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을 처음 맡으면서 제 마음 속에는 “다른 목사들보다는 휠씬 잘해야지. 난 잘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물론 긴장하고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좀 더 좋은 목사로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인도한다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제자훈련의 시작부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 1. 제자훈련의 시작(1권)

제자훈련을 시작했을 때 솔직히 각 사람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방향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저 교재의 질문 외에 보조질문을 어떻게 던지고 어떻게 인도할까 하는 것에만 너무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자훈련시간에 일정한 스타카토가 필요한데 너무 긴박하게 훈련생들을 몰아갔습니다. 이것은 제자훈련생들에게 “목사님이 여유 없이 하신다” “목사님이 자신이 정해놓은 예정표대로 한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제 편에서 성령이 인도하실 여유를 만들어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그룹역동성에 대한 실전경험이 없어서 훈련생들 간에 일어날 수도 있는 미묘한 갈등을 미리 예측하고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자녀들의 학력차나 남편의 신앙 차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자기 남편이나 자녀에 대해서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은 별로 나눔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도 이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환기시켜야 할 지 몰랐습니다. 만약 목회자가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어려움을 충분히 드러낼 용기를 가질텐데, 제 자신이 그분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훈련생들도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 받으려는 용기를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고 이해하라고만 계속 강조했지 어떻게 서로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여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아니 사실 저 자신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권의 내용 속에서 비교적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석하고 나누었던 저의 성실성을 제자반 식구들은 긍정적으로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초반에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에 제자반을 공개할 기회가 있었고 그 때 우리 반이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훈련생들의 훈련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꺽여지지는 않았습니다.다만 제자훈련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힘을 잃어 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 2. 제자훈련의 좌절(2권)

하지만 2권에 들어서자 마자 제자훈련생들은 정확히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권이 교리부분이라 딱딱하기만한 내용이었기에 그 부분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부류와 계속되는 교리설명과 분석에 지쳐가는 부류였습니다. 하지만 교리부분을 실제 삶에 적용시키고 이해시킬 줄 몰랐던 저에게 2권 14과의 기간은 부담스럽게 느끼는 훈련생들을 끌어가기에 너무 긴 기간이었습니다.

교리공부에 가까운 교재의 부담감, 1권부터 시작된 실망 그리고 무엇보다 2권을 진행할 때 사역에 너무 지쳐있던 제 자신의 문제가 겹쳐 2권은 정말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1학기를 마칠 즈음엔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제자훈련생들과 저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2권이 마무리되어가던 1학기 말, 훈련생들의 답답함을 드러내어 치유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개된 두 번째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 제자반 참관에서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자반을 공개할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우리 제자반을 보호하려고 했고 참관 후 한 목회자가 던진 말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주고 말았습니다. “적당히 오픈하고 적당히 감추는 사랑의교회 제자훈련의 전형이군..” 그것은 그 분 한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확인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울해졌습니다. 그리고 1학기가 끝났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친해졌으면서도 이야기를 나눌 때 서로의 입장에 대해서 충고할 줄만 알았지 어려움을 토해내는 상대방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기본적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1학기가 끝난 것입니다. 단지 2학기에 다룰 3권의 내용이 실제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때 좀 더 잘해보다는 위안만 실낱 같은 희망처럼 우리 안에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 3. 방학 동안의 안간힘

방학동안 제자훈련을 이렇게 인도해서는 안되겠다는 절박감이 점점 제 영혼 속에서 팽창되고 있었습니다. 방학동안 저는 개인적으로 제자훈련생 모두를 2회 이상 상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훈련생의 남편, 자녀, 시댁식구, 친정식구에 대한 모든 관계와 라이프스토리를 들었고 비로서 훈련생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시작했ㅅ브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자반 총무였던 집사님이 “목사님이 자신의 현재를 과거와 결부시켜 이해하려 한다”는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방학이 끝날 즈음에 제자반을 뛰쳐나가 버렸습니다. 물론 그 집사님의 불만은 표면적인 것이었고 보다 깊은 문제가 있어서 제자반을 그만 둔 것이지만 그 집사님을 통해서 저는 또다시 충격과 좌절을 겪었습니다. 다른 훈련생들에게도 목회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목회자에게 이해 받았고 이해 받을 수 있다는 의식이 생긴 반면 목회자가 자신의 문제를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부담감이 동시에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상황을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았습니다. 훈련생들의 삶 속에 직접 개입하시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 훈련생의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저와 훈련생들은 각자 자기 문제에만 집중했던 1학기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식어버린 기도의 열망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와 상황을 만난 것이지요.

