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5년 03월

기획1 * 성령에 매여, 성령에 붙잡혀 훈련하라

기획 최홍준 원장_ 국제목양사역원

우리는 제자훈련 자체가 성령의 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등한시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린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성령과 제자훈련은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감동과 능력을 찾아보기 어려운 제자훈련도 없지 않다. 우리는 예민하게 이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잘못하면 틀에 박힌 프로그램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 삭막한 성경공부로 끝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3년이 넘도록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훈련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으로 제자를 세우는 일이 완성됐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마무리 작업을 할 단계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성령께서 오셔서 해야 할 일이었다. 성령께서 오셔서 제자들에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눈을 활짝 열어 주신 후, 제자들은 복음을 전할 권세를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다시 말해서 성령 충만은 제자훈련의 완성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적인 견해 차이가 크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성령 충만한 은혜 없는 제자훈련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성령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힘 있게 역사하신다. 성경공부만 하고, 기도를 등한히 하면 성령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다. 제자훈련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아는 것은 많으나 성령의 영감이 부족한 경우를 많이 본다. 이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제자훈련의 끝손질은 반드시 성령이 하셔야 한다. 많은 지도자들이 이 중대한 사실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특권 의식을 갖게 하셨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죄 사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됐음을 가장 먼저 알게 해 줘야 한다. 그래야 세상과 구별되고, 세상 사람과 다르게 된다. 즉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이 같은 특권 의식을 갖고, 세상에 파송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받아야 한다.
그런데 제자훈련을 통해 치유되고 변화돼 세상에 나가 주님의 일꾼으로서 사역할 때,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일이 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성령이 마무리하셔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에 매여서 성령에 붙잡혀 훈련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제자훈련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가 있다. 성경공부를 하고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하며, 성령의 역사가 약하다는 선입견이 그것이다. 반대로 성령 운동을 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부족하지 않느냐?’ ‘성경공부가 결여돼 있지 않느냐?’라며 오해한다. 
그런데 이런 속단은 금물이다. 제자훈련을 한다고 해서 기도가 부족하고, 성령의 역사를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그 제자훈련은 실패한다. 은사 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말씀은 결여되고, 성경공부를 제대로 안 한다면 그 또한 바른 성령 운동이라고 볼 수 없다. 이 둘은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런 제자훈련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들이 불식시켜야 한다. 물론 각 교회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성경공부에 치중하다 보면 기도가 부족할 수 있고, 은사 운동을 하는 교회에서는 말씀 공부가 좀 약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분리할 수 없다. 또 기도와 성령의 역사 역시 분리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다고 해서 기도를 등한히 한다든지, 성령에 무식하다든지 하는 시각을 갖는 것은 제자훈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떠드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감동과 능력이 제자훈련의 마무리 작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48~49).
예수님께서는 3년 반 동안 제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훈련을 마무리하시며, 그들에게 성령을 받고 성령에 이끌려 나가라고 명령하셨다. 지금은 성령 시대에 살고 있기에 다락방에 앉아서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특별히 어떤 문제를 놓고, 성령 충만의 능력을 받기 위해 금식하면서 어떤 기간을 가질 수는 있다. 이런 부분에서 제자훈련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전적으로 도우셔야 할 수 있다는 의식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령에 대한 인식은 교파마다 다르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서 사역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떤 교파도 다르지 않다. 예수님의 제자는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의 능력에 이끌려 일해야 한다.
복음의 증거도 마찬가지다. 성령 충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전도를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다. 순종하고 나갈 때 성령께서 함께하신다. 자신은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증인이 되지 못한다고 변명할 수 없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8~29).
이 말씀은 제자훈련의 대헌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라는 것이 핵심이고, 한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그를 온전한 사람, 성숙한 사람으로 치유해서 바로 세우는 게 제자훈련이다. 이를 위해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가 바로 성령이시다. 위 성경 말씀은 바울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한다는 의미이지, 바울 혼자 힘쓴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은 성령 운동이다. 성령의 역사 없이 제자훈련만 할 때 열매가 있는가? 없다.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 성령의 역사다. 성령 충만이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성령의 지배를 받아서 성령을 따라 말하고, 성령을 따라 움직이며, 성령께서 하시는 모든 권능과 역사가 우리를 가득 채워 인도하게 하는 것이다. 완전히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성령 충만은 변화된 인격과 삶으로 평가해야
그런 의미에서 성령 충만은 변화된 인격과 삶으로 평가해야 한다. 제자훈련의 키워드는 변화다. 변화는 죄인이 의인으로 변화되고, 미숙한 자가 성숙한 자로 변화되며, 상처투성인 사람이 치유돼 새롭게 되는 전부를 의미한다. 그 변화의 핵심에 누가 있겠는가. 바로 성령께서 계신다.
