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20년 11월

코로나 시대를 지나는 두 가정: 아비나답의 집 vs. 오벧에돔의 집

발행인칼럼 국제제자훈련원 원장 오정현

‘코로나 블루’(blue, 우울)를 넘어 ‘코로나 앵그리’(angry, 분노)가 사회 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공동체는 아마 가정일 것이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자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 간 결속력이 단단해지는 가정이 있는 반면, 피로감으로 파열음을 내는 가정도 있다. 

전례 없는 코로나19 폭풍은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가정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 더욱 명확하게 보여 줄 것이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7). 

칠흑처럼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키를 잡은 선장의 손이다. 성경은 위기의 때에 두 가정의 커튼을 열어, 가장의 선택이 어떻게 그 가정을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는지를 모든 세대에게 경고한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빼앗긴 언약궤는 오랫동안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렀다. 그런데 성경에 오랫동안 언약궤를 모셔 둔 그가 복을 받았다는 내용이 없다. 오히려 아들 웃사가 율법에 어긋난 행동으로 죽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누구도 언약궤를 모시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에 오벧에돔은 목숨을 걸고 언약궤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갔고, 궤가 그 집에 있었던 석 달 동안 그의 집과 모든 소유에 큰 복이 임했다. 

성경 기자는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그냥 있었다고 하지 않고, “그의 가족과 함께”(대상 13:14) 있었다고 기록한다. 오벧에돔은 언약궤가 들어오자 온 집안 식구들과 기쁘게 한마음으로 정성껏 언약궤를 모신 것이다. 

무엇보다 오벧에돔은 물질의 축복을 넘어 영적 후손의 복을 누렸다. 실제로 오벧에돔의 아들들과 후손들은 문지기 24반열 중에서 13반열를 차지한다. 성전을 지키는 문지기로서 오벧에돔의 가문에 속한 자들은 62명이나 됐다.

오벧에돔은 심지어 왕인 다윗조차 갖지 못한 통찰력을 가졌다. 하나님의 궤는 받을 자격이 없는 웃사 같은 사람에게는 저주가 될 수 있지만, 받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에게는 축복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후 2:16)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거룩한 임재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된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던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자 그의 집안이 복을 받았다. 

여기서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오벧에돔은 문지기로서 문만 지킨 것이 아니라, 문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에게 받은 복을 나누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활짝 웃으면서, “오늘 주님의 축복을 받으세요”라고 덕담도 하고, ‘성전에 오는 사람마다 제가 받은 축복을 받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폭풍을 만난 바다 위를 신앙으로 항해하는 비결이 있다. 아비나답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관심도 없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자녀에게 가르치지도 않았다. 반면 오벧에돔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예배했고, 자녀들에게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쳤다. 코로나19 사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위기의 순간에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했던 오벧에돔의 가정처럼, 환난의 시대를 지나는 모든 믿음의 가정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