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5년 09월

특집 2 - 옥한흠 목사 추모 5주기, 제자훈련의 대가로서의 옥한흠 목사

특집 최홍준 목사_ 국제목양사역원 원장

1980년 4월, 옥한흠 목사님의 전화
“아직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나요?”1980년 4월, 옥한흠 목사님의 전화 내용이다. 3월 초에 목사님이 함께 사역하자며 연락을 주셨는데 나는 그때 사양했다. 이유는 당시 장위동 장성교회에서 대학부를 맡고 있었는데, 디사이플십으로 체계를 바꿔 한창 재미에 빠져 있던 터라 고사했다.
또 당시 강남은평교회는 개척 교회를 겨우 벗어난 때라 대학부를 새로 만들어야 했기에 부담도 됐다. 무엇보다 그때 내 나이가 30대 후반이었는데, 아이 셋에 모친까지 여섯 식구인 신학생을 부르시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 나는 나이 많았고, 식구 많은 사람을 부교역자로 부를 교회가 있겠는가 생각해 아예 교회 개척을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목사님의 부름을 사양하고, 봄 방학을 맞아 동두천에 있는 미디안 기도원으로 교회 개척을 위한 10일 금식기도를 하러 갔다. 그런데 기도 응답은 교회를 개척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옥 목사님의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전도사가 아닌 부목사를 뽑으신다고 들었는데요?”그랬더니 목사님은 “부목사로 모집을 해도 최 전도사같이 제자훈련을 경험한 사역자가 없어. 내가 지금 교역자를 훈련시켜서 목회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 다시 최 전도사를 찾게 된 거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안그래도 교회를 개척하려고 기도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해 목사님의 청을 거절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럼 오는 것으로 하고, 내...

* 더많은 내용은 <디사이플> 2015년 09월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