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목회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목회자에게 있어 행복의 제1조건은 무엇일까? 아마도 ‘교회성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부흥하는 교회의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박은조 목사는 ‘목회자의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라고 말한다. 최근 용인 수지에 샘빛교회를 분립 개척하고 한없는 행복에 젖어 있는 그를 찾아 그의 행복의 비결과 분립 개척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분립 개척이 아름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결심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샘물교회의 분립 개척은 오랜 전통의 결과이다. 이 전통은 1976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마포에 있던 성원교회는 강남에 거주하는 성도들을 중심으로 지금의 서울영동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그렇게 세워진 서울영동교회는 1990년 한영교회를 분립 개척하는 것을 시작으로 1998년 샘물교회가 분립 개척될 때까지 네 번의 분립 개척을 결정했다. 샘물교회는 서울영동교회에서 네 번째로 분립 개척한 교회인 셈이다. 어디 이런 일이 우연이나 사람의 뜻만으로 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선한 부르심에 성실하게 응답한 열매일 것이다.
1998년 네 번째로 분립 개척을 준비하던 서울영동교회는 원래 수지 지역으로 부목사를 파송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부목사 고생시키지 말고 당신이 내려와 개척하라.’라는 홍정길 목사와 이동원 목사의 제안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성장과 안정을 이루어 놓은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를 떠나 개척하라는 제안은 파격적일 수밖에 없는 도전이었다. 그런데 이런 도전을 받을 당시 박 목사는 오랫동안 두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해 온 상태였다. 하나는 영동교회에 새로운 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 한 교회를 17여 년간 섬겨 왔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영적 매너리즘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영동교회는 학교를 인수해 ‘기독교학교운동’이라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기로 결정했으나, IMF사태를 만나 계획이 진척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이런 와중에 두 분 목사님으로부터 그런 도전을 받은 것이다. ‘50이 다 된 나이에 개척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마음 한 편에는 ‘지난 2~3년 동안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제안을 주시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결국 박 목사는 다른 모든 사역을 접고 기도하기 위해 산정호수로 향했다. 박 목사는 그 때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으로 허락하신다는 마음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박 목사가 분립 개척해 떠난다고 했을 때 장로들은 ‘불만이 뭐냐? 이 교회가 목사님 마음대로 안되는 게 뭐냐?’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당회원의 절반 이상이 박 목사에게 제자, 사역훈련을 받은 일꾼들이었다.
목회자가 양떼를 떠난다고 하는데 환영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라는 박 목사의 결심 앞에서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17분의 장로 중 16분이 동의하고 1분이 기권함으로써 분립 개척이 결정되었다. 감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는 수용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제자훈련을 비롯한 그간의 훈련을 통해 쌓아 온 내공(?) 덕분이었을 것이다.
▶ 하나님, 미디어를 사용하시다박 목사는 샘물교회를 분립 개척하면서 5년 정도 열심히 전도하고 사역하면 출석교인이 500여 명쯤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그때쯤부터는 북한사역, 청소년사역 그리고 기독교학교운동 같은 사역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개척을 준비하던 1998년 9월부터 각종 언론매체가 박 목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는데도 말이다. 시작은 국민일보였다. 상담란에 1주에 1번씩 칼럼을 쓰게 된 것이다. 뒤를 이어 화요일 저녁에 진행되는 극동방송의 ‘라디오 1188’에 20분 메시지가 나가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기독교방송도 취재 요청을 해왔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교계 언론기관을 넘어 일반 언론기관에서도 그를 찾아온 것이다. 샘물교회를 개척한 이듬해 1999년, <조선일보>는 ‘종교계 내일을 연다’라는 특집코너에서 박 목사를 다루었다. 게다가 연말에는 MBC가
수첩을 통해 샘물교회를 소개했다.
믿기 힘든 이런 사실에 대해 박 목사는 “조선일보 기자도, 수첩을 제작한 도 불신자입니다. 이건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애를 써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빠른 시간에 성장시키셔서 무언가 일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샘물교회 성장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 모든 교회의 성장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 하지만 샘물교회의 경우처럼 미디어를 사용하시는 예는 드물다.
▶ 하나님, 훈련된 사람들을 보내시다
개척을 준비하면서 분당 지역 이곳저곳을 다닐 때, 박 목사는 분당에서 2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 논현동에 살고 있었지만 때때마다 성도들에게 전화해서 분당의 지리를 물어보고 찾아다녔다고 한다. 물리적인 거리와는 달리 분립개척 당시만 해도 분당은 박 목사에게는 심리적으로 매우 먼 곳이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박 목사는 많은 성도들이 따라나서리라고 기대하기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는 달리 6분의 장로님과 1분의 협동장로님까지 포함 약 100여명의 장년 성도들이 박 목사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신학대학원생 9명도 함께 했다. 개척 첫 해 연말이 되었을 때 50명 정도 출석하고 있었는데 교역자는 13명이나 되었다.
