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자의 시간 관리에 대한 몇 가지 제안 -
“시간 관리는 자기 관리이며 능동적인 삶의 형상화 혹은 인생의 리더십이다.” 로타르 J. 자이베르트
훈련생이 제자훈련을 받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헌신이 필요하다. 특별히 시간의 헌신 없이 훈련에 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시간 사용의 헌신은 마음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라 배우고 훈련되어야 할 영역이다. 우리는 동일한 질문을 지도자인 우리 자신에게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은 잘 정돈된 모습일까? 우리는 규모 있게 주어진 시간들을 꾸려가고 있는가?
선천적인 시간 관리자들은 시간 관리에 있어 특별한 기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를 훈련시킬 기법을 필요로 한다. 물론 시간 관리 시스템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간 관리는 단순히 우선순위에 따라 시간을 분류하는 것 이상이다. 사실, 시간 관리라는 표현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을 관리할 수 없으며 단지 우리 자신만을 관리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 관리란 자기 관리라고 정의해도 무방할 듯하다.
제자훈련이 궁극적으로 모범과 삶을 통해 성도들을 이끄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들 자신의 삶,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우리가 하지 않는 일들을 가르치고 요구할 수는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우리를 믿고 따르는 훈련생들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제자훈련 지도자가 안고 있는 이런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호에서는 지도자의 시간 관리에 대해서 몇 가지 중요한 원리들을 나누고자 한다.
사명과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하라시간 관리가 궁극적으로 자기 관리이며 인생 관리이기 때문에 시간 관리의 출발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의 사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나의 정체성과 비전과 사명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른 모든 선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부분에서 분명한 사람이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분명한 자기인식은 바울의 삶을 설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울에게 분명한 사명선언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사명선언문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사실은 그것을 작성하는 과정 자체가 유익하다. 도움이 되는 책을 한 권 택해서 숙독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기적의 사명선언문』(로리 베스 존스)과 같은 책은 사명선언문 작성에 많은 도움이 된다.
교회 안팎의 일로 무척 바쁜 목회자 한 분이 있었다. 그에게는 주어진 모든 일들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었기에 더 이상 새로운 일을 한다거나 시간을 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평신도를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요 군사로 기르는 일에 소명감을 갖게 되자 삶의 스타일이 달라졌다. 우선순위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분명한 사명의식은 그의 시간 사용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자투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신의 시간 사용에 대해서 다시 점검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 하지 않던 일들이 중요한 시간을 차지하게 되고, 이전에 중요하게 취급하던 일들이 사라졌다. 그것은 자신의 사명과 정체성의 변화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이런 중요한 결정을 기초로 삶의 구조는 재정리되었다.
불을 끄는 것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매우 인상적인 영상물 한 편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미국 내 소방계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시카고의 어느 소방서 이야기였다. 여러분은 멋진 소방관하면 어떤 장면을 떠올리는가? 아마도 엄청난 화재현장에서 호스를 들고 진화하는,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화재를 진압하고 생명을 구하는 그런 화려한 장면을 연상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귀한 일이다. 그런데, 특별상을 수상한 이 소방서가 실제로 화재를 진압하는 데 사용하는 시간은 전체 업무 시간 중 2%에 불과했다. 나머지 시간들은 초등학교 등을 다니며 교육을 하고, 건물들을 꼼꼼히 점검하면서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지적하여 시정하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사역, 우리의 시간 사용은 어떠한가? 불을 끄고 있는가? 아니면 예방하고, 화재가 일어났을 때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는가? 화재는 언제나 긴급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불을 끄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면 우리는 시간을 스스로 관리하기 어렵게 된다. 분주하고 규모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을 채울 시간을 만들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성도들에게 풍성한 꼴로 나아갈 수도 없게 된다. 성도들은 성장하지 못하고 목회자에게 SOS를 요청하고 목회자는 그런 긴급한 119 호출에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반복된다.
만약 화재를 진압하는 목회자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화재를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소방관의 모습을 그려보라.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우리의 사역의 방향과 시간 사용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다.
도끼날을 갈고 있는가?
두 사람이 나무를 베고 있다. 한 사람은 정말 너무도 성실하게 쉬지 않고 도끼질을 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쉴 틈도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은 동일한 조건임에도 정기적으로 도끼날을 간다. 도끼날을 갈면서 숨도 고르고, 생각도 정리한다. 그리고 날카로워진 날을 가지고 다시 도끼질을 한다.
우리는 어느 쪽인가? 우리는 모두 도끼날을 가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제자훈련 사역을 하든 하지 않든 마찬가지이다. 날이 날카롭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지치게 되고, 궁극적으로 도끼는 부서져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날도 갈지 않고 도끼질만 해대는 것은 성실한 것이 아니라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도끼날은 지적, 정서적, 영적, 육체적인 면에서 날카롭게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의 시간 사용에 있어서 도끼날을 가는 시간이 있는지 살펴보자.
