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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깨 56 호

분명한 철학 위에 세워진 사역 - 남가주 사랑의교회

2002년 12월 편집부

200명의 순장 중 180명이 남성이라고 하면, 남성사역이 성공한 교회라고 말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립 14년째를 맞는 남가주 사랑의교회를 찾아 이처럼 남성사역이 부흥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남가주 사랑의교회가 이처럼 남성사역이 부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민 사회가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이민 사회는 부부가 함께 움직인다. 이것이 한국 사회와 달리 남성이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에 접근하는 것을 쉽게 만든다. 남가주 사랑의교회의 경우, 지금은 남녀가 분리되었지만, 초기에는 제자반도 부부 단위로 모집했다.

다락방은 지금도 부부 단위로 모이고 있다. 남녀를 분리해서 모이는 것보다 함께 모이는 것이 이민 사회의 특성상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부부가 한 단위로 움직인다는 이민사회의 특징이 한국 교회와 달리 남성사역을 정착시킬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환경적인 조건만으로 부흥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대부분의 이민교회에서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가주 사랑의교회는 분명, 한국의 그 어떤 교회보다도 독특한 남성사역의 열매를 거두고 있다.

남성사역이 이렇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담임목회자의 분명한 목회철학 때문이었다. 설립 초기부터 오정현 목사는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공동체이어야 한다. 가정의 변화가 교회의 변화를 가져온다. 가정의 변화는 가장의 변화를 통해 온다"는 말로써 남성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민 사회이든 한국 사회이든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보다 남성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 탄생예배를 드린 교회

그런데, 이런 힘든 길을 선택한 남가주 사랑의교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담임목회자의 역량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교회 성장은 담임목회자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남가주 사랑의교회가 이처럼 놀라운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제자훈련' 덕분이다. 남가주 사랑의교회는 좀 유별나게 시작된 교회다. 창립 14년째를 맞는 남가주 사랑의교회가 창립예배를 드린 것은 1988년 4월 16일이다. 하지만 남가주 사랑의교회의 역사는 1987년 12월부터 시작된다. 교회 창립 이전인 1987년 12월, 일단의 사람들이 오정현 목사를 중심으로 제자훈련을 받겠다는 목적으로 모였다. 그들은 소그룹으로 모여 훈련을 진행했을 뿐 아니라 아예 수련회까지 다녀왔다.

물론 이렇게 모인 이들이 교회의 창립 구성원이 되었다. 이런 유별난 사연 때문에 남가주 사랑의교회는 '창립'이란 말보다는 '탄생'이란 말을 쓴다.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는 의미로 '창립'이 아니라 '탄생'이란 말을 쓴다. 여기서도 우린 깨어난 평신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게된다. 설립 이전부터 시작된 제자훈련을 통해 남가주 사랑의교회에는 훈련된 평신도 지도자들이 늘 있었고 그들은 담임목회자와 함께 교회를 든든히 세워 가는 기초가 되었다.

▶ 비전이 이끌어 온 교회

그런데, 설립 예배조차 드리지 않은 아무 것도 없는 교회에 이처럼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비결은 바로 선명하게 제시된 비전이었다. 비전이 태생적으로 갖는 성격이 원래 그렇듯이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을 비전으로 삼지는 않는다.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비전의 대상이 아니다. 힘써 노력해 미래에 이루고자하는 목표를 비전으로 삼는 법이다.

남가주 사랑의교회는 비전을 중심으로 교인들이 모였다. 그 때 제시된 비전이 지금껏 4대 비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평신도를 깨우는 교회, 이민 2세를 책임지는 교회, 이민가정을 치료하는 교회, 선교명령을 순종하는 교회.' 지금 들어도 쉽지 않은 목표들인데 14년 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선포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라.

그러나 너무도 절실한 필요들을 담고 있는 이 비전 앞으로 사람들이 헌신을 서약했다. 이렇게 초기의 구성원들이 비전을 중심으로 모였기 때문에 훈련을 통한 담금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훈련이 고되면 고될수록 좋아했다. 갈급함이 많은 사람들이었기에 어려운 일들이 있으면 오히려 그것이 그들을 더 뭉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이처럼 비전을 가지고 말씀으로 강하게 도전할 때 교회는 부흥하는 법이다. 그 시간이 의미 있으면 길다고 해서 문제가 되질 않는다. 데이트 시간이 길다고 문제삼는 이들은 없다. 성도들에게 친절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말이 유약한 교회가 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남가주 사랑의교회의 예에서 보듯 옳은 것을 위해 헌신할 때 위대한 열매를 맺는 법이다.

