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평깨> 보기

매거진 평깨 48 호

저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 제자훈련 지도자들의 고백

2003년 04월 편집부


"실패를 딛고 전진하라"는 교훈이 있습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실패로부터 성공의 교훈을 얻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지만 타인의 실패로부터 성공의 지혜를 찾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타산지석"이라는 예부터 내려오던 지혜를 잘 활용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에 성공하는 자세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자훈련을 처음 시작하는 분들의 실패를 조금이라도 줄여 드리고자 10년 이상 제자훈련에 헌신한 제자훈련 지도자들이 자신의 아픈 기억을 더듬어 동역자들과 함께 나누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실패의 쓰라림이 배어있는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기에 익명으로 공개하게됨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슷한 내용들을 한 주제로 묶어서 소개해드립니다.

▶ 사례 1 : 지도자가 인격적인 준비가 부족한 경우

훈련생과 나눈 대화의 비밀을 지키지 못한 경우

제자훈련반에서 나눈 내용을 공식적인 설교에 예화로 사용해 문제가 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성격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은 자매가 제자반에 들어왔어요. 그 자매가 보라색 계통의 색을 좋아하는데 온 집안을 다 보라색 계통으로 치장을 할 정도로 자기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특별히 친정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참 좋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래서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용서하지 못하고 어머니만 만나면 마음의 평안이 깨어지는 그야말로 원수관계였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다뤄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아직 그 자매와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충고를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문제를 끄집어냈어요. "자매님, 다른 것은 다 좋을지 몰라도 어머니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 지도자로 서기가 힘듭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 자매는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던 거예요. 그리고 제가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이 설교하는 가운데 그 자매 이름을 대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예화로 인용했어요. 공식적인 설교 속에 자기 이야기가 다뤄지니까 관계가 극도로 안좋아 졌어요. 결국 그 자매는 마음을 닫아버렸고 더 이상 그 문제에 관해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교역자의 인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린 경우

교역자가 영적인 권위나 능력이 준비되어있지 않을 경우에는 설교나 심방사역만 하고 제자훈련(소그룹사역)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자훈련은 소그룹 상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도자의 인격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거든요. 솔직하려고 한 것이 때때로 무례할 수가 있고 말 실수도 자주 할 수 있거든요. 농담을 한다든지, 흥분하면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거든요. 설교 할 때는 어느 정도 준비된 말을 하고 조심하지만 개인적으로 만날 경우에는 지도자의 인격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제자훈련 잘못하면 오히려 목사님이 오래 못 버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요. 특별히 교역자가 어떤 죄에 빠져있거나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제자훈련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 사례 2 : 제자훈련 지도자의 역량이 부족한 경우

제자훈련을 프로그램으로 인식한 경우

지도자가 훈련생 한 명, 한 명을 위해 일주일을 기도하면 훈련시간에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더 명확하게 분별하게 되고 제자훈련이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변화의 도가니가 됩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과제물이나 체크하고 교재 내용만 가르쳐서는 몇 년을 훈련시켰다 해도 지도자 자신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 가장 좋은 것은 제자훈련을 하고 나서 하루 이틀 사이에 훈련생들의 과제물을 읽어보고 그 속에 묻어나는 훈련생들의 영적인 필요를 찾아 전화해 주고 돌봐주면 훈련효과는 확실합니다.

한번은 다른 사역에 너무 바쁜 나머지 훈련생 한 명, 한 명을 위해 기도를 많이 못해줬어요. 그런데 어느날 다니엘서를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느부갓네살 왕이 포로들 중에서 몇 명을 선발해서 훈련시키잖아요. 포로를 왕의 식탁에 초대할 정도로 극진히 대우한 거죠. 그날 아침에 하나님께서 이런 책망을 주셨어요. "너는 훈련자고 그들(훈련생들)은 네가 훈련하는 사람이라는 시각을 버려라. 그들은 왕의 자녀다 왕의 식탁에 초대된 왕의 자녀다." 굉장히 하나님이 심하게 가슴에 도전해주는 말씀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정말 많이 기도를 했더니 벌써 훈련생들의 상태를 보는 것과 그들의 상황에 맞는 말씀을 주는 것이 달라지더라구요. 숙제도 미리 점검하면서 뒤로 처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작업을 계속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교역자 자신이 영적으로 준비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왕의 자녀로, 하나님의 종으로 훈련시킨다는 큰 사랑과 긍휼과 인내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각 영혼을 다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갈 길을 제시해주신다고 생각해요.

