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이즈만 놓고 볼 때 200여명을 갓 넘었을 정도로 이제까지 소개된 교회들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교회이지만 북삼제일교회는 분명 제자훈련 모델교회이다. 어쩌면 북삼제일교회는 많은 목회자들이 보고 싶어하던 "우리와 비슷한 상황"의 바로 그 교회이다. 우리가 북삼제일교회를 제자훈련 모델 교회로 소개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제자훈련 목회철학으로 똘똘 뭉친 한 목회자가 있기 때문이다.
▶ 목회, 자신감만 갖고는 안된다
서울 도심에서 사역하던 우봉석 목사가 경상북도 칠곡군이라는 농촌지역으로 사역지를 옮긴 이유는 공부도 좀 하고 쉬기도 할 생각에서였다. 서울의 빡빡한 목회 환경과는 달리, 농촌 지역 목회는 여유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서울에서의 경험을 잘 살리기만 하면 농촌 목회쯤이야 마음 먹은대로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부임한지 2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성도들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총동원 초청 전도주일, 특별 새벽기도회 등 서울에서 해본 사역은 모조리 실시했건만, 사람들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하던 우 목사는 제 29기 제자훈련지도자 세미나가 열린다는 광고를 보고 세미나에 참석했다.
제자훈련지도자 세미나 첫날, 옥한흠 목사의 광인론 강의를 들으면서 우 목사는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목회철학을 갖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결국 제자훈련을 통해 한 사람을 키우는 목회철학만이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얻은 그는 교회로 돌아가기만 하면 곧바로 제자훈련을 실시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너무 큰 꿈을 꾼 것일까? 막상 현실로 돌아오자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막막함뿐이었다. 교인이라고 해봤자 아이들 7명에 10여명 남짓의 성도들이 전부인 교회에서 도대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우 목사는 일단 시작해보기로 했다.
마침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교회에서 떡을 나눠준다는 얘기를 듣고 교회를 방문한 한 자매가 있었다. 우 목사는 이 자매에게 "제자훈련을 한번 받아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런 식으로 모인 사람들이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던 50대 가정주부, 80대 노인, 그리고 우 목사의 사모를 포함하여 모두 8명. 우 목사는 이들과 함께 북삼제일교회 제자훈련 제 1기를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가르쳤다. 그러나 우 목사의 열정과는 달리, 너무나 편차가 심한 사람들이 모인 제자반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제 1기 제자반은 그렇게 실패를 맛봐야했다.
▶ 제자훈련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 목사는 실패에 좌절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 전도한 사람들만을 모아서 제자반 2기를 시작했다. 신앙이 아직 든든하지 못한 훈련생은 제자훈련과 함께 양육도 병행했다. 무더운 여름, 임시 교회당으로 사용하던 텐트 속의 온도가 30도를 넘으면 인근 금오산에 있는 넓직한 바위로 자리를 옮겨 제자훈련을 실시했다.
1기때와는 달리, 2기생들은 비교적 제자훈련을 잘 받았다. 양육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실시한 제자훈련 2기생들에게서는 서서히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다. 훈련생들의 모습에 변화가 일어났고, 그 첫 번째 증거는 사람들이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훈련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전도에 열심을 내었다. 어떤 사람은 그 해에 28명이나 전도하기도 했다. 상주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었다. 전도에 불붙은 성도들로 인해 논바닥 위에 세워진 임시 천막교회는 점점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천막을 걷고 그 위에 80평 예배당을 건축했다.
그러나 한번 받은 가속도는 멈출 줄을 몰랐다. 점점 성도들이 늘어나면서 80평의 예배당도 비좁게 되었다. 이때 우 목사는 새로운 비전을 품었다. 제자훈련을 제대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다른 모든 것들이 그에 걸맞게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보면 다시 건축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제자훈련 수료생들이 적극적인 지지하는 것을 보면서, 우 목사는 결국 현재의 오태동에 새 성전을 건축하기로결정했다.
▶ 부족한 인적 자원은 키우면서 시작하라
농촌 지역 교회들은 공통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일할만한 일군이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의 농촌 지역 인구의 평균 연령이 60대가 넘어설 정도로 고령화되어 있다. 현재의 오태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북삼제일교회가 있었던 지역도 원래 참외를 재배하는 농촌지역이었다. 따라서 주민의 대부분은 참외농사를 짓는 농사꾼 가족 아니면 구미 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 가족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제자훈련 받을 만큼 지적으로 준비된 일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주민들의 평균 학력수준이 고졸 이하이다 보니 교인들 가운데 귀납법적 성경연구나 큐티 혹은 독서과제물을 내야 하는 제자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 목사는 제자훈련을 통해 훈련생들이 무언가 많은 것을 배우기보다는 기초적인 신앙의 영성을 강화시킬 수 있도록 제자훈련의 수위를 조정했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에 전혀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무리 숙제를 내줘도 제대로 해올 리가 없었습니다. 아주 작은 소책자 리포트를 써 오는 것도 그들에게는 큰 부담이었지요.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숙제는 많이 내주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기도를 많이 하게 했지요. 제자훈련생들에게 자기 스스로 영성을 관리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새벽기도에 반드시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훈련생이 기도하는 자리에는 반드시 우 목사도 함께 했다. 가능하면 그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교재 중심의 성경공부보다는 훈련생들이 목회자와 마음과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에 더 중심을 두었다. 그 결과 훈련생들의 마음이 점차 열리고 훈련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자훈련의 열매는 풍성한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와 훈련생들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하나되는데 있다는 우 목사의 확신이 옳았음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자훈련을 마친 성도들은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고, 목회자와 교회를 위해 섬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현재의 오태동 새 성전을 건축할때에도 모두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이들만큼은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데 아까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제자훈련 수료생이라는 자부심이 섬김의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교회 안에 훈련에 대한 소망함이 더욱 불붙는 계기가 되어 제자훈련이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 상황적인 문제는 지혜롭게 대처하라
여느 농촌 지역의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북삼면 주민들도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적이며 눈에 드러난 것만을 믿는 습성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일단 거부하는 자세를 보였다. 특히 오태동으로 예배당을 옮기면서 우목사는, 지역 주민들이 주변에 있는 다미선교회나 만민중앙교회, 류광수 다락방 교회들과 같이 "제자훈련"도 이상한 사이비로 싸잡아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같은 노회에서 활동하는 목사조차 "제자훈련이란 이단과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닐 정도였다.
