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년 전 고신대학교 캠퍼스 안에 세워진 대학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이자 고신대학교를 섬기는 총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도 저 자신이 우리나라 193명의 대학총장들 가운데 가장 바쁜 사람 중에 한사람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총장으로 학교를 돌볼 뿐 아니라 교단 내외의 부름을 받아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도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의 제자훈련까지 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총장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그런데 저는 총장이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주중에 몇 개 반의 제자훈련을 더 맡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총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제자훈련까지 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제자훈련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위대한 사역이라 생각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사역을 통해 나타나는 열매들을 지켜보는 시간이야말로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주일 저녁 7시면 어김없이 아홉 명의 제자훈련생들과 마주 앉아 성경을 연구합니다. 주일에는 예배를 인도하고 때로는 다른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할 때도 있지만, 저녁 7시에는 어김없이 교회로 돌아와 이들과 제자훈련 시간을 가지려합니다. 무리한 일이 아니냐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행복입니다. 육신적으로는 피곤해도, 말씀으로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복된 특권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대학교회에는 교역자가 모두 다섯 명이나 있어 제가 한 달에 두어 번 설교하면 되니까 제자훈련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자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아홉 명의 훈련생들은 생활 여건도 어렵고 여러 가지 문제로 고생하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기꺼이 헌신하는 마음과 기쁨의 자세로 제자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말씀 앞에서 변화되어 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 삶에 큰 활력소가 됩니다.
▶ 함께 뛰는 즐거운 목회의 출입문, 제자훈련을 만나다
저는 친구 목사의 권유로 1999년 1월 안성 수양관에서 열렸던 제1회 제자훈련 지도자 컨벤션에 참석했습니다. 유학시절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옥한흠 목사님을 만난 이후로, 이미 그분이 영혼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에 탁월한 사역자로 많은 열매를 거두는 분임을 알고 있었지만 컨벤션에서 만난 그분의 모습은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그 이전부터 대학교회에서도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제자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컨벤션에 참석하면서 그것이 진정한 제자훈련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면 할수록 머리에 든 지식은 커져갔지만 가슴으로 뜨겁게 다가오지 않았고 성도들의 삶에 변화가 느렸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의 가장 큰 차이는, 지금까지의 성경공부가 성경의 지식을 전달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했다면 제자훈련은 심령의 변화로 삶의 실제적인 변화까지 일으키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컨벤션을 통해서 제자훈련의 원리를 재발견한 후, 저는 40기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에 등록했습니다. 당시에 박사학위 과정의 과목을 포함하여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한 주간을 빼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기회를 놓칠 수 없어 한 주간 강의를 휴강하고 기를 쓰고 이 세미나에 참석하였던 것입니다.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옥 목사님의 광인론이나 교회론 강의를 통해 감동 받은 것은 물론입니다. 그뿐 아니라 함께 일하고 있는 국제제자훈련원의 스텝들과 부교역자들의 뒷받침을 보면서 사뭇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구성된 일정이나 한 눈으로도 쉽게 느낄 수 있는 세련된 세미나 자체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수양관과 같은 시설을 만들어 한국교회를 위해서 섬기는 옥 목사님과 사랑의교회의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 성도들의 가정에 가서 소그룹 인도를 실습하면서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버렸습니다. 소그룹 구성원들의 헌신된 모습과 인도하는 순장(여 집사님)의 나에 대한 평가에 나타난 통찰력 등 모든 프로그램이 제자훈련으로 성장한 사랑의교회의 참 모습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교회로 돌아와 7개월 동안의 제자훈련 준비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제자훈련이 아니면 교회가 건강하게 쓰임 받을 수 없음을 역설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봉사하며 섬기는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을 받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이로 인해 장로로 피택된 한 분은 마음에 시험을 받아 갈등을 하다가 다른 이유와 겹쳐 교회를 떠나기도 했지만 저는 결코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 왜? 굳이 제자훈련입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슨 이유로 제자훈련을 해야만 할까요? 저는 제자훈련이야 말로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약점을 고칠 수 있는 해결책이며, 성경적으로 분명한 근거를 갖고 있는 목회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다음의 두 가지 면에서 제자훈련에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교회를 세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첫째, 제자훈련은 한국교회의 도덕적 취약점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입니다.