거기다가 총무 집사님이 제자반을 그만 두겠다는 선언을 하자 나머지 모든 훈련생들은 또 한번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연약함과 무지와 악함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일방적인 판단을 자제하고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노력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좌절과 문제와 기대가 안개 속에 뒤엉킨 채 새로운 2학기의 시작을 맞게 되었습니다.

▶ 4. 진짜 제자훈련(3권)

3권을 시작할 때 총무 집사님은 끝끝내 제자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모든 훈련생들이 만류했지만 부족하고 무지한 목사에게 실망과 신앙생활에 대한 ‘자기 의’를 포기하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접하면서 비로서 저와 훈련생들은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2학기에 배웠던 말씀의 진리들을 3권을 통해 다시 확인하면서 우리는 말씀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앞에 겸손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실패(총무 집사님이 제자반을 포기함)가 있었고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서로에 대한 섬김과 사랑)가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교만할 수 없었습니다.

인도자인 저 자신도 제자훈련을 인도하는 매 시간, 끊임없이 성령님께 지혜를 구하고 상황을 인도해 주시길 간구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주 한 주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것을 모두가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부터 제가 제자반 식구들에게 계속 강조했던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나눔의 원리였습니다.

1) 이야기를 들을 때 말의 내용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에 더 관심을 쏟아라. “나도 그 감정 이해해요”라고 신호를 보내라. 상대방의 눈을 보고 한없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싶은 표정으로 대하라.
2)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고 용납하도록 만들려는 나의 욕구에만 집착하지 말라. 상대방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도록 내가 돕고 격려하기 위하여 말하라. 상대방의 용납을 다 받으려고 하지 말라. 참된 용납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라.
3) 나의 고백이 자랑이나 과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 섬김의 태도로 나누지 않는 고백에는 절대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걸러지지 않는 우리의 고백은 결국 분열로 끝나게 될 수 있다.

결국 이런 모든 과정들을 통해 훈련생들은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높아진 부분을 낮추기 시작했고, 자신의 낮아진 부분들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나눔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낮아진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는 세 번째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 참관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제자반을 오픈하는 시간 내내 우리 모두는 울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도 보호할 것도 없이 정말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목회자들을 감동시켰던지 끝난 후의 평가시간에 엉엉 울면서 고맙다고 말하는 분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서 흘리는 그분들의 눈물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부족함을 용납하신다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우리의 제자훈련은 12월이 되어 마무리 되었습니다.

▶ 5. 끝나지 않은 제자훈련 (사역반으로 올리면서)

마지막 3권이 끝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서 눈물을 거두어 가시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서 나오는 눈물만큼 우리가 변화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자훈련을 마쳤지만 솔직히 훈련생 모두가 감사하고 즐거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몇 분들이 연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남편과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이 어떻게 보면 더욱 증폭된 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어느 때보다 훈련생들을 위해 많이 기도합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기도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저녁에 서재에서 기도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그 분들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주실 때까지 저는 계속해서 사랑하는 훈련생들을 위해 기도할 겁니다. 그분에게 진 빚을 내게 맡겨주셨던 양떼들을 위해 갚아가겠습니다. 저의 훈련생들은 사역반으로 올라가지만 저의 제자훈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6. 사랑하는 제자반 식구들에게 (마지막 편지)

무슨 일이든 끝나고 나면 후회부터 남는 것이 인생살이지만 이번 제자반은 정말 진한 후회와 여운이 남습니다.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 모르고 시작했던 것 때문에 후회가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근거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파악했던 것이 정말 후회가 됩니다. 저는 여러분을 너무 몰랐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몰랐던 것만큼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주는 통로로는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나누면서 삶을 나누지 못했던 것 때문에 후회가 됩니다. 제가 마치 말씀장이처럼 말씀을 먹여주려고 노력했지만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이 어떻게 파고들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훈련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저 자신부터 말씀이 삶 속에 녹아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저의 한계가 여러분의 한계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제자반을 시작할 때 저에게 주셨던 그 기도제목들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거나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저를 많이 아프게 합니다. “상황은 결국 변한 것이 없지 않느냐?”라는 생각이 저를 많이 슬프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제가 원하는 때에 주시리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어떤 약속의 표징을 주시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하나님 편에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네요.

결국 저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어쩌면 올해는 저로 하여금 제자훈련생들을 훈련시키라고 주신 1년이 아니라 34살의 다듬어지지 않고 부족하기만한 목사를 훈련시키기 위한 1년이었네요.” 그렇습니다. 사실은 여러분이 저를 섬겨 주시고 저를 다듬어 주셨습니다. 올해의 제자훈련생은 저 혼자였습니다. 저를 용납해 주시고 이해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