▶ 완벽한 이중주

그럼, 지금의 남가주 사랑의교회가 남성들만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분명 아니다. 훈련된 평신도 지도자의 주 사역지인 다락방만 살펴보아도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남가주 사랑의교회의 소그룹은 보통 금요일 저녁에 모인다. 대개의 경우 남성 순장이 모임을 인도한다. 특별한 주제, 남녀가 따로 다루어야 할 주제가 있으면 남녀가 나누어서 모이지만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녀가 함께 모인다. 모임의 순서나 진행에는 그리 특별한 것이 없다. 일반적인 소그룹 모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남가주 사랑의교회에서 순장 사역을 잘 하기 위해서는 훈련된 순모의 필요가 절대적이다.

순모(旬母)는 말 그대로 소그룹에서 어머니 역할을 담당하는 사역자이다. 일반적으로 순장의 아내가 순모를 맡는다. 대개의 경우 가정의 내밀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은 여성들을 통해 나누어진다. 이런 내밀한 나눔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순모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경조사를 챙기고 일상적인 생활사들을 돌보는 일들이 순모에게 주어진 사역이다.

사실 그 소그룹이 삶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함께 공유하면서 기도하고 교제하는 살아있는 소그룹이 될 수 있는가의 열쇠가 순모에게 주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남가주 사랑의교회는 앞으로 순모들을 위한 정기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몇 번의 순모들의 사역 역량 계발을 위한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 남성이 깨어야 교회가 산다

현재 남가주 사랑의교회는 출석 성도 중에 55%정도가 소그룹에 출석하고 있다. 한국교회 평균이 30%에 채 미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건강함을 남가주 사랑의교회가 유지하고 향상시켜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우리는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훈련된 평신도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주목하자. 남성이 깨어야 교회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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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모델이 변화의 초석입니다. - 인터뷰 | 고경환 집사(남가주사랑의교회)

남가주 사랑의교회 남성사역의 참 모습을 엿보기 위해 순장사역 2년째를 맞고 있는 고경환 집사를 만났다. 고 집사는 43세라는 나이가 말해 주듯 지금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 멋진 남성이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기적 같은 인생 이야기들이 드라마처럼 전개되어 왔다.
1977년 8월 이민생활을 시작한 고 집사는 이민을 오기 전에는 신앙생활과 전혀 관계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이민 후에도 가끔 이민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몇 번 주일 예배를 참석했을 뿐 제대로 신앙생활을 한 적은 없었다.

남가주 사랑의교회를 출석한 첫 날 그는 몇몇의 남성으로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 열정이 넘치는 설교로 그의 생각을 완전히 사로잡은 오정현 목사였와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던 중년의 신사가 그들이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멋도 없고 대가도 없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5년이 지난 지금 고 집사는 그때의 중년 신사처럼 주일이면 주방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눈물 없이는 나눌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한달 쯤 되었을까? 동업자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고 집사는 말 그대로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성탄절을 1주일 앞둔 그 때, 그는 앞이 깜깜했다.

그리고 지도 목사의 권면을 따라 짐을 꾸려 기도원을 찾았다. 거기서 3일간 금식기도를 드리면서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하지만 성탄 예배에 참석한 그는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어 한없이 부족한 마음으로 자신의 가진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작은 것을 기쁘게 여기셨는지 아무것도 없던 그를 하나님은 회복시키기 시작하셨다. 제자훈련 동기생들의 말을 빌리면 그 해 제자훈련의 후반기는 고 집사가 인도하는 간증집회이자 부흥집회였다.

그는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 제자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락방의 순장과 순원들 그리고 제자반의 동기생들은 그가 새롭게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하나님은 고 집사와 그의 후원자들의 기도를 기가 막히게도 정확히 응답하셨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함께 은혜를 경험하고 성숙해 가는 기회를 제공하셨다.

첫 다락방의 순장을 지금껏 한없이 존경한다는 고 집사는 자신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변화된 남성 모델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제자훈련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제 고 집사 주변의 사람들은 고 집사를 인생의 상담자처럼 여기고 그를 신뢰하고 찾는다. 바로 이것이 변화된 남성이 갖는 영향력이라 생각한다. 남성을 깨워야 교회가 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남가주 사랑의교회의 목회 철학이 우리의 현장에서도 열매맺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