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위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선의의 경쟁상대이고 은혜의 파트너입니다. 토양을 일구는 일은 힘들지만 그 열매를 따먹는 사람 역시 목회자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천시 남구 학익동 은혜의교회(박정식 목사)는 부름 받은 특권의식에만 젖어있는 교회가 아니라 보냄 받은 소명의식에도 투철한 교회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은혜의교회에는 부교역자가 없다. 박정식 목사를 제외하면 찬양사역자 한 명이 있을 뿐이다. 나머지 사역은 모두 평신도 동역자들의 몫이다. 이제는 평신도 동역자에 대한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평신도 동역자들은 제자훈련을 통해 섬김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있다. 이들은 동역자로 세움 받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매년 초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과 시간을 적어 '청지기 지원서'를 제출하고 묵묵히 봉사한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제재도 없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역이 진행되는 것이다. 각 부서를 섬기는 일은 물론 사무실 도우미를 비롯해, 청소, 화단에 물주기, 꽃꽂이, 교회장식, 미디어, 홍보 등 모든 영역에서 평신도 동역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목회자를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헌신 봉사하고 그 헌신을 통해 서로 은혜를 체험하고 나눈다.
"보통 스텝 리더로 세워지기까지 8∼9년이 걸립니다. 그런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죠. 모든 동역자들이 전도와 훈련은 물론 다양한 사역의 영역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를 위한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 되도록 올바른 헌신의 목적을 가르칩니다. 평신도 동역자들은 말씀을 통해 변화되고 기쁨으로 봉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린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박 목사는 스텝 리더를 세울 뿐 모든 운영은 스텝 리더에게 일임한다. 실수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고, 다시 자리잡아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제 스텝 리더들도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 결과 스텝 리더들은 목회자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서려는 노력을 보이게됐고 이는 교회의 시스템 발전은 물론 그들 스스로 전문가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모든 헌신의 출발은 교구장입니다. 언제나 가장 궂은 일은 교구장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신앙 안에서의 권위는 하나님 앞에 무릎꿇음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묵묵히 순종합니다."
박 목사에게도 실패의 쓰라린 기억이 있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박 목사는 부흥사로 성공할 줄 알았다. 교회 개척 후 매일 은사집회를 열었다. 능력도 있고 표적도 나타났지만 사람이 변화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박 목사는 목회를 포기할 것을 결심하고 하나님께 마지막 보고를 드리기 위해 기도원을 찾았다. 사복음서를 읽으며 갑자기 '가르쳤다'는 단어에 눈길이 멎었다. 박 목사는 그 말씀을 붙들고 며칠을 고민했다. 이윽고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가 세워지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길로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첫 번째 제자반은 '실패'였다. 철저한 준비보다는 열정만 앞섰던 결과였다. 한 번의 좌절을 맛보고 깨달은 것이 제자훈련에 대한 확신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매주 월요일 사랑의교회를 찾았다. 옥한흠 목사의 설교 테이프와 설교집, 그리고 '평신도를 깨운다'를 책이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원하는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1992년 CAL세미나에 참석하고 비로소 제자훈련의 비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힘든 시간들은 지났다. 이제 박 목사는 제자훈련의 달콤한 열매를 맛보며 목회에 열중하고 있다. 몇 번의 좌절 뒤에 찾아온 성공의 열매는 너무나 달콤했다. 하지만 박 목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매진하고 있었다.
"제자훈련은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역입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제자훈련을 할 것입니다. 목사의 면류관이 거기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핵심적인 그룹이 형성될 때까지는 담임목사의 헌신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중도포기는 결국 자기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