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변화의 기회입니다.
내게 제자훈련은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마지막으로 취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내 자신의 발전을 위해 공부도 하고 이민목회도 할 겸, 미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단독목회에 어느 정도 경력도 있고, 상당한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이민목회도 할 만할 것 같아서 겁없이 시작했다.
미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한 가정을 중심으로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몇 가정이 모이게 되자 정식으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학교에 등록하여 공부하면서 목회를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어서 생각 끝에 교회를 부흥시켜 놓고 그 때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학업을 중단하고 목회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이민목회가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성도 대부분의 마음은 문화적 충격과 언어적 장벽 때문에 생긴 상처의 골이 깊어 그것이 병이 되어 모두 다 신음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느라 밤낮으로 뛰다 보니 나 역시 지치게 되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요, 변화의 종교인데 정성을 기울여 준비된 설교를 해도 전혀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 자신도 그들의 날카로운 날에 찔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상처를 안게 되었고, 소득 없는 이민목회에 회의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몇 가정도 되지 않는 중에서 이혼하겠다고 하소연하는 자매들도 있으니 정말 설상가상이었다. 이젠 이민목회에 탈진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때 아내와 함께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문제였다.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를 시작하던 중 ‘하나님이 진정 이곳으로 나를 보내셨는데 이 십자가가 지기 싫어서 이 곳을 떠난다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옥한흠 목사님의 『평신도를 깨운다』를 읽고서, “여보! 여기에 섬광처럼 비취는 빛이 보여요. 옥한흠 목사님이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를 하신다고 하니 이 세미나에 한 번 참석해 보세요. 무언가 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적극 권하였다. 물론 나 역시 그 책을 전에 독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별 도전을 받지 못했었는데, 다시 읽는 가운데 내가 먼저 변화 받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1996년 국제 3기에 등록하여 참석하였다. 세미나 기간 중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도전을 받았다. ‘아! 내가 살고 이민교회를 살리는 길은 제자훈련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때 옥목사님이 개인적으로 ‘사모를 키워서 잘 활용하십시오’라고 하셨던 말씀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 몇 명 되지 않는 교인들이지만 지원자가 없으면 사모 하나만이라도 키워 보겠다’는 마음으로 세미나 참석 후 3개월 만에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남자는 없고, 여자만 10명을 데리고 시작했다.
▶ 6개월 만 나에게 맡겨 보십시오
말이 10명이지 지원자들이 아니고 설득해서 참여시킨 사람들이었다. 모든 면에 비슷한 처지에 있는 그들에게는 제자훈련을 통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나 역시 그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우선, ‘이들을 변화시켜 보자. 이들의 상처 난 심령과 가정을 치료해 보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제자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혼하겠다는 그 자매들을 만나 “6개월 만 나에게 맡겨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보십시오. 그 때 가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좋습니다.”라고 설득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말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말을 책임져 주셨던 것 같다.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모아 조립하듯, 상처 나고 깨어진 이 사람들을 데리고 제1기 제자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 양육단계인 QT와 일대일 제자양육을 먼저 했다.
이 단계에서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96년 5월, 제1기 여자 제자훈련반을 개강했다. 시작 3개월 정도부터는 놀랄 만한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변화의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 8시에 시작하여 온 종일 세탁소와 식품점에서 일하고 피곤에 지친 몸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앞에 놓고 서로 나누기를 시작했다.
그들은 밤 열 두 시가 되어도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 함께 받은 은혜에 감격하고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감격과 회개의 눈물 때문에 훈련을 중단할 때도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정이 깨어질 위기에 놓여있던 자매들은 하나같이 “내 남편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나 같은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살아 주니 고맙다. 내 가정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 그러므로 내 가정은 내가 지킨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믿어지지가 않았고,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지는 않나’ 하는 두려운 생각까지도 들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변화였기 때문이었다. 정말 제자훈련을 비슷하게만 해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었다.
제자훈련을 마친 후 모두 다 사역훈련까지 지원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교회를 섬기겠다는 다짐이었다. 사역훈련이 진행되는 중에는 모두가 헌신에 뜨거웠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고단한 이민 생활에 대한 배려로 숙제와 QT와 기도에 너무 관용함으로 10명 중 다섯 명은 중간에서 낙오되고 다섯 명만 사역훈련까지 마쳤다. 훈련은 어디까지나 훈련이기에 훈련다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수로 그런 결과를 낳게 되어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나는 제자훈련으로 맺힌 한 귀중한 열매를 잊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박사학위 과정 장학생으로 온 한 자매가 한국에서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으나 우리 교회에서 성가대 반주자로 봉사하던 중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받고 자신의 생을 주님께 맡기고 지금은 신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사역 훈련을 받은 이들은 순장으로 각 <우리>를 섬기고 있다. (양의문교회는 소그룹을 ‘우리’라고 함 : 편집자 주)
98년에는 제2기 여자 제자훈련반이 시작되었다. 6명이 시작했으나, 3명이 마지막 사역훈련까지 마쳤다. 아마도 지금까지 가장 알차게 성장한 제자훈련반이 아닌가 싶다. 나는 1기에서의 실수의 원인이었던 과제물 봐주기를 배격하고, 또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철저히 교과서적인 훈련을 시켜 나갔다.
그 결과 3명 모두가 헌신적이고 알찬 순장으로 양육되었다. 이들을 훈련시키는 중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어떤 자매는 인간의 한계에 부딪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넉넉히 이기는 것을 보았고, 어떤 자매는 생의 엄청난 상처를 안고 신음하며 살아왔으나, 제자훈련과 사역훈련 중에서 완벽하게 치료받아 지금은 죽도록 충성하는 능력 있는 순장이 되었다.