신학대원생들의 동역을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유학하던 후배 한 사람과 신학교 졸업 후에 다른 교회에서 섬기던 분까지 2명을 교역자로 섭외 해 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훈련된 사람들을 보내주셨고 이들이 샘물교회의 기초가 되도록 하셨다.
▶ 다시 한번 어려운 결정을 내리다
샘물교회는 교회설립 3주년을 기념하는 사역으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분립 개척을 결정했다. 그리고 1년이란 준비 기간을 거쳐 9월 29일 샘빛교회의 첫 예배가 드려졌다. 분립 개척의 전통이 있는 교회라고 해서 분립 개척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분립 개척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어렵다.
분립 개척이라고 하면 재정지원과 인적자원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사람 없이 교회를 세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교인들은 쉽게 교회를 바꾸지 않는다. 그들이 속해 있는 교제권 때문이다. 익숙하고 친밀한 관계를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도들간의 정이 끈끈하면 끈끈할수록 분립 개척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분립 개척을 진행하는 교회에는 분립의 과정에서 대부분 이 부분 때문에 많은 상처를 경험한다. 이런 아픔을 극복하는 비결로 박 목사는 담임목회자의 확고부동한 의지를 강조한다.
“말로는 ‘여러분! 가서 봉사하십시오.’라고 하지만 어떤 교인이 찾아와서 ‘제가 가서 봉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도전을 주셔서 안가면 안되겠습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이 싫어집니다. 그 사람이 내가 싫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순수한 마음으로 가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러므로 저는 분립 개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담임 목회자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담임목사가 분립 개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개척의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난관이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번 샘빛교회의 분립 개척에는 박 목사에게 직접 사역훈련까지 받은 핵심 지도자 5명을 비롯해 준비된 10가정이 동참했다. 건강한 교회의 DNA를 그대로 분립된 교회에 이식한 것이다. 이런 일은 담임목회자의 굳은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팀의 핵심 선수를 쉽게 이적시키는 감독이 없듯이 핵심 구성원을 쉽게 내어주는 담임목회자도 없기 때문이다.
▶ 행복한 목회자이십니까?
박은조 목사는 행복한 목회자였다. 인터뷰 전에는 교회의 빠른 성장 이 행복의 조건인 것 같앗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니 행복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려준 그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평생 소수의 교인들을 섬깁니다. 너무 숫자에 초점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주신 은사를 따라 어떤 전략으로 사람을 섬기고 제자삼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훈련된 평신도를 동력화시켜 사역하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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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물교회 분립개척 뒷 이야기
지난 9월 29일 샘물교회의 첫 번째 분립 개척교회인 샘빛교회의 힘찬 행진이 시작되었다. 샘물교회에서 훈련되고 헌신한 10가정의 평신도들이 성경득 목사 가족과 함께 큰일을 시작했다. 샘빛교회는 모교회인 샘물교회에서 8주 동안 준비기도회를 가졌다. 성 목사는 준비기도회에서 샘빛교회의 비전과 목회 방향을 설명하고 분립 개척을 준비해왔다.
성 목사는 “목회자로 불리기보다 전도자로 불리길 원한다.”고 고백할 만큼 전도의 열정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용인•수지•죽전 지역에 개척을 준비하면서 성 목사는 지역사회 주민들의 필요에 근거한 복음의 접촉점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 왔다. 고민의 결과로 145평이란 전체 임대 실평수 중에 본당이 차지하는 공간은 달랑 60평, 나머지는 어린이 도서관과 카페 공간으로 내어주었다.
교회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에 아직 도서관이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지역사회의 교육 환경을 조금이나마 개선시키기 위해 7천여 권의 장서를 갖춘 샘빛어린이 도서관을 개관했다. 카페는 인근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젊은 주부들이 자녀들과 함께 갈 곳 없어 헤메이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준비했다. 엄마들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교제하게 하고, 자녀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게 할 예정이다. 이런 시설을 통해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 자연스럽게 복음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부흥은 하나님의 은혜 100퍼센트와 인간의 노력 100퍼센트가 만나 이루는 신비의 미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샘빛교회는 절반의 성공을 안고 시작하는 셈이다. 샘물교회라는 든든한 후원자와 지역사회 필요중심적 전도 전략, 그리고 준비된 목회자와 헌신된 평신도 리더들이 만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쓰임 받기를 기대하며 준비하는 ‘기드온의 300용사’가 이룰 큰일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