우리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7절의 이신득의(Justification by faith) 교리를 신앙고백으로 삼고 있습니다. 전적인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제사장이 되고,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었다가 함께 부활하여 이미 하늘에 주님과 함께 앉히었습니다(엡 2 : 5, 6).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선물로 거저 주신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아주 간혹, 이것을 잘못 이해한 결과, 어떤 성도는 주님이 원하시는 '경건에 이르는 훈련'의 자리에 기꺼이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예수 믿고 구원 얻기만 하면 모든 신앙생활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져야할 책임감에 투철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아가 윤리 도덕성이 결여된 삶을 살아가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을 쳐 복종시키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도록 헌신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수준의 구원에만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여기에 기복 신앙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한국교회는 불균형적인 신앙의 모습을 가진 성도들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수적 증가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만족하며 자만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교회에 도덕성이 결여되게 된 최대 약점이라고 생각하며, 이 약점은 오직 제자훈련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더 이상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자'는 메시지만을 전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성경에 근거한 원리적이며 도덕적인 각성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귀한 진리가 오해되면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라서 힘쓰고 애쓰며 최선을 다해 자신을 드리는 것을 무시했던 지난날 한국교회가 보여준 결과를 극복해야합니다. 전체 인구의 사 분의 일이 기독교인이라는 발표가 무색할 정도로, 사회의 온갖 부패와 부정에는 기독교인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기보다는 사회의 변화에 끌려다니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결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습니다"라는 고백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축복과 승리를 확인하며 주님의 명령 앞에서 순종하는 훈련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아담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가진 죄악성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에 그리스도를 알리며, 교회를 올바로 섬기는 자리에까지 나아가도록 하는 데는 제자훈련이 절대적인 필요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둘째, 제자훈련은 성도를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숙시켜 교회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아니 오히려 기꺼이 고난받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빌 1: 29). 교회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리고 세우신 교회 안에서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서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의 순간에 그리스도인은 결코 낙망하거나 쓰러져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 순간에 고난이 자신에게 임한 이유를 분명히 깨닫고 그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참조, 히브리서 12장). 그리고 이처럼 고난을 극복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부단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경고합니다. 이 경고는 또한 우리에게 사자(마귀)를 능히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라는 충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경계합니다. 그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힘을 줍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자로 세워지는 종말론적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already) 완전한 자가 되었으나(but) 아직 최종적으로 완전한 자가 아니기에(not yet) 계속 완전한 자로 세워져 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화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흔히 성화는 하늘의 수준에서 이미 성화를 이루었다고 하는 결정적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와 날마다 조금씩 성취되어가는 점진적 성화(progressive sanctification)로 구분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제자훈련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놓은 결정적 성화를 우리의 삶 속에 점진적으로 성취해 가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제자훈련이 목표로 하는 작은 예수를 만드는 일은 우리가 이 생을 살아가면서 점진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요한복음 4장 21절은 성도들을 참 예배자로 표현합니다. 주님은 예배를 드리는 자로서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령과 진정(spirit and truth)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으로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이미 참 예배자가 되었으나 아직 그 마지막 단계까지 이른 것은 아니고 계속 전진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참 예배자의 삶은 단지 주일날 예배당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구현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절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예배자는 자기 삶의 구석구석을 예배의 현장으로 삼아야 합니다. 삶의 현장 속에서 자신의 몸을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가치에 따라 살지 않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구현해 가도록 훈련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목회자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이처럼 온전한 그리스도인,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고 참 예배자로 세우는 일에 전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은 그 어떤 사역보다도 가장 고귀하며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켜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면 자연적으로 교회는 건강해질 것입니다.
▶ 건강한 교회는 온전한 성도들이 만듭니다.
제자훈련은 목회자의 삶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목회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훈련 없이 이루어지는 목회는 인위적인 목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신도를 말씀 안에서 변화시켜 사역자로 함께 세워 가는 일 없이는 급격하게 변화되는 이 세상에서 교회가 승리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이 온전해야 합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세우고 그럼으로써 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바꿔 나가는 것, 제자훈련은 이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사역입니다. 저는 이 귀한 사역을 통하여 앞으로도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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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기 교수는 고신대학교 신학과(Th. B.)와 신학대학원(M. Div.)을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MAR., Th. M.)와 남아공화국 포쳅스트롬대학교(Th. D.)에서 수학 한 후 1987년 9월부터 고신대학교에서 봉직해왔다. 2001년 1월 30일부터는 제4대 고신대학교 총장으로 섬겨오고 있으며 『성경 자연과학 진화론』, 『신약을 어떻게 강해할 것인가?』, 『성경신학이란 무엇인가?』, 『예수님, 교회 그리고 나』 등의 저서가 있다.
<2001년 09~10월호, 50호 특집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