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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깨 53 호

제자훈련 지도자가 준비해야 할 성품

2002년 12월 고직한선교사

어느 의과대학의 기독학생들이 여름 의료봉사를 떠났을 때의 일이다. 같은 대학, 같은 과 학생들이었지만 이 팀은 각기 다른 대학생 선교단체의 회원들로 구성된 연합 봉사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봉사를 하면서도 상당히 서로 다른 모습들과 방식으로 팀사역을 경험하고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의료봉사가 주목적이었지만 치료보다는 몰려 온 환자들에게 4 영리로 복음 전하는데 더 열중인 학생들은 주로 CCC 멤버들이었고, 밤에 다 같이 모여 토론하고 회의하는 시간에 말을 가장 많이 하며 주도적인 학생들은 주로 IVF 멤버들이었으며, 방 입구에 뒤엉켜진 신발들을 군대식으로 잘 정렬해 놓곤 하던 학생들은 네비게이터 멤버들이었다!

나는 약 열 개의 다른 대학생 선교단체들과 교회의 청년대학부들로 구성된 학원복음화협의회의 상임총무의 사역을 하던 때가 있었다. 이 때도 똑같이 복음을 말하고 제자도를 말하고 전도와 선교를 말하지만 각자의 사고방식이나 강조점 및 행동 패턴은 정말 서로 달랐다. 심지어는 기도할 때 자주 쓰는 용어며 언급하는 기도제목 등도 단체들마다 너무 달랐다. 아주 놀란 것은 보여주는 성품까지도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역시 사람은 어디서 훈련받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빚어지는 존재임을 느낀 것이다.

나는 사랑의교회 청년대학부를 섬길 때도 똑같은 경험을 여러 번 하였다. 여러 개의 대학부와 청년부가 있다 보니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어떤 젊은이가 어느 부서에서 누구의 제자훈련을 받았는지 그의 하는 말과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또한 장년 남성들을 대상으로 세 번에 걸쳐 사역반을 인도하였었는데, 당시엔 두 개의 제자반 출신들로 사역반이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누가 어느 목회자에게서 1년 간 제자훈련을 받고 올라온 사람들이었는지를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확연히 알게 되었다. 누구의 제자훈련을 받았느냐가 훈련생의 사역과 성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성품은 성품을 낳기 때문이다!


▶ 성격(personality)? 성품(character)!

그런데 문제점은 성품 자체가 제자훈련 과정 중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닮도록 갈고 닦이지 못하는 경우이었다. 또는 성품이 여전히 평신도 지도자로 세울만하지 않는데 제자반을 이수했다는 것만으로 사역반으로 올라오는 케이스였다. 사실 제자반과 사역반의 아주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제자반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성품 또는 인격을 다듬는 것이 목표이고 사역반은 그것이 어느 정도 다듬어진 사람들에게 훈련받고 감당해야할 사역을 준비시켜주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성격(personality)과 성품(character)은 다른 것이다. 성격이란 타고난 면이 많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개성이다. 따라서 신앙의 성숙도나 제자훈련 여부에 따라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이고 어쩌면 변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품이란 어떤 크리스찬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으로 크리스찬이면 누구나 맺어야할 공통적인 인격적인 변화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신의 성품이 아주 크게 소리치기 때문에 당신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고 Emerson이 말한 것에 제자훈련 지도자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Covey가 그의 새로운 책 『원칙 중심의 리더쉽』에서 강조하는 다음의 지적은 제자훈련가로서 살고자 하는 우리 목회자들이 항상 명심해야할 것이다.

"일차적 강점은 성격이 아니라 성품이다. 흔히 성공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성격의 특성조차 실은 이차적 강점에 지나지 않는다. 성품(character)에 앞서 그 사람의 성격(personality)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마치 뿌리는 돌보지 않으면서 잎새를 키우랴 애쓰는 것과 같다...영향력을 미치는 각종 기법과 전략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원하는대로 행동하게 하는 것은 단지 일시적 성공 밖에는 가져오지 못한다.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이러한 이중성과 불성실한 태도는 주위의 불신을 야기하고, 모든 행동을 가식적으로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깊은 성실성과 성품에서 우러나는 근본적 강점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진짜 동기는 언젠가 밝혀지게 될 것이고, 대인관계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다."


▶ 'TO DO VISION' 보다 먼저 'TO BE VISION'을!