리더는 여기서 가이드 역할만 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은 변화된 인격과 삶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보고 성령 충만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그의 변화된 인격과 삶을 통해서 ‘아, 그 사람 성령 충만하네!’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내 경우, 1987년 제자훈련 1기생을 모집할 때, 몇 달 동안 교인들에게 제자훈련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때는 기성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는 사랑의교회 딱 하나였다. 당시는 대학 캠퍼스에서 하는 제자훈련이라는 단어를 기성 교회에서 사용하면 “우리가 학생이가?” 하고 반응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제자훈련의 필요성에 대해 매 주일 강단과 심방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그때 1기생으로 모인 사람들은 모두 지원한 사람들이 아니라, 심방 가서 눈여겨봐뒀다가 개인적으로 부른 사람들이다. 그러나 2기부터는 1기 때 훈련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통해 변화된 모습을 보고, 지원하게 됐다.
남자 제자반과 여자 제자반은 차이가 있다. 특히 1기 남자 제자반은 사활을 걸어야 한다. 훈련생에게서 인격의 변화와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무엇보다 가정생활에 변화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환호하는 사람들이 아내들이다. 남편들이 변했다는 아내들의 이야기들을 들은 아내들의 친구들이 샘을 내 자신들의 남편도 제자훈련 받게 해야 한다며 2기 훈련생으로 지원시켰다.
왜 지원했냐고 물으면 2/3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런데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들이 변화되고, 또 그게 홍보가 돼 3기 제자반 때는 면접을 해서 뽑아야 했다. 이렇게 제자훈련의 평가는 훈련받은 사람들의 성품과 삶의 변화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면 교회도 함께 변화된다. 보통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한다. 성령님을 통해서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성령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느냐?’ ‘어떻게 삶과 인격이 변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자훈련을 하다 보면 평소 성령의 은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들은 목사 자신이 성령 체험이 없다고 해서 성령 체험을 한 교인들에 대한 격려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은사는 귀한 것이라며,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고(故) 옥한흠 목사님께서도 본인은 방언을 못 받았지만 방언하는 사람들을 격려하셨다. 그런데 부산에 내려와 보니 곳곳에서 은사로 인해 일어난 무질서가 컸다. 그 무질서를 모두 제지해 버리면 소방관이 된다. 은혜의 불을 끄는 소방관이 되는 것이다. 우선은 격려한 후에 질서를 잡아 줘야 한다.
인격과 삶이 변화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도 거기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한다. 성령 충만하면서도 삶과 인격의 변화가 있으면 정말 금상첨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인격과 삶의 변화에 두는 것이다. 비록 탁월한 은사 체험은 없다 할지라도, 인격과 삶이 변화되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밖으로 드러날 때 많은 사람들에게 귀하게 여김을 받고 귀감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은사가 있다고 야단을 떠는 것보다 더 은혜를 받는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닮아 간다”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아무리 가르치고 애를 쓰고, 씨름을 해도 전혀 변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지도자부터 성령 충만해야 한다
지도자가 훈련생들에게 변화를 일으키려면 제자훈련 시간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후속 조치로 훈련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섬기는 수고가 필요하다. 각 사람을 권하고 섬기는 것이 바로 제자훈련이다. 제자훈련 지도자가 진솔하고 신실하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옥한흠 목사님으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았다.
그분의 진실함은 절대 거짓도, 가식도 없었다. 나는 신학교 2학년, 그러니까 사랑의교회가 개척한 지 한 2년 남짓 됐을 때, 교인 수도 200명 미만이었을 때 사랑의교회에서 사역했다. 당시 주보에 실을 주일 낮 예배 설교 제목을 여쭈려고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목사님께서 내게 “주일 낮 설교 좀 해야겠어”라고 하셨다. 나는 목사님께 “아니, 주일 낮 예배 설교를 왜 제가 합니까?”라고 물었다. 목사님은 “그렇게 됐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 “그럼 목사님께서는 어디 가시는데요?”라며 물었다. 목사님은 “좀 쉴래” 하셨다. “그럼 주보에는 뭐라고 기록할까요?”라고 여쭙자, “아, 쉰다고 해”라고 하셨다. 내가 “기도원 갔다고 적으면 안 돼요?”라고 하자, “안 돼. 나 쉬러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주보에는 담임목사 동정으로 ‘쉬러 가심’으로 나갔던 적이 있다. 목사님은 심방을 하실 때도 귀납적 심방을 하셨다.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했는가, 좋아하는 찬송이 뭐냐, 은혜 받은 말씀이 뭐냐고 계속 물으면 성도들은 당황한다. 은혜 받은 말씀이 있다고 하면 그것으로 말씀을 전하시고, 없으면 주로 복음을 제시하셨다. 그렇게 격식 없이 한 영혼의 심령을 만지시고, 어떤 방향으로 성장시켜야 할지 진단하셨다. 
