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김명호 목사 _ 국제제자훈련원 대표
미국 남가주대학(USC)의 철학과 교수이자 우리 시대 복음주의의 거장인 달라스 윌라드가 내한했다. 올해 73세의 나이로 한국에 처음 방문한 윌라드 박사는 기독교 변증가로서 젊은 시절부터 복음에 대해서 비 기독교인들과 거침없이 논쟁을 벌여 왔다. 미국의 기독교 잡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는 그를 가리켜 “이 시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이자 가장 탁월한 복음주의 사상가 가운데 한 분”이라고 평했다.
그는 자신의 책, 『잊혀진 제자도』에서 오늘날 ‘제자’가 되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신앙의 형태를 교회가 용인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제자가 사라진 변종 기독교에 대해서 ‘뱀파이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도 서슴지 않았다. 이는 구원에 필요한 그리스도의 보혈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리스도인으로서 순종하며 제자로서 합당한 삶을 사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 속에서 그는 우리 시대 최대의 명제가 제자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프로그램의 디렉터로 일했던 그레그 옥던 목사 역시 오늘날의 제자도를 ‘껍데기 제자도’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교회가 그렇게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한 원인 중 첫 번째로 목회자들의 소명의식을 들었다.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소명을 등한시하고, 몇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제자들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달라스 윌라드나 그레그 옥던의 이러한 진단이 미국 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충분히 동감할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진단이다. 전통적인 교회에 머물고 있는 교회나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어 변신을 꾀하는 교회나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유행처럼 따라서 제자훈련, 셀 교회, 리더십, 영성 등의 이름을 걸고 하고 있는 모든 목회 프로그램도 제자도의 잣대를 가지고 다시 한 번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달라스 윌라드는 참된 제자가 된다는 것은 순종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진지한 추구, 즉 순종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순종하는 제자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윌라드 박사는 이렇게 단언한다. “제자가 아닌 사람들이 외치는 영성은 공허한 것이다.”
주변에 가정교회나 셀 교회를 선언하는 목회자들이 있다. 어떤 목회자는 제자훈련을 넘어서 셀 교회로 가겠다고 선언하고 세미나까지 열었다. 다는 아니지만 이런 변화를 추구하는 목회자들이 종종 빠지는 오류가 있다. 목회자가 제자 삼는 치열한 싸움은 포기한 채 시스템으로 교회를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가르치지 마라. 가르쳐서 삶이 변화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삶을 나누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모토 속에는 피상적인 성경공부에 대한 나름대로의 통찰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제를 강조하다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할 제자로서 기준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천박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포스트모던 시대의 영성을 이야기하다가 단순한 복음의 영력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공동체의 뜨거운 교제를 말하다가 얕고 천박한 제자도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세련된 교회 성장을 말하다가 자신의 야망에 파묻혀 제자의 본질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제자훈련을 말하지만 실상은 피상적인 성경공부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지….
윌라드 박사는 한국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미국 교회는 제자도의 깊이가 너무 얕다. 예수 따라가는 것의 깊은 의미를 잘 모른다. 난 한국 교회에서 소망을 보았다. 제자로서 기꺼이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다음 장의 역사를 위해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가 함께 가기를 원한다.” 그의 말처럼 진정 한국 교회에 소망이 있기를 바란다. 제자됨이 모든 것의 열쇠다. 제자도의 회복, 오늘 한국 교회의 최대 명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