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김철수 목사_ 천안장로교회
누군가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언어생활이다.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은 제자 됨의 마지막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훈련의 순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제자로서의 언어생활은 제자 된 삶에서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할 부분이라는 뜻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대부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의 언어생활은 어때야 할까? 아니 제자이기 이전에 성도로서, 불신자들과 철저히 구별된 언어생활을 하려면 어떤 노력과 훈련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눠 살펴보려고 한다.
제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다 말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말해서는 제자다운 언어생활을 할 수 없다. 언어에 대한 기본 전제는 이것이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벧전 4:11). 말끝마다 성경 말씀을 운운하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힘쓰라는 게 아니다. 제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제자로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첫째, 사랑을 머금은 말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이라고 할 때, 제자는 사랑을 머금은 말, 상대방을 위하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말, 사람들을 세우는 데 보탬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 시기와 질투, 경쟁심에서 비롯된 험담, 모함, 비방, 비판의 말들은 멀리해야 한다. 그러나 언어생활의 가장 기본이라 말할 수 있는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같이 잘못된 모습은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성도들 간의 험담, 모함, 비방, 욕설이 비그리스도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람들은 거친 말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삶으로는 절대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상대방과 스스로에게 입힐 뿐이다. 설령 나중에 문제가 해결되고, 화해한다 하더라도 말로 인한 상처는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 된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제자의 입에서는 사랑을 머금은 말이 나와야 한다. 시기와 질투, 경쟁심과 온갖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말, 상처를 입히는 독을 품은 말은 절대로 나와서는 안된다.
둘째, 지혜로운 말을 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거짓말은 제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살다 보면 어떻게 처신하고, 말해야 할지 곤란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섣불리 판단해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묻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지혜를 주셔서 올바른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자들의 혀를 주시도록’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사 50:4).
예를 하나 들겠다. 직장 상사가 누구와도 만나거나 통화하기 싫으니 자신이 자리에 없다고 말하라고 요청했는데, 거래처로부터 상사를 찾는 전화가 계속 와 난처한 경우다. 상사의 요청을 따르자니, 거짓말을 해야 해서 마음이 불편하고, 그렇다고 상사의 요청을 무시한 채 전화를 연결해 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럴 때는 거래처에게 상사와 직접 전화 연결을 시켜 줄 수는 없으니, 대신 자신에게 이야기하면 상사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사의 요구도 들어줄 수 있고, 거래처의 다급한 요청도 충족시켜 줄 수 있다.
물론 모든 경우에 이런 해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모두를 위한 해법, 곧 ‘win-win’ 전략은 없는지 고민하며, 지혜롭게 처신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덕스러운 이야깃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어떤 만남과 상황에서 적절한 화제를 갖고 대화를 이끌면 관계적인 면에서나 분위기 면에서 좋은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교회에서 소그룹 모임을 하기 전 곧, 티타임에 나누지 말아야 하는 주제들이 있다. 정치, 부동산, 주식에 관한 이야기 등이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운동, 여자들의 경우에는 쇼핑, 자녀들에 관한 얘기 등도 주의해야 한다. 물론 필요할 때는 나눌 수도 있지만, 시도 때도 없이 그런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모임에서 꼭 나눠야 할 주제들을 놓치거나, 모임의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
이것은 교회 밖에서도 적용 가능하다. 그만큼 어떤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음담패설을 내뱉고, 또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험담, 비방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끈다. 물론 이런 경우 예수님의 제자라면 다른 쪽으로 화제를 유도하거나, 되도록 대화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하지만 이런 주제의 이야기들이 나오기 전에 따뜻하고 덕스러운 이야기들로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또한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얘기들을 나눠야 할 때도 있다. 최근에는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가 이슈였다. 동성애 문제, 이슬람 할랄 문제 등의 예민한 문제, 청년 실업, 고령화 사회에서 노년의 삶에 대한 주제들을 나눌 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유의해야 한다. 별 생각 없이 불신자들과 같은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세상의 가치 기준을 따르게 되거나, 지나친 근심과 걱정에 휘말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제자로서 사회 문제들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 이에 대한 적절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과 구별된 언어와 행동을 할 수 있다. 또한 세상 근심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믿음과 소망으로 위로하고 건강한 삶으로 이끌 수 있다.
제자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훨씬 어렵고,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은 성도들을 ‘말만’ 잘하는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말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다. 하지만 정확한 의사 표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나 상황, 분위기에 걸맞은 의사 표현 방식이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이 한 말에 걸맞은 삶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첫째,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제자는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한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확한 말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말에도 맵시가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말을 예쁘게, 폼 나게, 사랑스럽게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맞는 말을 하는데, 말하는 사람이 영 경우가 없어 거부 반응이 일어났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표현 방식이 잘못돼 있거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정직한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긍정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한 말을 통해 그리스도의 덕이 상대방에게 나타난다.
야고보 사도는 “너희는 선생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라고 말했다. 그만큼 선생 된 자의 말의 위력이 크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점을 명심하고, 지나치게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이며,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대신 긍정적이고, 상대방을 칭찬하며 격려하는 말을 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둘째, 말하는 것보다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 말이 많은 사람은 얼마나 실수가 많겠는가? 말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말하기보다 듣기에 더 힘써야 하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말실수를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은 듣기를 소홀히 하면서 말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듣기에 힘쓰면 힘쓸수록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이런 실수는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한다. 왜 그런가? 스스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 섣부르게 가르치려 하고 성급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말 효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세워 주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말함이 아닌 들음으로써 이뤄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노련한 상담가들이 그렇듯, 잘 들어주는 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문제 해결책을 발견하게 하고,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런 차원에서 성숙한 제자 됨에는 성경 말씀이나 성경적 가치관에 근거해 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오히려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기울여 듣는 것에 있다 하겠다.
야고보가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약 3:2)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아무도 자신의 언어생활이 온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예수님의 제자 됨은 어느 수준에 이르렀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제자로서의 언어생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 습관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 그럴 때 말실수는 점점 더 줄어들고, 덕은 점점 더 세우게 될 것이다.
김철수 목사는 연세대학교 신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그리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Th. M.)을 졸업했다. 현재 천안장로교회 담임목사와 충청 CAL-NET 총무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