전달되는 그 자신, 말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상대방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감”하게 된다. 캐롤 레인버거는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대신 경험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많은 목회자들, 평신도 지도자들은 대부분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익숙하다. 지도자의 자리에서 경험이 쌓일수록 듣고 이해하는 역할보다는 말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경험이 많아지면 인내하며 듣고 그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기 보다는 쉽게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까닭이다. 그러므로 “경청”은 훈련되어야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청을 통해 어떤 유익을 얻게 되는가? 소그룹 지도자는 왜 경청을 배워야 하는가?
첫째,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해 받기를 원한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이다. 특히 현대인들에게 그러한 욕구는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을 치유하고 도와줄 수 있다. 경청에는 “이해”라는 요소가 있고 “이해”는 좋은 치료제가 되는 까닭이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그때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소그룹에서 실제로 그 힘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듣기는 들으나 많은 오해가 생기고 그 결과 관계가 깨어진다. 관계가 깨어지면 지도자는 영향력을 끼칠 수 없게 된다. 사실 우리는 듣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기 위해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말을 하기 위해 듣는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입장에 서서 듣는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경청은 불가능하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패러다임에서 들어야만한다.
스티븐 코비는 “경청에는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가 지향하는 경청은 상대방의 패러다임에서 듣는 “공감적인 경청”이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자면, 패러다임이란 사물을 보는 방식, 관점, 인식의 틀, 신념을 말한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지 않는다. 어떤 사실을 받아들일 때도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가치관 등에 의해 해석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당신은 왼쪽의 그림에서 어떤 모습을 보았는가? 어떤 사람은 노파의 얼굴을 어떤 사람은 젊은 여인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원래는 이 그림을 보여주기 전에 먼저 그룹을 둘로 나누어 서로 다른 그림을 보여주게 된다. 한 그룹에는 노파의 얼굴을 또다른 그룹에게는 젊은 여인의 얼굴을 보여준 다음 위의 그림을 보여주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사람들은 먼저 본 그림의 영향을 받아 위의 그림에서도 같은 모습을 먼저 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우리는 사물을 해석한다. 우리는 우리가 착용하고 있는 패러다임이라는 안경을 통해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바로 그것이 패러다임이다.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될 때는 그 이면에 숨겨진 것이 있다. 그 행동과 말에는 그만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청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입장이 아닌 말하는 이의 입장에 서서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감적인 경청이란 바로 상대방의 패러다임으로 듣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때에 ‘이해’라는 열매를 거두게 된다.
두 번째, 경청은 상대방에게 영향향을 끼칠 수 있는 좋은 기초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스티븐 코비는 “감정은행계좌”라는 독특한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 구축하게 되는 신뢰의 정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은행계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든 사람과 계좌를 개설하게 되는데 예입도 하고 인출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감정은행계좌 저축 감정은행계좌 인출
성실한 약속이행 불성실한 약속이행
부드러움과 온유, 작은 친절 분냄, 참지 못함, 거친 말
정직함, 언행일치 부정직함, 이중적인 모습
인정과 격려 비난과 이기적인 행동
진지한 사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
은행계좌와 마찬가지로 관계에 있어서도 잔고가 많이 남아있을 때 우리는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잔액이 남아있지 않을 때 관계는 파산하게 되고 지도자로서 지도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존 맥스웰은 변화를 추구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신뢰도를 점검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공감적인 경청은 확실한 예입방법중 하나이다. 신뢰관계가 탄탄하게 구축될 때 멤버들은 지도자의 말을 듣고 영향을 받게 된다. 존 맥스웰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리더를 먼저 받아들인 후, 그 후에 리더의 비전을 받아들인다”
세 번째, 경청을 통해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진단이 있을 때 정확한 처방이 나올 수 있다. 우리가 듣는 목적은 단지 듣기 위한 것이 아니다. 먼저 그를 이해하고 앎으로써 적절한 질문과 도움을 제공해 주기 위함이다. 소그룹의 핵심 중 하나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하워드 핸드릭스 교수는 “좋은 지도자는 좋은 대답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잘 듣는 지도자가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실제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공감적인 경청을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1.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자세와 시선을 가지라.
