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오정현 목사_사랑의교회 담임목사
글로컬(glocal)이라는 말이 있다. global과 local의 합성어에서 나온 단어로 이것을 목회사역의 관점에서 풀어보면, 사역 자체는 지역적일 수밖에 없지만, 사역을 생각하는 패러다임은 지역을 뛰어넘어 세계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동시대의 사회문화의 사고체계를 뛰어넘어 시대를 변화시키는 패러다임을 소유하는 것은 복음역사에 나타난 핵심사상이며, 이것의 가장 좋은 예가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이다.
고대 그리스문화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보면,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알렉산더 대왕조차도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미야자란 곳에 모셔놓고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제자들을 훈련시킨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동고동락하며 삶을 나누고 가르쳤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동시대의 사회문화를 뛰어넘어 시대를 변화시키는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제자훈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를 자가 진단하는 판별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제자훈련에 예수님처럼 동시대의 관습을 뛰어넘어 시대를 변화시키는 치열한 패러다임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가?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동시대의 모든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 대조되게 하는 것은 섬김의 정신이다. 지난 4월 중순 사랑의교회는 90여 명의 안수집사와 227명의 시무권사, 5명의 시무장로 후보를 추천하여 선출하는 공동의회를 열었다. 참석한 세례교인들의 98% 이상이 후보자들에게 찬성의 표를 던졌는데, 교인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었던 것은 교인들이 후보자 각 사람의 면면을 잘 알아서가 아니다.
그것은 남녀 순장들이 오랫동안 삶을 나누면서 드러난 신앙인격을 토대로 순전한 마음으로 추천하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당회가 기도하면서 심사숙고하여 후보로 내세운 것을 교인들이 기꺼이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이는 제자훈련을 통해 먼저 다가서서 섬기는 것에 전심전력을 다했던 교회의 진정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공동의회를 하면서 교인들과 함께 나누었던 것은 집사, 권사, 장로의 권위는 직분의 권위가 아니라 영적, 소명의 권위이며 한마디로 ‘섬김의 권위’라는 것이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있던 찰스 콜슨은 예수를 만난 후, 교도소 전도자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책에서 미국의회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테레사 수녀가 미국 국회를 방문하여 연설했던 때라고 말하였다. 테레사 수녀가 던진 마지막 말은 참석한 모든 이들의 영혼을 전율시켰다.
“섬기는 자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다! 섬기는 자만이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제자훈련 정신의 맥이다. 좋은 교회는 그 모세혈관까지 섬김이라는 피가 쉬지 않고 돌고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섬기셨기에 그의 몸 된 교회가 이러한 섬김의 정신(Servant Spirit)을 이어간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섬김의 정신을 가장 잘 붙들게 하는 것이 바로 ‘제자훈련’이다. 제자훈련을 통한 섬김의 정신이 교회사역의 끝자락까지 충만할 때 생기는 유익은 창조적 긴장으로 교회가 채워진다는 것이다. 창조적 긴장은 제자훈련을 하는 사역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창조적 긴장이 지도자의 몸과 마음을 붙잡으면 인격에 흐트러짐이 없게 되고, 교회가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되며,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이 높아지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아무쪼록 제자훈련 하는 교회마다 다시 한 번 처음의 섬김 정신을 회복하고, 이로 인해 목회자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창조적 긴장에서 오는 거룩한 고통을 쉬지 않는 복을 누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