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傳說)을 전해들은 소년 어니스트는 그런 사람을 만나려고 애를 썼다. 그 마을 출신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부자, 수없는 격전 속에서 승리를 일구어온 장군, 유창한 언변으로 정치계에 널리 알려진 정치인, 아름다운 음률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인들이 마을에 찾아왔지만 어니스트의 눈에는 큰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니스트는 하루의 일을 마치면 홀로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큰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까 생각하면서 성장했다. 그는 전도사가 되어 맑고 순수한 사상이 그의 인격 속에 녹아든 설교를 통해 이웃들에게 영향을 끼치고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던시인이 이렇게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 씨야말로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란 단편 소설의 줄거리이다.
비록 외향은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소설 속의 어니스트는 사랑과 선한 행실로 매일을 살며,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삶이 일치되는 가르침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 속의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질까? 마을을 찾아왔던 부자나 장군, 정치인, 시인의 모습은 많지만 어니스트와 같은 지도자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새로운 리더십의 요구
이구동성으로 21세기 지식시대에서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경영학계에서는 새로운 대안 중 하나로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제시하고 있다.성경 속에서나 발견할 만한 용어로 표현되는 리더십의 원리들이 영리를 추구하는기업에 적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커다란 변화들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최근에는 권위를 내세우면서 리더십을 펼치던 지도자들이 종처럼 섬김을 자원하는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3M, 인텔, HP 등 유수한 외국기업들과 삼성전자, LG, 하나은행, 대교 등의국내 기업들이 서번트 리더십을 도입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권위만 내세우던 모습이 직원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이끄는 리더십으로 변하고 있다.
섬기는 리더십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란 표현은 1970년 미국의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Greenleaf)가 주창한 것으로 명령과 획일적인 지휘체계보다는 사랑과헌신으로 모든 조직이 하나로 뭉칠 때 조직의 경쟁력이 배가될 수 있다는 의미를담고 있다.
로버트 그린리프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동방순례』에서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주인공 레오는 순례자들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종(servant)이었다. 그는 여행 중에 일행이 힘들어할 때마다 노래를 불러 활기를 불어넣어 주곤 했다. 그러나 레오가 사라지면서 여행단은 혼란에 빠지고 결국 여행 자체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충직한 심부름꾼이었던 레오가 없이는 여행을 계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레오가 사라진 이후에야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린리프는 레오를 통해서 언뜻 보면 종처럼 보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위대함을 리더십의핵심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섬기는 지도자란 단순히 호의적이고 친절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섬기는지도자는 사랑을 실천하는 리더십을 보여준다. 섬기는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 임무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사람을 돕고 섬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발휘한다. 만약 스스로 자신의 리더십을 평가해 보고 싶다면, 자신의 섬김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성장하고 있는지, 건강해지고 지혜롭게 되며 자율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돕는자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평가해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사실 섬기는 리더십의 뿌리는 성경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섬기는 자로 사셨다. 스스로 자신을 사랑의 법에 얽어매셨다. 자신을 기꺼이 주며 자신의 목숨으로우리들을 섬기셨다. 또한 자신의 사명을 ‘섬김’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요한복음 13장 13절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선생임을 확인시켜주셨는데, 그가 말하는 선생과 제자의 관계는 세상에서의 관계와는 아주 달랐다.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심오한 진리였기에 예수께서는 실제적인 퍼포먼스를통해 그 관계를 체험하도록 하셨다. 선생인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긴 것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요 올바른 관계의 모습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제자들도 그렇게 할 것을 명령하셨다. 팔레스타인의 풍습에는 외출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발을 씻겨주는 사람이 있었다.
‘종’ 혹은 ‘노예’라고 표현되는 신분의 사람들이다. 베드로가 자신의 발을 씻기 위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놀라 펄쩍 뛰었던 것도 종이나 하는 천한 일을 선생께서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노예제도가 사라진 우리 시대에는 ‘종’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그리 구체적이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종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시키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사역자들을 향해 ‘주의 종님’이라고 부른다. ‘종’에게는 ‘님’이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종놈’이라야 옳다. ‘종’이라 불리면서도 그리 목이 뻣뻣하고 대접받기를 좋아하는지, 혹 ‘종’을 ‘상전’쯤으로 이해하고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 오셨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섬김을 명령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섬김은 낮은 신분 때문에 섬기는 수동적인 섬김이 아니었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격의 권위를 가지신 분이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모습을 보여주심으로 예수님은 진정한 섬김을 가르치신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제자 삼는 일에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예수님의 섬기는 리더십을 배우는 것은 필수적이다.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면 결코 올바른 지도자가 아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역하기 원한다면 섬김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권위로 세워지는 리더십
그렇다면 과연 섬기는 리더십은 목회자들에게 어떤 것일까? 『서번트 리더십』(김광수 역, 시대의창)에서 제임스 헌터(James Hunter)는 리더십의 핵심이'밖(outside)’이 아니라 ‘안(inside)’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수도원에서아주 특별한 일주간의 여행을 통해서 군림하거나 관리하는 대신 봉사하고 헌신함으로써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서번트 리더십’을 배워 나가는 과정을 소개하고있다.
