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오정현 목사 _ 사랑의교회 담임
목회자들에게 월요일 아침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아마도 타다 남은 재처럼 완전히 에너지가 고갈된 채 깨어날 것이다. 마크 뷰캐넌 목사는 그런 자신을 “나는 월요일마다 타다 남은 나무가 된다. 주일에 열심을 다할수록 월요일에는 더욱 더 바닥까지 타버린 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에 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신없이 사역하는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타다 남은 나무가 아니라 하얗게 타버린 재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얼마 전에 충격적인 이메일을 받았다. 국제 YWAM 창시자이자 총재인 로렌 커닝햄이 선교사 모임에서 했던 설교를 듣고 통절한 심정을 담아 보낸 것이다. 내용의 골자는 “한국 교회 목사들이 너무도 돈을 좋아하고, 너무도 음란하다”는 것이다. 목회를 시작할 때에 고결함과 순결함을 서약하며 하나님 앞에 섰던 목회자들이 이렇게 돈과 음란의 덫에 걸린 이유는 목회사역에서 받는 정신적 중압감으로 인한 심신의 탈진이 결정적인 원인일 것이다.
피곤에는 건강한 피곤이 있고, 파괴적 피곤이 있다. 건강한 피곤은 잠을 자거나 일시적인 쉼을 누리면 회복되는 피곤이다. 그러나 파괴적 피곤은 사역의 중압감과 상처, 분노가 해결되지 않고 누적될 때 찾아온다. 파괴적 피곤은 사역을 파괴적으로 이끄는 주된 원인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두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는 고집이요, 둘째는 중독이다. 고집은 사역의 독재를 의미한다. 중독은 목회자의 경우 흔히 성적 집착으로 이어지는데 결국 칠계를 범하거나, 포르노에 빠지게 된다. 지금 미국의 많은 목사들이 이 문제 때문에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데, 한국 목회자들도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상황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사역의 무게 때문에 앉아만 있어도 어깨가 짓눌리는 느낌은 필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목회자가 경험하는 일이다. 사실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밤낮없이 뛰는 진실한 목회자의 수고와 짐을 누가 다 알 것인가? 한 사람을 온전하게 키우는 제자훈련 목회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쉼 없이 땀과 눈물을 흘리는 목회자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누군들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예수님만이 보여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역을 하면서도 일과 쉼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날 사역자들이 하루 24시간 피곤에 묻혀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사역과 쉼의 경계선이 모호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엄청난 사역의 짐을 지고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예수님은 어떻게 자신의 소명을 다 이루셨을까?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십자가의 큰 짐을 지고 육신적으로 머리 둘 곳도 없는 피곤한 삶을 사셨지만 끝없는 열정과 사랑으로 사람들을 섬기셨다. 그 비결 중의 하나가 누구보다 바쁜 가운데서도 정한 시간을 떼어 하나님과 영교하면서 누렸던 쉼에 있다. 마가복음 6장 31절에서 예수님은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제자들에게 “일에 더 집중하라”고 채근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고 말씀하셨다.
흔히 우리가 쉬지 못하는 이유는 사역의 열매가 우리의 땀과 눈물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웨인 뮬러(Wayne Muller)는 “선한 것들은 지속적인 결단과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최면적인 믿음 때문에 쉬지 못하고, 이로 인해 우리 삶은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쉼의 부족으로 사역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하는가? 쉼도 사역의 하나임을 기억하자. 나는 몸이 경고를 보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에 오른다. 산을 오르내리는 가운데 지친 마음이 회복되면서 창조적인 생각과 사역의 그림이 그려진다. 쉼에는 영적인 쉼, 정서적인 쉼, 육체적인 쉼이 있지만, 우리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정서적인 쉼이다. 어릴 때 꿈을 심어주던 추억의 장소를 찾아간다든지, 청춘기에 자신을 사로잡았던 노래를 찾아 듣는 것만으로도 소진된 정서적 계기판이 충전된다.
온전한 쉼을 경험한 사람만이 온전하게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심신이 지치면 전체를 보는 안목이 생기지 않는다. 유명한 경영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유능한 경영인은 결정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결코 미루지 않으며, 실패한 결정 10개 중에서 여덟 개는 판단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제때’ 결정을 못 내렸기 때문이다”고 했다. 심신이 피곤할 때는 바른 결정은 고사하고 그 결정을 내리는 것조차 피하게 된다. 사역의 바른 판단과 적절한 시기 결정을 위해서도 쉼은 필수적이다.
목회사역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쉼 없이 타다 남은 재가 될 것인가? 쉼을 통해 계속 타오르는 불이 될 것인가? 주의 말씀이 심중에 타오르는 불길이 되었던 예레미야처럼 소명의 불길이 모든 목회자의 중심에서 다시 타오르기를 바란다. “…주의 말씀이 내 속에 타오르는 불길 같아서 내 뼛속에 사무치니…”(렘20:9). 그러나 고갈되고 탈진된 상태로는 타오르는 불이 될 수 없다.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한 생명을 위해 땀과 눈물을 뿌리는 모든 목회자들이 이 여름동안 쉼을 통해, 다가오는 가을 사역에 타오르는 불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