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머레이는 남아프리카의 오렌지나무를 해치는 질병 가운데 하나인 ‘뿌리병(Root Disease)’를 소개한다. 그러나 나무가 이 병에 걸리더라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매를 맺기 때문에 보통 문제가 있다고 알아채기 어렵다.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잎이 누렇게 뜨고 열매도 적어지고 결국에는 죽게 된다.
이 병든 나무의 문제가 뿌리에 있는 것처럼, 사람이나 공동체의 문제도 겉으로 보이지 않는 근본 뿌리에 원인이 있다. 문제는 뿌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겉모습만 보고 문제를 소홀히 하기 쉽다. 그러나 한 나무의 미래는 건강한 뿌리에 달려 있다. 높고 크게 자라는 나무는 무엇보다도 뿌리를 땅 아래 깊이 내린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높이 자란 나무와 같이 자신이 섬기는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한다. 잘 자라서 그늘을 만들어주기를 원하고 영향력을 끼치기 원한다. 하지만 먼저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목회자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조급병이 아닐까 싶다. 마치 동전을 넣으면 캔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어떤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그것이 교회성장이라는 가시적인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것도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는 급성장을 원한다. 그리고 그런 급성장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주변에 급성장한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가 했던 프로그램대로 따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성장을 경험하지 못하고 침체된 교회를 이끌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고, 어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겠지만, 효과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뿌리를 살펴봐야 한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우후죽순처럼 늘어가는 기독교 점쟁이들이 있다. 심상에 떠오르는 개인적인 생각과 이미지를 마치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계시인 것처럼 예언한다고 떠벌리며 영적 혼란을 조장하는 사역들을 교회는 성령사역이라고 떠받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교회조직을 보험회사처럼 만들고 있다. 마케팅 이론이 기독교 교리로 둔갑하고 있다. 그럴듯한 소그룹 이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단계 판매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경영을 하는 목회자도 허다하다.
최근에는 이머징 교회에 관한 논란도 뜨거워지고 있다. 탈현대적이고 탈기독교적이 되어가는 포스트모던적인 문화로 바뀌어가는 과정 속에서 교회도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중에는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속에 교회의 변혁을 시도하는 복음주의적인 운동들도 있다. 팀 켈러와 같은 목회자는 포스트모던을 향한 지성적인 변증을 시도하고 있다.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라는 관점에서 교회의 본질을 고민하는 미셔널(missional) 교회 운동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을 변질시키고 복음에 대해 거부감을 느껴왔던 사람들에게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복음의 껄끄러운 부분을 숨기거나 삭제하는 운동도 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 이것이 알고 싶다』라는 저서에서 마크 드리스콜은 브라이언 맥클라렌과 랍 벨, 더그 패짓과 같은 목회자들이 주도하는 소위 ‘이머전트 자유주의자’에 대해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그는 D. A. 카슨의 말을 빌려 맥클라렌이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비판한다. 드리스콜은 이러한 흐름을 그저 시대를 풍미하는 하나의 조류로 품기 전에 그 뿌리와 신학적 입장을 제대로 살펴보라고 권고하고 있다.
교회가 새로운 사역의 시도에 대해 닫혀 있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늘 개혁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포기하면서 세상의 비위를 맞추며 달래주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효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용서받는 목회 풍토는 개혁되어야 한다. 말씀 안에 뿌리를 깊게 내린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