그런데 문제는 도끼날을 가는 것은 절대로 긴급한 성격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 않아도 금방 표시가 나는 영역이 아니다. 한다고 해고 금방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항상 뒤로 밀려나고 포기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선택과 우선순위의 원리가 매우 중요하게 대두된다.
선택은 우리가 해야 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삶은 우리에게 무한대의 선택을 제공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선택’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것들 모두를 가질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효과적으로 선택하기 위해 우리는 의식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종종 세상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그 무한대의 선택들에 적절하게 “NO”라고 답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이 선택의 과정은 반드시 첫 번째의 질문, 즉 “나의 사명과 정체성”에 기초를 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은 어떤 것들인가? 조용한 시간을 내어 리스트를 만들어 보라. 그것들이 분명할 때 우리는 보다 쉽게 “NO!”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순위를 결정하라사명에 기초한 선택과 동시에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이때 ‘긴급성’보다는 ‘중요성’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 ‘긴급성’과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간 관리 매트릭스는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조사 결과<표1>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1상한과 3상한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중요성’ 보다는 ‘긴급성’에 따라 살고 있다는 말이다. 또 다르게 말한다면, 자신의 사명과 목표에 따라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긴급하게 발생하는 일에 대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많은 목회자들에게서 다음의 말을 자주 듣는다. “제 시간을 제 스스로 계획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장례, 심방과 상담. 이런 것들은 제 계획과 예상 속에는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충분히 동의가 되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중에 예측 불가능한 긴급한 일들이 차지하는 몫이 얼마나 될까? 사실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예측불가능한 긴급한 일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성도에게 요구한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제레미 라프킨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시간 절약을 제일의 미덕으로 삼는 문화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점점 더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컬하다.”
사실 목회자에게 위급한 장례나 심방은 긴급하고도 중요한 1상한의 일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하고 교회의 문화를 만들기에 따라서는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내 주변에는 누구보다도 왕성한 사역을 하고 있지만 긴급한 일에 반응적으로 대응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중요한 일들을 선택하고 계획하는 효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많은 목회자들이 있다. 그들은 무척 바쁘지만 자신의 심신과 영혼을 관리하는 일에도 시간을 낸다. 그런 일들은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2상한”의 일들이다. 바로 도끼날을 가는 시간이다.
슈퍼스타 증후군에서 벗어나라효과적인 시간 관리를 위해서 위임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모세의 경우는 대표적이다.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처리하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쉴 틈이 전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그의 열정과 성실함이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선하게 작용하지 못했다. 그가 처리할 수 있는 한계를 이미 초과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장인 이드로의 충고를 따라 충성된 다른 사람들과 사역을 나누었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이 효과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마도 모세는 자신과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위해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백을 많이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물론 지시적인 위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지시적인 위임이란 심부름꾼 역할의 위임을 말한다. 한마디로 그저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위임받는 당사자에게 유익한 위임은 신임하는 위임이다. 그의 인격과 가능성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신임하는 위임을 하려면 이미 개발된 사람들을 발견하거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 키워야 한다. 사람을 길러내고, 위임하는 구조가 될 때에 공동체에 속한 모든 지체들의 시간 관리, 즉 자기 관리는 더 쉬워진다. 많은 동역자들이 은사를 따라 함께 사역할 때,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은 향상된다.
무엇을 위한 시간 관리인가?
아직 도로가 생기지도 않고, 자동차도 없었던 시절, 한 선교사가 짐꾼들과 함께 아프리카 밀림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는 마음이 급해서 안내자에게 빨리 가자고 몰아댔다. 3일째 되던 날 이른 아침 선교사는 출발을 강요했지만 짐꾼들은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설득도 협박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선교사가 그들이 지체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우리의 육체는 여기에 있지만 우리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여기서 더 기다려야 합니다.” 곱씹어야 할 교훈이 담겨 있다. 우리는 시간의 압박 속에 살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시간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여유가 없다.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이 그것을 설명해 준다. 스스로 닫히는 그 몇 초를 기다릴 수 없다. 버튼을 누르고야 만다.
잠깐 멈추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우리를 따라오는 성도들이 우리들의 삶을 보며 어떤 느낌을 받을까? 우리는 항상 속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시간 관리는 단지 더 빠르게 더 많은 일을 해내는 데 목표를 두지 않는다. 진정으로 투자해야 할 바로 그 일에 힘을 쏟고, 그러함으로 우리 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성도들도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섬기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이다.
우리에게는 계획성과 유연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계획성에 지나치게 매이지 않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간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사명에 따라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면 우리의 삶과 사역은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풍성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성도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늘 분주하고 쫓기는 삶이 아니라, 성실하고 부지런하지만 여유롭고 풍성하며 매우 효과적인 그런 삶의 모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