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10년 10월

옥한흠 목사님 따라하기

발행인칼럼 김명호 목사 _ 국제제자훈련원 대표

어쩌다 보니 옥한흠 목사님과 함께 사역한 시간이 30년이 되었다. 아버지는 내 나이 스물여섯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으니 아버지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옥 목사님과 함께 보낸 셈이다.
내 결혼식에서 아버지는 주례를 맡은 옥 목사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옥 목사님께서 맡아주십시오.” 그 말씀이 무심코 던진 말인지 곧 다가올 죽음을 내다보고 말씀하신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때부터 옥 목사님은 내게 영적 아버지로 자리 잡았다.
사랑의교회가 그렇게 크지 않을 때에는 누군가를 거치지 않고도 옥 목사님을 찾아뵐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아직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은 이른 시간에도 목사님의 방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방문을 두드리려고 하다가 밖으로 새어나오는 목사님의 기도 소리에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뵙지 못하고 나온 적이 종종 있었다.
한번은 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목사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살펴보니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계신 것이다. 나는 그때 목사님의 영성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았다.
옥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에 한 번도 만족해본 적이 없는 분이다. 주일 아침마다 설교를 하신 후, 오후에는 자신의 설교를 들어보셨다. 자신의 설교를 다시 듣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나는 안다.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그때마다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옥 목사님은 좀 더 나은 설교를 위해 자신의 설교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계셨다. 그분에게는 설교가 무거운 짐이었다. 농담처럼 설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설교마다 진액을 쏟아 부으셨다. 마치 이번 설교가 마지막 설교인 것처럼 준비하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메시지는 늘 나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깊은 은혜의 자리로 이끌었다. 나는 그때 그분의 메시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았다.
옥 목사님은 일이 있을 때면 지체하지 않고 찾으시는 분이셨다. 전화로 연결이 되면 안부를 묻고 본론을 말하셨다. 때로는 집에서 잠을 자다가 전화를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한 번도 지금 어디서 뭐하느냐고 물어보는 적이 없었다. 부교역자에게 출근 퇴근 시간을 가지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옥 목사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회자가 출퇴근 시간을 지켜가면서 일할 수준이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런 것에 얽매여서 사역하지 말아라. 밤을 새며 사역을 했다면 낮에 집에서 잠을 자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 나를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사역해라.” 나는 그때 사람을 믿어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았다.
연세가 드신 후에도 목사님의 책상에는 늘 두꺼운 책이 놓여 있었다.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도 필립 샤프의 『교회사 전집』을 줄을 쳐가며 완독하셨다. 한스 큉의 새로 출간된 두꺼운 책 『교회론』을 꼼꼼히 읽고 강의에 인용하셨다. 앨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를 읽으시고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책을 사서 나눠주셨다. 옥 목사님은 언제나 배울 준비를 하고 있는 분이셨다. 젊은이들보다 더욱 왕성하고 치열하게 배우셨다. 나는 그때 치우침이 없이 바른 판단력을 가질 수 있는 길이 어디서 오는지를 보았다.
그분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직 그분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는데. 좀 더 지켜봐 주시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그래도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 흉내를 내봐야겠다. 그렇게 따라하다 보면 비슷하게 닮아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