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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깨 49 호

21C 전도, 왜 소그룹 전도인가?

2003년 02월 이상만 목사


필자가 섬기는 남가주 사랑의교회의 화요교역자회의 석상에서 거론된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이다. 교통사고가 빈번한 사거리가 있다고 가정하자. 운전사들의 세심한 주의에도 불구하고 그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쯤 되면 부주의한 운전이 아니라 사거리의 신호등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신호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사고는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오늘날의 전도 시스템을 살펴보고자 한다.

▶ 한국교회 전도 시스템, 이대로 좋은가?

현재 한국교회의 영적 추수 밭에 적신호가 켜졌다. 무엇이 문제인가? 전도가 왜 일어나지 않는가?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교회의 전도시스템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한국교회의 주된 전도시스템을 소그룹 전도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까지는 개인 전도와 교회 중심의 획일화된 총동원 전도체제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이제 소그룹 단위로 다양하게 일어나는 전도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다양한 소그룹 사역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한 21세기 대안이다.

21세기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함이다. "이제 우리는 정말 국경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세계는 더 다양화되고, 고기능 하이테크의 시대가 되고 더 다양한 문화 속에 들어가서 다양성의 특성을 즐기는 시대가 왔다"(John Nasbit). 사회와 사람이 다양한 만큼 전도전략도 다양해야 한다. 21세기의 다양함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소그룹 사역이 안성맞춤이다. 소그룹
전도사역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천편일률적인 전도방식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다양성을 즐기는 21세기인들은 절대적인 진리를 거부하고 자신의 소견에 따라 각자의 개성대로 살아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관계형성형 전도로 접근해야 한다. 비신자들과 관계를 맺어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친밀함, 융통성, 수용성, 유연성, 이동성, 인격성 등이 요구되는데 소그룹이 그러한 모든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소그룹은 문자 그대로 작은 모임이지만 세상 속에 파고들어 세상을 흡수하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그러므로 소그룹은 복음전도를 위한 최상의 재생산 구조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사역의 화두는 소그룹이다. 소그룹이라는 목회환경과 역동성에 대한 이해 없이는 미래의 교회성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21세기형 교회인 메타교회는 소그룹을 기반으로 하는 전문적이고도 다양한 사역을 전개하는 교회이다.

사실 소그룹은 일찌기 예수님과 초대교회의 사역의 핵심체계였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소그룹 단위의 사역에 집중하셨다. 초대교회의 전도 핵심이 가정단위의 소그룹이었다는 것은 상식화된 이야기이다.

▶ 소그룹 전도의 시대적인 요청

21세기 사회의 약점에 전도의 강점이 보인다. 현대인을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전도는 된다. 21세기의 불안과 고통은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에 대한 갈증을 유발시킬 발돋움이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21세기 전도의 잠재력과 교회성장을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자.

1)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관계형성형 전도

21세기에는 전통적인 가족과 이웃의 개념이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파편화되어 단절된다. 21세기인들은 극도의 물질주의, 급속한 변화, 무한한 경쟁과 성공위주의 사회, 인간관계의 단절 등으로 심각한 인간 소외, 고독감, 엄청난 스트레스, 삶의 의미와 가치 상실, 영적 빈곤 등에 시달릴 것이다.

그럴수록 21세기인들은 인간 내면의 추구, 영성에 대한 강한 욕구와 함께 본능적으로 가족과 이웃을 더욱 그리워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영적 파도이다. 현대인들을 터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치유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커넥션(connection)이다. 소그룹 사역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은 갈수록 환경적으로 파편화되고, 고립되어 가는 추세이고 게다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로 묶여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는 이점을 분명히 간파하고 '연결시키는 사역'을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라" 이 구호는 기독교 상담학자 래리 크랩(Larry Crabb) 교수가 주장하는 상담이론의 핵심이다. 크랩 교수에 따르면 오늘날 대부분의 영적, 정신적 문제는 고립에서 비롯된다. 상처입은 파손된 영혼은 상처입은 영혼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단절되어 고립된 영혼의 주변 환경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상처입은 영혼의 문제는 단절된 환경에 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터치하여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의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가?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당신 자신을 얹어 놓고 당신의 삶을 활짝 개방하라.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우리의 삶 속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다"(헨리 나우웬).

크리스천의 가슴에는 사람을 치유하는 신비한 능력이 주어져 있다. 이 능력은 단절되었거나 상처 입은 영혼을 만났을 때 나타난다. 교회는 치유하는 공동체이다. 치유하는 공동체인 교회는 크리스천 속에 잠재된 이 능력을 풀어놓아야 한다. 소그룹은 크리스천의 잠재된 능력과 은사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사역환경이다.

이제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전도사역이 일어나야 한다. 오이코스전도는 가정을 중요시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전도방식이다. "어디서나 사람들은 깊은 인간관계에 굶주리고 있다. 그들은 급변하고 비대해가는 세상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는 관계를 필요로 한다"(레이드/Reid).

2)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전도

21세기 들어서서 염려와 불안이 급증하고 있다. 현대사회와 매스콤은 상시적 비상 분위기를 유발시킴으로 염려를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사회는 염려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염려한다는 것은 마음이 '혹시'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내 앞에 오지도 않은 시공간을 혹시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헨리 나우웬). 혹시 직장을 잃으면? 혹시 건강이라도 나빠진다면? 혹시...?

우리는 현대인의 화려한 생활 이면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애절한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어야 전도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 줄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고 싶을 때 나와 함께 있어 줄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붙들어 주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 줄 사람이 있습니까?"(헨리 나우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위로로써 세상을 위로하자(고후 1 : 3∼4).