"내가 얼마나 깨어있고 내가 훈련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조건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싸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저는 훈련을 하면 할수록 더 자신이 없어져요.

삶의 문제를 적절히 다뤄주지 못한 경우

제가 처음 제자훈련 맡았을 때인데, 당시 제 나이가 무척 어렸고 또 여 제자반을 맡았기 때문에 젊은 목사가 "아줌마"의 삶 구석구석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리고 남자가 다루기에 예민한 주제들도 많이 있었구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 분이 결혼에 실패하고 딸 하나를 데리고 직장생활하면서 신앙생활하는 분이었는데 남자 교역자로서는 다루기가 참 껄끄러운 삶의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예를들면 그분에게 남자가 생겨서 서로 교제하고 사귀는 시기 였는데. 사실 어느 선까지 사귀는지 다루기가 쉽지 안잖아요? 그래서 그런 문제는 여자분들 끼리 이야기할 수 있도록 중간에 다른 훈련생을 세워서 그 분 이야기를 듣고 또 "이렇게 안내를 해라. 저렇게 도와줘라"하는 스타일로 문제를 다뤘어요. 그런데 실상 지도자와 훈련생이 그런 문제를 놓고 함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 인격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제자훈련의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집사님과의 관계에서 그 부분을 꼭 집고 넘어갔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직설적으로 그 문제를 물고 넘어지기에 답답하고 낯뜨거워서 결국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했는데 결과는 깊은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형식적인 성경공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적절한 시기가 되었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인간적인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서 성경적으로 솔직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더라면 그 분도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또 관계도 더욱 깊어 졌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돌봄의 순간을 놓친 경우

제자훈련을 수료한 이후에 있었던 일인데요. 한 자매에게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하나 있었어요. 식구가운데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형제가 있었는데 그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할 때 저에게 도움을 요청해왔어요. 이런 요청이 있을 때는 전화 받는 즉시 쫓아가서 그 분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삶에 고통의 자리에 함께 있어주었어야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때 마침 출장 가는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너무 바빠서 도무지 같이할 수 없으니까 출장 다녀와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돌아왔을 때는 이미 문제의 수위를 넘어서 있었고 그분은 좌절감과 상실감에 휩싸여있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지 못한 경우

지도자가 어떠냐에 따라서 훈련은 너무 다른 것같아요. 제가 처음 훈련을 담당했을 때 한 분을 훈련시키는데 실패했는데 그 분을 볼 때 마다 미안하고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이혼한 경력이 있어서인지 굉장히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분이었어요. 자기 집도 한번도 공개하지 않고 훈련받을 때 거의 말도 하지 않는 분이었어요. 처음 제자훈련을 맡았는데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분이 들어온 거예요.

제가 지금 그분을 맡았더라면 그래도 나름대로 그분을 이해하고 그 분 편에 서서 그 분을 세워주기 위해 무언가를 좀 더 할 수 있겠다 싶은데, 그 때는 제가 너무 준비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감당을 못하겠더라구요. 그 분을 인정해주면서 격려해주면 입을 열게 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훈련을 끝내 버린게 너무 안타까워요.
지금도 교회는 다니고 있지만 먹고사는 일에 급급한 나머지 자기 생활에만 매여있고 교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미안해요.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사람이었지만 그때는 제가 너무 준비되지 않았거든요.

한 영혼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여유가 없는 경우

첫 모임 부터 늦게 오는 사람이 있었어요. 두 번의 경험이 있었는데 한 번은 교회 바로 옆에 사는 분이 미리 연락도 없이 지각을 하는 거예요. 그 사람 때문에 너무 속이 상하고 당황 되고 마음이 닫혀서 제 얼굴이 굳어져 있었나봐요. 그때 담임목사님이 오리엔테이션 하고 있는 장소에 오셔서 한 마디 하시는데 "너무 엄숙하다"는 거예요.

반면에 다른 해 제자훈련반에서 한 사람이 거의 한 시간 동안을 지각한 적이 있었어요. 교회 사무실에서 모임 장소를 잘못 가르쳐줘서 계속 헤매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간 거예요. 나중에 통화가 연결되어 "지금 모두 다 집사님을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세요! 집사님 오실 때 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고 했어요. 미안하고 창피하고 마음도 상한 상태에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 들어오는 그 분을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얼마나 당황했었냐고? 이렇게 와서 참 다행이라고 그러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첫 오리엔테이션을 한 기억이 나요. 공교롭게그 때도 담임목사님이 그곳을 지나가시면서 잠깐 들어오셨는데 "분위기가 좋다"고 얘기 하시고 축복기도도 해주고 가셨어요.

