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밑바닥에는 좁아터진 순혈주의, 아집의 유교주의, 맹신적 지역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뒤틀린 마음을 갖고는 복음으로 세상을 섬길 수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위해서는 원수라도 가슴에 품고 손을 잡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엄한 말씀이다. “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 19:24~25).
이스라엘 역사에서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삼았고,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다시피 파괴한 원수와 같은 나라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앗수르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세계 중의 복이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상식이나 성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복음의 관점,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관점, 전 지구적인 관점으로만 가슴에 담을 수 있는 말씀이다.
기독교 신앙은 처음 믿을 때부터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는 복음적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기초한다.
한국 역사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로 올라간 것이 ‘한글’이다. 세종대왕을 통해 만들어진 ‘한글’은 원래 띄어쓰기 없이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였다. 한글 로 기초가 마련됐지만, 사람들은 한글을 ‘언문’이라고 해서 업신여기는 등 국지전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135년 전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옴으로써 한글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올라갔다. 선교사 ‘존 로스’ 목사님이 한글을 영어처럼 띄어쓰기를 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도록 해 ‘한글 성경’ 보급에 힘쓴 것이다. 이렇게 정리된 ‘한글 성경’을 통해 한글이 새로운 차원으로 성장하게 됐다.
29년 전에 중국 서안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서안에는 비석으로 숲을 만든, 중국의 사적지 중에 하나인 ‘비림’이 있다. 중국은 당나라 천하 제국의 이념과 사상을 돌에 새겨서, 돌 비석을 곳곳에 세워 사람들이 보고 내용을 외워 선포하든지, 탁본을 떠서 전하든지 하는 일종의 ‘의식화 작업’을 했다. 그런 ‘의식화 작업’을 통해 중국을 움직인 것이다. 좋고 나쁨을 떠나, 표준을 정하고 사람들의 눈높이가 그 표준을 따라가도록 한 것이다.
한국 교회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하나님 나라와 꿈’을 위해 거룩한 의식화 작업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제자훈련의 국제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새로운 영적 집현전’, 한글과 같은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좁디좁은 마음을 어떻게 극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제자훈련의 국제화는 바로 우리의 복음을 모든 지역과 사람에게 적용해 원수 같은 애굽이나 앗수르와도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게 하는 ‘복음의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치열하고도 소모적인 갈등을 보면서 어느 때보다도 골짜기를 평지로 만들고, 광야를 샘으로 만드는 복음만이 이 사회의 소망임을 다시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지역을 넘어 진정 애굽과 앗수르도 품게 하는 복음의 인애와 너그러움으로 호흡하도록 전력해야 할 때다. 큰 것을 본 자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원수 같은 애굽과 앗수르를 품는 복음적 글로벌 스탠다드와 마인드가 없으면 내게 상처 주고 피 흘리게 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