▶ 한 사람에게 투자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실패한 훈련의 예도 있다. 내가 제자훈련 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상처를 남긴 실패의 사실을 두 경우만 언급하고 싶다. 하나는 남자 제자훈련반을 두 번씩이나 실패한 사실이다. 한 번은 다섯 사람이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고, 또 한 번은 두 사람이 하다가 중단했다.
실패의 원인은 인선의 착오였다. 부인을 보고 남자를 뽑아야 하는데 남자만 보고 뽑았더니, 부인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를 뛰쳐 나가니 어쩔 수 없이 남편도 나가고 말았다. 사역훈련까지 마쳐 갈 즈음에 그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낙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능력 있는 남자 순장들이 배출될 것을 기대하며 인내했다.
또 하나의 실패의 경우는 제3기 여자 제자훈련반에서였다. 사실 나 개인으로서는 3기 여자 제자훈련반을 가장 기대했었다. 그러나 역시 인선을 잘못한 나의 판단 착오로 중간에 두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 채 떨어져 나가고 네 사람만 근근히 마쳤다.
인선에 대한 나의 실수의 원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꽃만 보고 열매를 보지 못한 나의 영적 통찰력 부족과 기도 부족이었다. 그들은 QT와 새일꾼반, 그리고 <우리> 모임을 통하여 시간 시간마다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나는 그 꽃만 보았지, ‘말씀 안에서 얼마나 인내하며 순종하는지, 진정 자기 부인의 결단을 하고 있는지’ 등의 열매를 분별해 보지 못했다. 꽃의 화려함만을 보고 인선한 나의 착오가 큰 실수였다.
또 하나는, 되도록이면 많은 인원으로 시작하려는 지나친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 이 실패를 통하여 제자훈련에 있어서 인선이 성공의 절반이요, 이를 위하여 많은 기도가 절대로 필요함을 다시 절감하게 되었다. 또 많은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한 사람에게 투자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제3기 여자 사역훈련은 한 사람에게 투자하고 있다. 분명 그 한 사람이 백을 감당할 것을 확신하며 땀을 쏟고 있다. 이런 실패를 교훈 삼아 12월 둘째 주에 시작하는 제4기 여자 제자훈련반의 인선은 많이 신경을 쓰고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 나는 행복한 이민 목회자이다
하나님은 드디어 우리 교회를 축복하셔서 2000년 9월 제1기 남자 제자훈련반이 시작되어 6명이 무사히 마치고 3명이 사역훈련까지 마쳤다. 참으로 헌신으로 준비되어 있기에 능력 있는 순장으로 다른 지체들을 섬길 것을 확신한다.
우리 교회는 사정상 남자 순장들보다 여자 순장들이 먼저 배출되었기에, 1998년 11월에 여자 우리 모임이 먼저 시작되었다. 매주 한번씩 모이는 여자 우리에는 전체 여자 성도의 80%가 참석하고, 이들의 출석률은 95%이다. ‘우리’에서 일어난 역사는 정말 대단하다.
시간 시간마다 예수를 만나는 감격과 기쁨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진행하고 끝마칠 때가 많다. 마음의 상처와 영적 치유의 역사가 각 우리마다 일어나고 있다. 2, 30년 신앙생활을 했던 소위 늙은(?) 성도들도 우리를 통하여 예수를 재발견하여 새로운 헌신을 다짐하기도 한다. 순원의 권유로 참석한 불신자가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변화는 예배가 달라졌고, 섬김이 달라졌고, 교회가 젊고 건강한 교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3년 전에는 성도들 중 고령층이 70-80%나 되어 우리 모임을 이끌어 가기가 매우 힘이 들었다. 그것 때문에 많은 고민도 해 왔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은 자연스럽게 젊은층이 80%로 그 분포가 바뀌어졌다. 고령층 20%도 매주일 한 번씩 우리 모임을 통하여 기쁨을 나누고 있다.
특히 새신자들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우리에서 뿌려진 말씀을 받는 대로 열매를 맺고, 매일 생활 속에서 천국을 누리며 감격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볼 때 나 어찌 행복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는가! 순장들의 우리에서의 이런 헌신적인 사역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제 새해부터 우리 교회는 기존의 우리 외에, 남자 우리를 포함해 16개의 우리가 조직되어 순장들이 열심히 순원들을 돌보게 될 것이다. 우리 마다 변화와 성숙과 번성의 역사가 일어날 줄을 믿는다. 하나님이 이들을 사용하시기 위해 키우셨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을 통하여 주님께서 나를 살리셨고 우리 교회 성도들의 병든 심령과 가정들을 치료하셨다. 지금 우리 교회는 장년 80명, 중고등부 30명, 주일학교 50명이 주일마다 모여 주님을 섬기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한 때 제자훈련과 사역훈련과 새일꾼반 등 일주일에 여섯 팀을 훈련시킬 때도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마치 몸이 땅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탈진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와 성숙의 기쁨을 보고 중단하거나 게을리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나는 행복한 이민 목회자이다.
내가 후회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왜 내 목회에 진작 제자훈련을 도입하지 않았던가 하는 안타까움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했으니 다행으로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뿐이다.
“제자훈련에 망설이는 동역자들이여! 더 늦기 전에 시작하십시오. 제자훈련은 반드시 됩니다. 내가 살고 교회가 사는 길입니다. 정말 행복한 목회자가 될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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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목사는 총신대, 총신 신대원을 졸업하고 미국 Eastern Baptist Seminary (Philadelphia)와 Philadelphia Bible of University, Master of Counseling을 마치고 현재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 (Philadelphia) 수학 중이다. Philadelphia 양의문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