제자훈련을 하는 지도자는 성도와 함께 자라간다. 함께 자라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믿는 사람은 영의 사람이다. 예수의 영을 모시고 사는 영의 사람이기에 영적 갈증이 채워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갈증을 느낀다. 이때 지도자는 말씀과 성령으로 기도하며,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영적 혼란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말씀과 기도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신다.
성경공부와 기도의 관계는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 앞에 앉는 사람이다. 당신은 하나님 말씀 앞에 앉아 있는가? 그렇다면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신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깨끗해야 한다. 제자훈련을 하는 지도자가 갖는 가장 큰 복이 있다면 그것은 기계적으로 강의만 하고,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고, 성도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교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도들이 경건하고 깨끗하며, 순결하고 새롭게 되고, 회개하며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도자 역시 함께 깨끗해져야 한다.
이것이 복이다. 제자훈련을 올바로 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잘 알 것이다. 왜냐면 그들과 함께 자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장담 못한다. 시험에 들면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적 유혹이나 돈 문제, 명예, 학력 등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지도자는 자신의 약점을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의 약점을 치유하고, 자유를 얻어야 평신도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인식시켜라
지도자는 성령의 존재와 은혜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강조해야 한다. 지도자가 귀납적으로 질문하는데, 훈련생 중 신통하게 대답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 그때에는 “형제님, 답변이 정말 탁월하세요”라며 격려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도자가 다른 훈련생들 앞에서 한 사람만 칭찬하는 것은 금물이다. 또한 성령의 역사를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자매님, 놀랍네요. 성령께서 자매님을 통해 이렇게 참 기가 막힌 정답을 하게 하셨네요.” 항상 성령께서 도와주셨음을,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해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그 사람 개인이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셨다는 인식을 다른 훈련생들도 갖게 된다.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답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 대단하다. 어부가 어떻게 그런 답을 하는가”라고 하시지 않고, “네게 가르쳐 주신 분은 성령이시다”라고 말씀하셨다.
지도자는 평소 성령에 대한 은혜와 존재, 분명한 확신을 훈련생들에게 심어 줘야 한다. 성령과 연관해서 깨닫게 하고, 답하고 알게 하면 훈련생들은 자신이 잘해서 변화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기셔서 변화시켜 가심을 고백하게 된다.
또한 지도자는 메마른 성경공부와 영성이 넘치는 말씀, 나눔의 차이를 바로 파악해야 한다. 지도자는 자신이 메마른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은혜가 없으면 메마른 성경공부가 된다. 메마른 교재를 가지고 씨름하다 보면 말이 많아진다. 귀납적 성경공부를 파악하면, 개방적인 질문을 할지, 폐쇄적인 질문을 할지도 구별하게 된다.
지도자는 귀납적인 질문을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서 제자훈련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설교 한 편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힘든 작업이다. 여기에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는 성령에 이끌려 제자훈련을 하고 나면 피곤하지가 않다. 그런데 메마른 성경공부와 씨름하고 나면 정말 힘들다.
제자훈련 교재에 대한 지도자의 소화 정도가 제자훈련의 성령 충만함을 좌우하기도 한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마귀가 안다. 그래서 한 과 한 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신앙고백과 간증이나 하나님과 매일 만나는 생활, 경건의 시간, 살아 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 무엇이 바른 기도인가? 등 한 과 한 과를 완전히 소화해야 한다. 그러니 지도자가 성령에 매이지 않고, 혼연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제자훈련 지도자는 말씀 준비를 충실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제자훈련을 하면 성도들이 말씀을 많이 읽고, 책도 많이 읽는다. 수준이 점점 높아진다. 그런데 설교의 수준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면 내가 부흥하겠다고 몸부림쳐도 부흥이 안 된다. 설교도, 심방도, 제자훈련도 모두 성령께 의지해야 한다. 특히 제자훈련은 집중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되지 않는다. 전적으로 성령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
바울도 자신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을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한다고 했다.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와 군사로 만들어 세상에 파송하기 원하는가? 제자훈련을 시켜라. 그러면 로드십이 정립돼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제자로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최홍준 목사는 합동신학원(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회)을 졸업하고,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박사를 받았다. 전통 교회였던 호산나교회를 제자훈련으로 변화시켰으며, 은퇴후 현재 국제목양사역원 원장으로 사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