자세와 시선을 통해 “나는 지금 당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물론 상대방을 취조하듯 부담스럼게 집중하는 자세나 시선은 오히려 상대방이 마음을 여는데 방해가 되겠지만 부드럽게 집중하게 되면 우리 자신이 경청하는데 유익할 뿐 아니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쉽게 오픈 할 수 있게 된다.
2. 눈과 마음, 그리고 귀를 통해 들으라.
상대방이 말하는 참 뜻을 알고 싶다면 말하는 것 그 이상을 들어야한다. 말뿐 아니라 그의 시선과 몸짓, 어조까지도 고려해야만 그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한 조사는 의사소통에서 단지 7%만이 단어를 통해 전달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온 몸으로 표현되는 언어를 놓친다면 우리는 좋은 경청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3. 경청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라.
개인적인 대화나 소그룹에서의 대화시에 듣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를 미리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지도자가 통제할 수 없는 방해요소들도 있지만 통제가 가능한 것들은 미리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화와 핸드폰을 차단한다든지, 어린 자녀들에 대한 대책을 미리 세운다든지, 갑작스러운 방문객을 사전에 막는다든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소그룹에서는 지도자와 멤버간의 의사소통뿐 아니라 멤버 상호간의 의사소통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이야기할 때 모두가 함께 경청하는 분위기와 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지도자가 감당해야할 중요한 과제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질문을 던질 때에 한 사람의 대답을 활용하여 심화하거나 발전된 질문을 던짐으로써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한다든지,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4. 의문나는 부분은 질문하라.
적극적인 경청을 위해 상대방의 말을 지도자가 이해한 말로 다시 핵심을 정리해 준다든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자신이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해했다고 짐작하는데서 오해가 시작된다. “제가 듣기로는 ...라고 느끼시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집사님의 말씀은 ... 이런 것이지요?”라는 표현들은 내용의 재정리나 확인에 있어서 유용한 표현들이다.
5. 섣불리 판단하지 않도록 하라.
이것은 경험많은 지도자들일수록 쉽게 빠지게 되는 함정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음의 4가지 방법으로 반응하게 된다고 한다. 첫째로, 판단한다. 이것은 내가 동의하는지 하지 않는지의 문제이다. 둘째로, 탐사한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기준과 경험에 의지하여 질문하는 것이다. 셋째로, 충고한다. 이것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조언하는 것이다. 넷째로, 해석한다. 자신의 동기와 행동, 경험에 의거하여 사람들의 행동을 유추하고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반응방식에 젖어 있다. 경험이 많은 지도자일수록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하기도 전에 자신의 경험으로 사실을 해석하고 판단한 다음 대답을 준비하게 된다. 물론 운이 좋으면 적절한 대답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인내하고 충분히 듣고 이해할 때 대화의 깊이는 달라질 수 있고 보다 정확한 처방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심판관, 배심원의 역할을 하는 한 경청할 수 없고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된다.
6. 격려하라.
대화의 과정에서 상대방이 항상 조리있게 핵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 서서 격려하고 적극적으로 경청할 때 그는 더 많은 것을 열어보이게 되며 우리는 그를 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용납은 상대방이 다른 모습으로 가장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때 우리는 그를 더 잘 도울 수 있다.
“듣기”는 소그룹 인도자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일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경청”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경청 훈련은 기법중심인 성격윤리에서 출발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이런 류의 경청 훈련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성품이나 인간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나는 경청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성품과 커뮤니케이션” 이라는 소제목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다. 우리의 성품은 마치 발광체처럼 계속해서 방사되고 전달되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청”은 단지 기술과 기법의 문제를 넘어서서 우리의 성품과 인격의 문제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경청은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 공감하고 이해하고자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경청한 다음 이해시키라!”는 명제는 소그룹 지도자가 가슴에 새겨야하는 중요한 말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공감적인 경청”을 하게 된다면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들이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지도자로서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는 “변화”라는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기억하라. 사람들은 소그룹 지도자인 우리가 얼마나 자기를 알며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기 전까지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