이런 난관에 대항하여 우 목사는 적극적이며 지혜로운 전략으로 맞섰다. 우선 지역 주민들에게 제자훈련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전해주기 위해서 교회소개 전단지를 고급스럽게 제작했다. 그 전단지를 통해 우 목사는 북삼제일교회가 제자훈련으로 평신도를 세워 함께 사역하는 건강한 교회라는 이미지를 제시했다.
"농촌 지역 교회라고 해서 교회소개 전단지를 대충 제작하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전단지 하나를 만들더라도 작품을 만들어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감동할만한 전단지를 만들겠다는 우 목사의 열정대로 이 전단지 전략은 좋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제자훈련을 이단의 하나로 여기던 지역 주민들의 생각이 바뀔 뿐만 아니라 북삼제일교회에 대해서도 좋은 교회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우 목사의 이런 전략적 사고는 오태동 새 성전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우 목사는 지역주민들의 성향이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새 성전을 건축하면서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디자인을 주문했다. 그 결과 새 성전은 이제 지역주민들이 언제나 와서 쉬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여름 저녁이면 예배당 입구는 동네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돗자리를 깔고 담소를 나누는 자리로 변했고, 예배당은 어느 누구든지 언제라도 들어와서 쉴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어느덧 지역주민들에게 북삼제일교회는 교인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언제든 와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게다가 현대식으로 아름답게 디자인된 예배당은 주민들에게 교회가 그리 고리타분한 곳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또한 지역 성향에 맞도록 역동적이며 강력한 소그룹을 사역을 실시했다. 지역의 특성상 유교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노방전도와 같이 관계성이 형성되지 않는 상태에서 실시하는 전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교회에 출석하기 이전에 먼저 소그룹 구성원들과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다가 뒤에 예배에 출석하게 된 새신자들의 경우에는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결국 농촌 지역의 작은 교회일수록 관계 중심의 소그룹 사역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우 목사는 소그룹 사역이 지역 복음화에 적절한 전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그룹 사역을 활성화시키는 방법 가운데 첫째로 기존의 구역장과 인도자였던 "멘토"들에 대한 교육을 더욱 강화시켰다. 로마서 다락방 교재를 가지고 실시하는 수요 멘토반을 통해 소그룹 지도자들의 영적 재무장을 강화시켰다. 벌써 로마서만 두 번째인 이 멘토반을 통해 얼마나 큰 은혜를 받는지 모른단다. 같은 교재를 반복하기 때문에 지겨워할만도 하건만, 오히려 멘토들은 자신의 삶에서 점점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토요일 새벽기도회는 우 목사가 멘토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해주는 시간이다. 금요 철야기도회가 마치고 나면 피곤할만도 한데, 멘토들은 토요 새벽기도회에 어김없이 참석한다. 멘토들 스스로 이 시간을 영적 축복의 시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목회자와 하나된 비전을 소유한 멘토들에게 우 목사는 소그룹 사역의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그리고 작년 한해 북삼제일교회는 125명의 새신자들이 소그룹을 통해 등록했다.
▶ 농촌 지역 개척교회 목회자를 섬기고 싶습니다
우봉석 목사에게는 한가지 꿈이 있다. 그는 자신이 지난 10년전에 경험했던 일들을 지금도 겪고 있는 동료 목회자들의 문제를 함께 나눠지려는 열망을 갖고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도 제자훈련이 잘 접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경상도 지역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지도자 세미나를 참석했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지역적 한계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저와 저희 북삼제일교회가 가진 작은 꿈이 있다면, 지난 10여년 전 저희가 걸었던 전철을 밟고 있고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들, 제자훈련을 실시하고는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아픔을 겪고 있는 작은 개척교회의 목회자들을 섬기고 싶은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그래서 이 경상도 지역에서도 제자훈련을 통해 교회가 더욱 건강하게 살아나는 역사가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해봅니다."
비록 규모는 작은 교회이지만, 그 어떤 대형교회보다도 큰 열매들을 맛보고 있는 북삼제일교회.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하여 경북지역, 아니 한국교회 안에 큰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