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06년 01월

교회의 관료화를 극복하는 제자훈련

발행인칼럼 오정현 목사 _ 사랑의교회 담임

사역을 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교회가 나무 등걸처럼 굳어지는 것이다. 사역이 본궤도에 오르고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이 안정적인 단계에 이르면 자칫 사역의 초심을 놓칠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목회자의 사고가 경직되기 시작하고 제자훈련 사역마저 관료화될 수 있다.
관료주의는 잡초와 같아서 조금만 방심해도 아무데서나 마구 자라고, 뿌리째 뽑지 않으면 다시 자라나기 마련이다. 우리 인생도 관료화의 덫에 빠지게 되면, 입으로는 좋은 말을 쏟아내지만 실제로는 나쁜 행동을 하고, 살아 있는 듯하나 실상은 영혼의 생명력을 상실한 자가 될 뿐이다.
교회의 관료화가 무서운 것은 초기에는 자각증상이 없지만, 일단 걸리면 완치가 불가능하고, 생명력의 고갈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다가 결국은 그럴듯한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가 관료화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예방이 중요한데, 제자훈련을 통해 정기적으로 진단하는 것만이 효과적인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화를 극복하면 교회가 커지더라도 작은 구조로 크게 일할 수 있고, 하의상달의 시간이 짧아지며, 결정구조(decision line)가 단순해짐으로 교회가 역동화되는 유익이 있다.
병을 치유할 때 대증요법이라는 것이 있다. 표면에 드러난 증세에 대해서 일대일로 대응하여 증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고, 머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뿌리를 그냥 둔 채 나뭇가지만 잘라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뿌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흙을 갈고, 배수를 제대로 하고, 썩은 뿌리는 잘라내고, 벌레가 있으면 박멸하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제자훈련은 교회의 토양을 갈고, 영적인 물줄기를 끌어오고, 그릇된 종교적인 관습은 잘라내면서 뿌리부터 튼실하게 하는 치유책이자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예방책이다.
사역자가 교회의 등걸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적인 긴장이 중요하다. 목회사역을 잘 한다는 것은 영적인 긴장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추스르는 것과 결부되어 있다. 몇 해 전에 발간된 클린턴의 전기를 다룬 조지 스테파노플러스의 『너무나 인간적인』(All Too Human)이라는 두툼한 책이 있다.
스테파노플러스는 불과 32살에 클린턴 당선의 절대적인 공헌으로 백악관 내 서열 세 번째인 홍보수석에 임명되었던 인물이다. 책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클린턴처럼 그렇게 지적이고 자애롭고 애국심이 강하며, 또 자신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너무나도 잘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어리석고 이기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테파노플러스의 말은 훌륭한 지적 능력이 본능의 통제를 보장하지 못하며, 탁월한 역사인식이 반드시 튼튼한 현실상황을 이끄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괜찮은 설교가 설교자의 인격을 보장하지 못하며 목회자의 탁월한 비전이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목회자가 영적인 긴장을 갖지 못하면 개인과 국가에 위기상황을 자초하였던 클린턴의 잘못을 자신과 교회에 반복하게 마련이다.
나에겐 나름대로 관료화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을 추스르는 원칙이 있다. 그 중 하나는 교회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개척교회 목사의 심정으로 뛰는 것이다. 그럴 때 초심을 잃지 않을 수 있고, 타락하지 않을 수 있다. 교회가 커질수록 목회철학을 늘 새롭게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의교회의 경우 목회철학을 갱신하고 영적 긴장을 유지하는 비결 중의 하나는 담임목사가 원로목사인 옥한흠 목사님과 끊임없이 제자훈련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데 있다. 일년에 평균 국내에서 세 번, 해외에서 한 번,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를 갖게 된다.
그러니까 최소한 1년에 네댓 번은 이런 세미나를 하면서 옥 목사님과 전후임 사이에서 필요한 정(情)도 주고받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목회비전을 같이 주고받는 것이다. 시스템적으로 일년에 여러 차례 이러한 시간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옥 목사님과 나와의 관계는 또 다른 형태의 세습이라고 말하기에, 어떤 세습이냐 물었더니 “교회의 심장이식을 통한 세습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장이식이라고 말할 정도로 늘 몇 달에 한 번은 마음을 터놓고 교회사역의 본질과 영적 재생산과 소명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교회가 관료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목숨 걸고 계속 체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역마다 네트워킹 되어 있는 칼넷(Cal-Net)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가 지역 모임을 통해서 상호 크로스체킹을 하는 것은 목회비전을 다듬고, 영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사역은 안 돼도 힘들지만 잘 돼도 힘든 것으로 지상에서 가장 유니크한 것이다. 아무쪼록 사역이 잘 될수록 영적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진액을 쏟는 제자훈련을 통하여 교회의 관료화를 극복함으로 2006년 새해에도 사역의 모든 한계를 돌파하면서 은혜의 탄탄대로를 질주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