사소한 것이지만 내가 여유있게 마음을 열고 사람을 기다려 줄 수 있게 되었을 때 제자훈련이 은혜스럽게 잘 진행되었던 것 같고 내가 여유가 없이 굳어 있었을 때는 제자반이 열매가 부족했던 것같아요. 결국 제자훈련은 지도자 자신의 문제인 것같아요. 지도자가 준비되지 않으면 실패하는 것 같아요.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되고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되요. 그런 것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스케줄대로 쫓겨갈 때는 지도자도 헐떡거리게 되지만 지도자가 여유가 생기고 사람을 중요하게 여길줄 알게 되면 훈련생들의 삶 속에 문제가 생기고 공동체에 어려움이 다가와도 지도자가 훈련생들을 적절히 다루어줄 수 있더라구요. 훈련생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못하고 "왜 저럴까? 왜 저렇게 밖에 안되지?"라는 생각이 앞서면 내가 함께 문제 속에 휘말려서 열매맺는 사역이 않되더라구요. 지도자가 먼저 속상해서 이해를 못하고 받아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훈련에 성공하겠습니까?

훈련생 중에 파벌이 생긴 경우

마지막이 중요해요. 1년 동안 은혜를 많이 받고, 그만큼 좋은 경험들을 해서 신뢰감도 있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관계가 생길 수 밖에 없어요. 자기 성향에 맞는 사람을 좋아하는게 인지상정이니까요. 그러니 훈련생들이 두 세 그룹으로 나뉘게 되고 후반기에 접어들면 좀더 선명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교역자가 이 문제를 다루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예요. 그러나 오래두면 훈련생들끼리 알게 모르게 벽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그 모임 자체가 싫어질 수 있지요.

어떤 제자훈련이었는가 하는 기억은 만나는 순간의 기억보다도 해어질 때의 기억이 더 오래남게되어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님이 아름답게 우리를 끌어주셨으니 다 같이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면서 마무리 지읍시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한 해 동안 1식 3찬으로 검소한 식단을 유지해왔으니까 마무리는 좀더 풍성하고 기쁘고 감사하게 보냅시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또 어떤 분은 "훈련받았으니까 연말에 돈을 좀 모아서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거나 선교헌금을 합시다."라고 주장합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할 때 이런 파벌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또 하나 문제는 제자훈련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지도해준 교역자에게 어떤 선물을 해줄 것이냐하는 문제예요. 1년 동안 헌신한 교역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의견의 분분해져서 결국에는 서로가 불미스럽게 미묘하게 격해진 상태에서 제자훈련을 마무리 할 수 있어요. 이 부분은 특별히 지도자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파벌이 생길 경우에는 더욱더 주의해야할 부분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제자반 총무를 미리 불러서 지도 교역자의 철학과 생각을 지혜롭게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의 독특성을 인정하지 못한 경우

제자훈련 공동체가 아름답게 열매 맺으려면 지도자가 그들의 특성을 성령 안에서 잘 세워주고 기회를 균등하게 주면서 공동체 전체가 골고루 다 사랑받고 또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리더십을 펼쳐야해요.

그런데 초기에는 내 마음대로 끌어보려고 애쓰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의 수준에서 이끌어주는 부분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경험이 쌓여갈수록 내 생각만이 아니라 훈련생들의 생각도 배려하고 성령께 민감하면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무리없이 그들을 끌어가려고 신경을 많이썼어요. 결국은 지도자가 성장할 때 실패를 줄일 수 있는 것같아요.

▶ 사례 3 : 잘못된 선발의 문제

문제 있는 남편 떠밀어 넣기

제자훈련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소문이 나있기 때문에 선발과정에서 외압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사님, 제 남편 좀 어떻게 해주세요. 목사님 제 남편이 지금 이러이러한 상황에 있는데, 꼭 회복시켜주세요." 이런 부탁을 받게되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될 때가 있어요. 그 부인이 교회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감당하고 있고, 교구에서도 아주 신실하게 섬기는 분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그 부인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심방을 가보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남편이 많아요. 그래서 이혼이나 별거의 상태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같은 집에 살면서도 각방을 쓰는 경우가 있어요. 아내가 이 상황을 극복해보려고 남편의 제자훈련을 신청하는 거죠.
그 분은 차라리 상담이라든지 치유과정을 거치고 제자훈련에 들어왔다면 훨씬 더 그 분에게나 제자훈련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다른 프로그램들에 가기도 분위기가 그렇고 상담을 받자니 또 그렇고 부인 스스로가 제자훈련을 받아보니까 너무 좋아서 억지로 남편을 제자훈련에 지원하게하는 거예요.