제자훈련가는 누구보다 VISION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VISION하면 우리는 주로 사역과 관련하여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우리는 '일 중독증'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고 교회 성장의 중압감에 눌리곤 하므로 제자훈련을 하면서 훈련받은 성도들이 목회자의 일하는 수족이 되게하는 것이 목표인 양 생각하기가 아주 쉽다.

훈련가 자신이 반드시 가져야할 VISION 및 훈련생에게 제시해야할 VISION은 다음 두 가지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늘 함께 가야한다. 하나는 TO DO VISION, 즉 사명이고 다른 하나는 TO BE VISION, 곧 성품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과 관련하여 지상명령("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을 주셨다.

그러나 그것을 주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면 누구나 가져야할 성품에 대해서 말해주는 대강령("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을 주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우리가 가져야할 TO DO VISION이라면 예수님께서 주신 대강령은 우리의 TO BE VISION인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이 두 가지는 항상 지도자의 중요한 양대 요소이었음을 성경은 누누히 강조한다.

모세가 장인 이드로로부터 소그룹의 원리에 따라 중간 지도자들을 세우도록 컨설팅을 받았을 때 분명하게 제시받은 것도 사명과 관련된 재능 즉 '은사'와 성품과 관련한 '덕' 이 두 가지이었다("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출18:21).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로서 다윗을 말하며 시편 78:71-72절에는 이렇게 말한다.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여기서 '그 마음의 성실함'이란 TO BE VISION 곧 성품이고, '그 손의 공교함'이란 TO DO VISION 즉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은사인 것이다.

제자훈련을 하며 가장 중요한 도구로서의 성경이 주어진 목적이 무엇인가? 딤후 3:16-17절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것은 TO BE VISION의 성취를 말하는 것이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라는 것은 TO DO VISION의 성취를 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제자훈련가에게서 더욱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TO DO VISION 보다는 TO BE VISION이다. "당신의 성품이 아주 크게 소리치기 때문에 당신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고 제자훈련생들이 외치고 있고 자기들끼리 모여 수근덕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 제자훈련가의 'TO BE VISON'은?

그렇다면 제자훈련가는 어떠한 성품을 필수적으로 가져야하고 추구해야하는가? 이 점에 있어 일반 지도자에게 보편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일반은총적인 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Covey는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한다. 성실성(우리가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한 가치), 성숙도(용기와 배려 사이의 균형), 풍요의 심리(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쓰기에 충분한 자원이 있다는 신념).

1) 성실성

제자훈련가가 만약 성실성에 있어 실패를 한다면 그것은 조급성 때문일 것이다. 잠언 저자는 제자훈련가라면 반드시 좌우명처럼 귀담아 두어야할 말씀을 들려준다.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잠20:21. 그러니까 너무 빠르게 많은 것을 잡고자 할 때 설령 그것을 잡았다 하여도 나중엔 오히려 그것이 화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제자훈련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법칙은 농사의 법칙이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다. 그러나 조급증 속에서 영적 요행주의에 빠지면 어떻게 불 받아서 한 번에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할 수 없을까하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성실성은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 저자는 다시 말한다.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잠28:20.

2) 성숙한 균형감각

그리고 제자훈련가라면 다른 사람의 감정과 신념을 고려하면서 용기있게 자신의 감정과 신념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즉 성숙도를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훈련을 하다보면 훈련생에게 꼭 말해주어야 할 문제들이 보이게 된다. 이 때 이것을 상처받을까봐 피해 버리면 그 훈련생은 어디에서 그 문제를 권위있게 들을 수 있을까? 그러나 정실주의가 지배하는 우리 문화 속에서는 진실을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관용과 용납을 강조하는 교회에선 모든 것을 '은혜로써'(?) 덮어버리기 쉬운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정말 필요한 것은 용기와 배려 사이의 균형감각이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사랑 가운데서 진실을 말하는 것'(speaking the truth in love)이다. 그러나 배려(사랑)없이 용기만 갖고 지적(진실 말하기)하다 보니 상처받는 것이고 용기는 없이 배려만 해주다 보니 문제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3) 풍요의 심리

또한 어느 제자훈련가가 늘 '부족의 심리' 속에 갇혀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는 훈련생들을 심리적으로 넉넉하게 대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뭔가 빡빡하게 아니면 아주 경직되게 대할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흘러 넘치는 은혜로써 제자반의 분위기를 자유와 여유 속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하고 많은 숙제와 겁주기로써 훈련생들을 질리게 만들 것이다.

