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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국제제자훈련원
제자훈련의 가장 큰 역설은 죽어야 사는 데 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썩지 않으면 이집트 피라미드의 유물에서 보이듯 수천 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우리는 때로 씨앗이 썩어진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때로는 낭만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는다는 것은 쾌적한 환경에서 사람들에게 자기희생을 드러내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침침하고 어둡고 축축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썩어짐이 십자가와 연결이 되고 복음의 진수와 연결이 되면, 싹이 나고 줄기가 올라오며 잎사귀를 타고 푸른 이삭이 영글어 황금 들판의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신앙의 역설이다.
신앙의 역설을 말할 때는 ‘뱃속의 역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요나는 니느웨 성으로 가서 회개를 외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갔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떠나 도망간 그 길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가는 첩경이 됐다. 사람들은 그가 죽도록, 그의 인생이 끝나도록 그를 바다에 던졌지만, 그것은 요나로 하여금 새로운 사명에 눈을 뜨게 하는 역설의 순간이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삼켜졌을 때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뱃속은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요나를 진정으로 살리는 생명의 장소가 됐다. 그래서 물고기의 뱃속은 죽음이 생명으로, 도망자가 소명자로 거듭나는 ‘뱃속의 역설’이 됐다.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구했을 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고 말씀한 이유는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이 생명으로 변한 신앙의 역설, 뱃속의 역설을 말씀하시는 뜻이 깔렸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진정한 제자도는 요나처럼 물고기의 뱃속을 경험하는 것이다. 진정한 제자훈련은 물고기의 뱃속에서 죽음 대신 생명을, 도망자의 삶 대신 소명자의 삶을 경험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오늘날 진정한 제자훈련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요나처럼 ‘뱃속의 역설’을 경험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대는 점점 더 인간의 에고에 가치를 부여하고, 자아실현을 중요시하고 있으며, 모든 언론매체가 자아를 섬기며 매력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세상의 중력은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가차 없이 도태시키며, 부숴버리고 있다. 제자훈련도 손과 발 대신 입이 커지면, 자기도 모르게 이런 세상의 질서에 함몰되기 마련이다.
이토록 강력한 세속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죽어야 사는 신앙의 역설을 체질화해야 한다. 땅에 떨어져 썩은 밀알이 수많은 결실을 맺는 가을은 신앙의 역설, 뱃속의 역설의 산 증인이다. 썩어진 밀알이 황금 밀밭을 이루는 이 계절에 죽어야 사는, 썩어져야 열매를 맺는 제자훈련의 정수를 다시금 묵상하는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