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오정현 목사 _ 사랑의교회 담임
한때는 전체 인구의 1%에도 못 미치는 기독교인들이 우리 사회의 흐름을 이끌었던 때가 있었다. 이만열 교수의 『한국교회사』에 따르면 100여 년 전인 1905년도 교인 수는 세례교인 9,761명, 학습교인 30,134명으로 예수 믿는 신자는 4만여 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당시 교회와 교인들은 시대적인 어둠을 걷어내고 부패의 고리를 끊는 일에 앞장섰다.
반면에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삶의 열매 없는 믿음, 십자가 없는 기복신앙, 박제된 교리라는 세속화의 삼각파도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들은 고통받는 영혼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어디에서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이러한 원인에 대해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목회자들이다. 교인들을 잘 양육하지 못한 책임, 사회의 어려움을 돌보지 못한 책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목회자의 아집의 장소로 전락시키고, 교회를 분열시킨 책임이 있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처한 상황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교회가 처했던 위기와 비슷하다. 그런데 당시 무기력과 허무주의에 사로잡힌 유럽의 정신을 복음적으로 방어하였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프란시스 쉐퍼 박사다. 그는 스위스 알프스 산 속의 한 자락에 라브리(L?bri, 피난처)를 세우고 당시 허무주의에 빠진 젊은이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면서 복음의 길을 열어 주었다.
한때 쉐퍼의 책을 읽으면서 복음적인 충격을 받아 대학부 동료들과 함께 용산에 허름한 서민 아파트를 빌려서 라브리란 이름을 짓고 4년간 공동생활을 한 적이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꼭대기에서 연탄보일러를 때면서 기도하였던 슬로건이 있다. “하나님, 부족하지만, 우리가 21세기 시대의 허무를 감당하게 하옵소서. 한국 교회의 무너진 제단을 수축케 하옵소서.”
이것은 지금까지도 목회사역의 기도제목이 되었고, 그때 진심으로 기도하였던 젊은이들은 지금 한국 교회의 각 영역에서 목회자, 교수, 기업가, 선교사로 섬기고 있다. 20~30년 전의 일을 지금 다시 생각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심지어 냉소적인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한국 교회가 다시 일어나서 시대적인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오직 복음으로 시대를 품겠다는 불타는 열정의 피를 다시 수혈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두어 달 전에 성인경 목사님이 섬기고 있는 강원도의 라브리에 비신자 30명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독일계 기업의 한국 사원들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들 대부분이 한때는 교회를 다녀 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이 교회를 떠난 주된 이유는 첫째, 예수 믿는 어른들의 형식적인 신앙생활과 비뚤어진 영성에 신물이 났다. 둘째, 교회 지도자들이나 교회 공동체의 운용의 부조리에 크게 실망했다. 셋째, 교회가 경건함을 잃어버린 채 너무 시끄럽고 경박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지금 한국 교회는 단순히 위기 정도가 아니라 큰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단순히 “성장이냐, 정체냐”가 아니라 “성장이냐, 종말이냐”하는 분수령에 서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교회를 떠난 이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이유를 주어야 할 차례이다. 감각적인 분위기를 좇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을 바른 영성과 진리로 깨닫도록 인도하지 못한다면, 교회 내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찾는 평신도들에게 은사대로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지 못한다면, 성도들의 전인격적인 변화와 성장에 올인해야 할 교회 지도자들이 세속적인 즐거움에 길들여진다면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을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복음을 위한 순교적 열정이다. 얼마 전 열린 부산 집회에 20만 명의 신자가 해운대 백사장에 모였다. 복음의 낙후 지역인 부산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간절함이 일궈 낸 자리였는데, 부산 기독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참석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복음의 역사를 가능하게 했을까? 배후에는 복음을 위한 순교적 각오로 똘똘 뭉쳐서 직장이 끝나는 대로 저녁마다 해운데 백사장에서 무릎을 꿇었던 70명의 사역 팀과 이들을 함께 수십 명씩 모여 기도하였던 사람들이 있었다. 시스템도 중요하고, 사람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도 복음을 위한 순교적 열정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70년대에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어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라”는 슬로건을 기치로 한마음으로 기도하였다. 21세기에 한국 교회가 복음을 위한 순교적 열정과 헌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복음의 깊은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받음으로 이 시대와 역사의 길목 앞에 섬광처럼 빛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덧입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