사정이 그렇다 보니 그 분에게 어떤 질문을 하면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 져버려요. 이런 분이 한 분이라도 있으면 담당 교역자가 지치고 힘들어지게 되지요. "제자훈련을 10년 넘게 해왔는데도 이런 문제는 내가 치유할 수 없구나! 내게 가르치는 능력이 없는 것인가? 내가 영성이 부족한가?"하는 질문을 던지며 지도자도 쉽게 낙심에 빠지게 되요.

물론 한 두 명 정도 굉장히 약한 형제들이 들어와서 변화되고 은혜받으면 좋은데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제자반 전체가 침체될 위험이 있어요.

우울증 환자

제자훈련의 목적이 치유가 아니라 인격의 변화, 삶의 변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제자훈련의 목적이지요. 물론 인격 성장의 과정 속에서 치유가 일어나지만 제자훈련이 "심한 심리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것"에 근본 목적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훈련에 참여하게될 경우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어요. 예를들면 우울증 환자의 경우지요. 우줄증 환자는 2월말이에서 5월까지가 가장 힘든 시기거든요. 그러니까 12월에 선발해서 인터뷰하고 제자훈련 입학할 때 까지는 별로 표시가 나지 않아요. 그러다가 서너번쯤 모임을 갖고 나면 그때부터 우울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해요. 훈련에 대한 심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평소 지니고 있던 우울증세가 더 심각하게 폭발해버리는 거죠. 그러면 다른 그룹원들이 성장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상반기에 좌절 해버려요.

미취학 아동을 둔 부모

초등학교 1학년 때 까지는 사랑의교회 스타일의 훈련은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는 학교에도 많이 가봐야하고 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엄마가 훈련에 집중할 수 없어요. 집중이 않되기 때문에 오히려 양육프로그램을 통해서 좀더 준비를 시키거나 아니면 봉사부서에서 섬기도록 지도를 해주었어요.

지금도 훈련생 중에 제일 나이 어린 훈련생의 자녀가 5살 짜리가 있는데 역시 집중이 안되요. 아이가 어릴 때는 1박2일로 제자반 수련회를 떠나는 것도 너무 힘들고 혹시 은혜가 풍성히 내리고 있는데 아이 때문에 집에 일찍가야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쯤 되면 벌써 마음이 불안해지고 집중이 안되는 거죠.

▶ 사례 4 : 훈련생의 한계로 인한 문제

영적 열등감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나서 2-3개월이 지나면 영적인 우열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적으로 볼 때 대학원까지 나왔다 하더라도 영적인 열등감에 휩싸이는 사람이 생겨나게 되요. 아주 쉬운 예로 큐티를 나눌 때 고등학교 밖에 안나온 분이지만 본문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말씀앞에 정직히 자기 마음을 열어보니는 분을 칭찬 할 수 있잖아요. 이런 분위기가 한 두 번 계속되면 영적인 우열들을 느껴서 세상적인 지식이나 조건을 많이 갖춘 경우는 아주 심하게 영적인 열등감을 느끼게 되요. 심지어 "교역자가 편애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칭찬을 할 때도 굉장히 조심해야되요.

훈련생 자신이 미워지는 경우

훈련생이 자신과의 문제가 자기를 굉장히 비하시키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어요.. 예를 들면 자기가 어떤 부분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그 모습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되는 거죠. 이럴 경우에는 "나는 안돼"라는 절망감을 가지면서 그룹에서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럴 때는 격려가 제일 중요해요.

이런 문제들이 나타날 때 새롭게 열심을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력감이나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럴 때에 그 사람을 그룹에서 잘 격려해주고 개인적으로 격려를 해주면서 일으켜 세워주는 작업이 많이 필요해요.
숙제 점검하는 건 문제도 아니예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장점과 소망을 가지고 일으켜 세우는 작업은 교역자의 많은 시간과 정성과 수고가 들어가야 하는 부분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