사실 우리 모두는 상처가 있다. 사람은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 치고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단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상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나의 상처를 싸매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의 상처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상처입은 치유자'로 살아가야 한다. 지금 거대한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우리는 내 상처가 크니, 네 상처가 크니, 하고 돌아다닐 시점이 아니다. 나의 상처가 이제는 나를 얽어매는 올무가 아니라 도리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생명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상처가 영적 성장을 위한 발돋움이 되어야 한다.

크리스천의 마음에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안타까움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진정으로 돌아보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전도는 된다.

3) 사람을 감동시키는 섬기는 전도(Servant Evangelism)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싶어한다. 사실 사람들은 언제나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감동은 모든 장벽을 뚫고 들어가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드는 힘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만 있다면 전도는 된다.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가? 상대방이 특별한 느낌을 가지도록 만들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하실 때 늘 "너는 내가 염두에 둔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느끼게 만드신다. 주님께서는 베드로, 요한, 삭개오, 사마리아 여인, 나사로 등을 대할 때 늘 그러하셨다. 그러한 특별한 느낌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러한 감동은 사람들의 닫혀진 영혼의 창을 여는 열쇠이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 그 자체가 서로에게 좋은 선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하나님께 더 달라고 매달리기 이전에 이미 받은 축복을 과감하게 나누어야 한다. 우리가 서로 나누고 섬길 때에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더 한층 좋아지고, 게다가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어날 것이다.

4) '한 사람의 변화'에 집중하는 전도

C.S.루이스는 『영광의 무게』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것 중에 성찬 다음으로 거룩한 것은 우리 이웃"이라고 말했다. 당신의 이웃을 발견하라. 한 이웃 한 이웃에게 집중하라. 당신의 이웃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

세상의 변화는 한 영혼 한 영혼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의 비전을 소그룹 사역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 소그룹은 "한 영혼의 중요성"에 사역의 핵심 가치를 두고 한 사람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어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사역 현장이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피상성은 21세기 전도의 최대의 장애가 될 것이다. 21세기야말로 소수 집중의 원리의 진가가 발휘될 시대이다.

제자훈련은 소그룹 환경에서 "한 사람 변화"에 포커스를 두고 집중하는 사역이다. 그 변화된 제자는 전도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사실 제자훈련과 전도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맞물려 이루어져야 한다. 전도가 없는 제자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제자훈련은 전도의 열매로 폭발해야 한다.

소그룹 사역은 크리스천의 치유능력과 갖가지 잠재된 능력을 끄집어 내주는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놀라운 능력은 방황하고 황폐해진 마음을 연결시켜 주는 사역이다. 그럴 때에 소그룹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현장이 된다. 소그룹 안에서 온갖 좋은 것이 일어난다.

▶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

전도하는 소그룹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21세기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21세기는 교회성장과 교회건강을 두고 논할 때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문제이다"(오정현). 지상명령의 성취를 위해 모든 성도들이 소그룹 단위로 사회 요소 요소에 흩어져 복음전도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 이 땅의 교회에 주어진지 2000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지구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통분해야 한다. 소그룹은 세상에 파고들어 사람들을 흡입하는 능력을 지녔기에 소그룹이 복음전도를 위한 최상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교회는 커지면서도 동시에 작아져야 한다. 주일 낮 예배 때 전 회중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큰 무리로 한 곳에 모이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섬기기 위해 소그룹 단위로 흩어져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 아닐까?

필자는 전도훈련을 시킬 때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소그룹을 만들어 사람을 섬겨라. 사람을 키워라. 소그룹을 통해 당신이 지금까지 훈련받은 모든 것을 나누어 보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에 자신을 투자해 보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땀, 시간, 물질, 명예를 다 쏟아 부어라. 여기에 당신의 생애의 핵심가치를 두라. 그러면 이웃도 살고 당신도 산다.

소그룹을 통해 사람을 섬기는 사역은 이웃도 살리고 나 자신도 사는 최선의 방책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전도시스템이 없다.

C.S. 루이스의 말을 빌려서 결론을 맺고자 한다. "역사상 쓰여진 모든 책들도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는 가치가 없다". 지금은 추수할 때이다. 신약시대는 땅 끝까지 전도하는 기간이요, 추수의 시기이다 예수 없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듯이 전도(선교) 없는 교회도 존재할 수 없다. 교회의 다양한 사역들이 한 가지 일, 즉 영혼구원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영혼구원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교회의 엄청나게 많은 다양한 사역의 온전한 의미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C.S.루이스).

소그룹을 통해 사람을 건지는 낚시꾼이 되자. 이왕이면 좋은 낚시꾼이 되자. 누가 좋은 낚시꾼인가? 미국 몬태나주의 눈부신 계곡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이런 대화 장면이 나온다. 맥크레인 목사가 두 아들과 함께 송어 낚시 중에 둘째 아들 폴에게 말했다. "너는 멋진 낚시꾼이야!" 폴은 대답했다. "하지만 물고기처럼 생각하려면 아마 3년은 더 걸릴 것 같아요" 좋은 낚시꾼은 물고기처럼 생각하는 낚시꾼이다. 물고기를 낚기 위해서는 먼저 물고기가 원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 이제 가라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혼자서만 간직하지 말라. 사람들을 치유하고 자유케하고 생명과 희망을 불어 넣어라. 특별히 가난하고 약하고 소외되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