그는 또한 무슨 때가 되면 뭔가를 보상받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훈련생들은 압박을 느끼며 불편함을 해소시키고자 아부하기 시작할 것이다. 제자훈련가는 반드시 풍요의 심리를 가져야 한다. 그 심리는 스스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써 하나님 앞에 항상 가까히 나아가는 자만이 배속에서 터지는 생수의 강을 경험함으로 내적으로 넉넉해질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성령충만함이 풍요의 심리의 근원인 것이다.

▶ 제자도(discipleship)의 3가지 덕목

성실성, 성숙도, 풍요의 심리를 기본으로 하여서 제자훈련가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일까? 다음의 세 가지를 역설하고 싶다. 리더이기 전에 자신이 그리스도를 좇는 자가 되는 추종성(followership), 섬김의 정신으로써 영향력을 끼치는 종의 지도력(servant leadership), 상위 권위에 대한 조력자 정신(helpership)이다.

먼저 추종성(followership)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당신은 제자훈련가이기 전에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가르치는 자이기 전에 끊임없이 하나님과 보다 성숙한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학습자인가? 예배 인도자이기 전에 예배자인가? 가장 목회자들이 망각하기 쉬운 것이 자신이 리더리기 전에 그리스도를 좇는 추종자라는 사실이다.

이 추종성이 결여된 제자훈련가가 가장 쉽게 빠지는 오류가 자기가 보스가 되어서 자기의 패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훈련가 역시 그리스도를 열심히 추종하는 자로서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가 가르치는 방향은 자신이 아니라 늘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한다. 예수님 앞에선 자신도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일개의 추종자에 불과한 존재인 것을 훈련생들이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제자반이 자기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하는 훈련과정임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상 사도 바울처럼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정도로 제자훈련가는 훈련생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본받아야할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스도를 항상 좇는 추종자로서의 '나'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훈련가로서 종의 지도력(servant leadership)을 습득해 가고 있는가? 리더십이란 두 가지 성격이 반드시 있다. 하나는 이끎으로써 섬기는 것(serving by leading)이다. 그렇다. 제자훈련가가 훈련생을 잘 섬기려면 우선 잘 이끌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은사이다. 역시 가르침의 은사나, 커뮤니케이션의 은사 등 리더십의 역량이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섬김으로써 이끄는 것(leading by serving)이다. 말 그대로 종이 될 줄 알아야 한다. 훈련가가 언제든지 훈련생의 발을 씻을 준비가 되어 있음이 드러나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이끎으로써 섬기는 것은 TO DO VISION의 성취를 말한다면, 섬김으로써 이끄는 것은 TO BE VISION의 성취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세상적 지도력과 성경적 지도력의 차이는 바로 후자의 유무이다.

우리는 어떤 권력 없이도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제자훈련 지도자에게 설령 인사권이 없어도 그 종의 지도력으로 훈련생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이 때 필요한 것은 지도자의 은사 이전에 지도자의 성품인 것이다.

또한 우리는 조력자 정신(helpership)을 살리고 키워가야 한다. 특별히 상위 권위에 대해 그렇다. 담임 목사는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 전체에 대한 조력자 정신으로 제자 훈련을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부교역자가 제자훈련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최고 지도력으로 세우신 담임 목사가 교회를 향해 품게된 비전의 성취를 위한 것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즉 담임목사의 지도력에 대한 조력자의 정신을 갖고 제자훈련을 해야 한다.

소그룹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자훈련은 짧지 않은 기간의 밀착훈련이므로 자칫 딴 마음을 먹으면 양의 마음을 도적질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항상 조력자로서 맡겨진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자세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라면 상위 권위에 대해 다 순응주의자가 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순응형 지도력(confirming leadership)이 아닌 변혁형 리더쉽(transforming leadership)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조력자 정신에서 나오느냐 아니면 자아실현의 정신에서 나오느냐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고 말 것이다.

제자훈련 지도자가 성품적인 면에서 반드시 맺어야할 추종성, 종의 지도력과 조력자 정신은 결국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도(discipleship)를 실천하는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것들이다. 제자도란 바로 예수님의 길을 좇아가기 위해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자기부정(self denial)의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추종성이란 제자훈련가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보여야할 제자도요, 종의 지도력이란 훈련생들과의 관계에서 입증되어야할 제자도이고, 조력자 정신이란 교회의 상위 권위와의 관계를 검증하는 제자도인 것이다. 우리는 제자훈련의 지도자이기 앞서 성령으로 자기를 죽이고 예수님을 좇는 진정한 제자인가? 즉 우리는 제자로서의 성품을 맺으며 제자훈련을 하는가? 우리에겐 진정한 의미의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