헌터의 말을 빌리자면, 섬기는 리더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권위'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하다. ‘권력’은 ‘지도자가 지위와 능력을 이용해서 원치않는 사람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도록 강제 또는 지배하는 능력’을말한다. 반면 ‘권위’는 ‘지도자의 영향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기꺼이 자신의의도대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능력’을 말한다. 헌터는 진정한 섬김의 리더십은 권력이 아니라 권위에서 표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권위는 우리가 남을 위해 봉사하거나 희생하는 순간에 형성된다. 인도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비폭력투쟁으로 인도를 독립시킨 간디의 원동력이나 사랑과 희생으로 전세계인의 추앙을 받아온 테레사 수녀의 힘이 바로 권력이 아닌 권위에서 파생한 것이다. 예수께서도 섬김으로부터 획득되는 권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0~12).
섬김의 태도
권력이 아닌 권위에서 세워지는 섬기는 리더십은 어떤 직책이나 위치가 아니라 태도를 의미한다. 그것은 종으로서의 희생을 각오하고 기꺼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채우는 마음을 의미한다. 많은 경우 종은 눈에 띄지 않지만, 조만간 사람들은 그를 의지하게 되고 그를 찾게 된다. 이러한 섬김의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존 맥스웰의 말처럼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은 우리의 직책이 아니라 우리의 사람들이다. 섬기는 리더십은 목회와 선교사역에 있어 절대적 요소이다.
웨런 B. 모어는 “종의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 하시는 최고의 통로 중 하나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들의 심령 속에 사랑의 다리를 놓는 것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설명해 주기만 해도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의 종이 될 때에야 그리스도께로 나아온다.”라고 말했다.
사역자로 부름 받은 우리(목회자)가 설교를 하고 상담을 하고 제자훈련을 할 때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이들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목회자의 야망을 위해서성도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성도들은 목회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목회자가 성도들을 위해서 부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주장하는 권위는 스스로 만인 앞에 주장함으로 얻는 게 아니다. 자신의 권위를 포기함으로써 얻어지는 권위다.
섬김으로 이끌고 이끎으로 섬기라
섬김으로 이끌고 이끎으로 섬기는 것은 서번트 리더십의 핵심모토이다. 우선, 목회자는 성도들을 잘 이끎으로 섬겨야 한다. 그런데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1차적인섬김은 말씀과 기도로 성도들을 돌보는 것이다. 친절이 넘치는 표정으로 휴지조각을 줍고 교회 입구에서 성도들의 신이나 우산을 받아 챙기는 것만으로 섬김의 리더십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위임된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제대로 섬기는 것이다.
단순히 잘 보호하는 목회를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영적 은사에 따라 사역하도록 훈련시킴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일이야말로 목회자의 참된 섬김이다(엡 4:11~12). 그저단순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위로해주는 일로만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반면, 섬김으로 이끌어야(leading by serving) 한다.
바울의 말처럼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끌어야 한다.
여기에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완벽한 지도자는 없다.
함께 배워 가는 자세로 가르쳐야 한다. 때로 자신에게도 실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별히 제자훈련을 이끄는 목회자라면 자신은 모든것을 다 알고 있고 가르치는 대로 온전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가르치는 자나 훈련받는 자가 함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순종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훈련에 임해야 한다.
다음은 섬기는 리더의 7가지 특징이다. 자신의 목회리더십에 적용해 보라.
1. 나는 성도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나 자신을 성도를 섬기는 자로 인식한다.
2. 공동체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다.
3. 항상 학습한다.
4. 먼저 성도들의 말을 경청한다.
5. 설득과 대화로 사역을 진행한다.
6. 공동체가 가족과 같은 유기적인 관계를 갖도록 이끈다.
7. 임파워링(Empowering)을 통해 리더십을 공유한다.
이제는 우리가 움직일 때이다
우리는 이러한 리더십을 갈망한다.
세상의 지도자들 역시 이런 리더십을 갈망한다. 그리고 자신은 이런 리더십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지도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본받을 만한 리더십이 없다고 한탄한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답답하다. 하지만 절대 포기하거나 실망하며 주저앉지 말자. 그런 리더십을 찾아헤매이기보다는 우리가 한번 그런 지도자로 서보자.
“젊은이, 자네를 위한 공동체가 없다면 자네가 먼저 만들면 되지 않겠나!”라는 폴 굿맨의 말을 우리의 삶의지침으로 삼고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