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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국제제자훈련원
한 유명인이 TV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만, 아마도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지금 절에 다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교인이 된 것은 순전히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아니며, 결국은 운명이라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는 젊은이 가운데 이런 식의 생각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이 스스로 결단할 때까지는 신앙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는 말을 신념처럼 삼는 경우도 있다. “신앙은 자녀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결정될 일”이라는 말에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 속에 사는 많은 부모가 공감하고 있다. 결국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모두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자신감을 잃고 있기에 일어나는 시대적 현상이다.
이처럼 교회를 다니지만,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에 물들어 있는 부모 세대에게 신앙적 가치 우위를 운운하는 것은 백약이 무효라는 생각이 든다. 소위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다니지만 신앙적으로 불성실한 자녀와 그다지 보여줄 것이 없지만 신앙적으로 바르게 사는 자녀 중에서 주저 없이 후자를 선택할 부모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면 부모의 삶이 신앙적으로 정도(正道)를 간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신앙적 영향력은 미치겠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나는 사무엘과 그 아들들의 이야기를 다룬 사무엘상 8장 서두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렇게 일생을 한결같이 하나님 곁에 섰고 민족적인 존경을 받은 사무엘이었지만, 그 아들들에 대해서 성경은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않았다”고 두 번이나 반복해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신앙의 세대 계승을 위해서 부모가 세속적 가치에 물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 자녀들에게 신앙적으로 흠결 없는 본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신명기 6장 7절, 11장 19절의 핵심어구인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말씀이 열쇠라고 생각한다. 사무엘은 구약의 율법에 통달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쁜 사역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자녀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가르치는 일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이것은 사역자로서 나 자신에게도 늘 큰 숙제와 같은 일이었다). 제대로,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자녀의 심비에 새겨질 때까지 가르치지 않으면 부모의 신앙은 전수될 수 없다.
이것은 왜 제자훈련이 젖먹이 때부터 시작돼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신앙에 대해 자녀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는지 눈을 열어야 한다.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즉, 말씀을 지킬 때까지 가르치는 것이 부모 세대와 한국 교회의 타협 불가한 선택의 길이라는 점이다. 결국은 가정에서부터 매일, 매주 성경을 열어 함께 읽고 자녀들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위한 진정한 제자훈련의 초석이자 쐐기돌이 될 것이다.
죄성을 가진 인간의 몸을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체질화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만드는 첩경이다. 그렇다! 자녀를 말씀으로 훈련하는 데에는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골든 타임’(Golden Time)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