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된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이 눈이라고 한다. 시력이 좋은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돋보기를 끼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내가 늙어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설교를 하는 목회자로서 강단에서 성경이나 설교 원고를 읽어야 할 때마다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해야 되면 더욱 실감이 난다. 언젠가부터 나도 할 수 없이 다초점 렌즈를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질어질 했지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익숙해졌다.
리더십의 영역에도 다초점 렌즈가 필요하다. 리더에게는 멀리 있는 것을 보면서도 동시에 가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동시에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한 발자국씩 내디딜 수 있도록 현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멀리 있는 목표만 바라보고 가다가는 바로 앞에 있는 돌에 걸리거나 함정에 빠지기가 쉽다. 반대로 발만 쳐다보고 가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건강한 지도자는 비전과 함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한다.
리더십의 다초점 렌즈를 사용하게 되면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붙잡을 수 있고, 동시에 예견된 함정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초점을 맞추는 리더십은 우리가 가진 선한 의도와 이를 실현시켜주는 다리와 같다. 우리는 자신과 공동체를 향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멀리 지평선에 놓여있는 비전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근에 유명세를 타는 지도자들이 이런 함정에 빠져 쓰러지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모습을 보면서 멀리 있는 것과 동시에 가까이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리더십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목표를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뛰는 목회자일수록 자신의 발 앞에 어떤 함정들이 놓여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지도자들마다 공통적으로 넘어지기 쉬운 함정들로 돈, 섹스, 권력을 든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고 방심하면 여지없이 파고들어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함정들이다. 교회를 이끄는 그 어떤 지도자도 이러한 함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위 성공했다는 지도자일수록 이런 함정에 노출되기 쉽다. 어느 정도 목회가 안정되고 성도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 그에게는 많은 결정권과 권력이 주어진다.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군주와 같은 권력을 같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하는 동역자들이나 당회원과의 격의 없는 대화는 사라지고, 일방적인 지시만 남는 의사결정 구조로 바뀐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지도자로 하여금 함정에 쉽게 노출되도록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지도자들을 이러한 함정에서 구출하려면 지도자 스스로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다.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내어놓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멘토 그룹이 필요하다.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의 삶과 사역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필요하다. 잘못된 모습에 대해 눈을 부라리며 꾸짖을 수 있는 진정한 스승도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개교회주의와 교회성장주의에 빠진 한국 교회에 이런 자정능력이나 치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가 우선순위를 두고 회복해야 할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라면 누구나 발밑에 놓인 함정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므로 지도자 스스로 다시금 제자도에 초점을 맞추어 함정을 피해가며, 실수와 실패를 딛고 일어서 첫사랑을 회복하도록 만드는 제어장치를 두어야 한다. 교회의 조직이 더 이상 노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것에 함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