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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언젠가부터 교회와 성도들이 신앙의 냉소주의에 젖어 있다. “기도해도 안 되더라. 예배를 드려도 달라지는 것이 없더라.” 이런 말들이 퍼지면서, 냉소주의는 무서운 패배주의로 진화해 교회의 뿌리까지 침투하고 있다. 소위 교회 전문가를 자처하는 어떤 이들은 점점 더 교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교회의 미래가 어두울 것이라는 통계를 내민다. 심지어 역사적인 증거까지 함께 내밀면서 그럴듯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신앙의 냉소주의를 깨뜨리는 길은 복음의 희락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가나의 혼인 잔치가 보여 주듯이 교회는 시작부터 잔치였다. 잔치는 기쁨과 기대, 흥겨움과 설렘이다. 성장하는 교회에 가 보면, 예외 없이 예배가 정시보다 1~2분 더 빨리 시작된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에 대한 터질 것 같은 기대감으로 기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예배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완전하심을 즐기는 향연”이라고 말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잔치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교회 내에 복음의 희락성, 복음의 잔치성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이것이 지난 40여 년의 목회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예배에 목숨을 걸었던 것도 이를 위함이다. 그러나 많은 교회의 예배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잔치가 아니라, 장례식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예배의 장엄함,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되는 쉐키나의 영광은 결코 장례식의 그것과 동질일 수 없다.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예배의 엄숙함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예배의 희락성과 잔치성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예배를 비롯한 교회의 모든 사역은 잔치가 돼야 한다. 목회자의 교회 사역은 이를 위한 것이다. 교회의 모든 사역은 뼛속부터 잔치임을 성도들의 몸에 새겨야 한다. 제자훈련도,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이나 행사도 이를 위한 것이다. 이런 잔치의식, 복음의 희락성이 어릴 때부터 새겨진 사람은 우울증이나 냉소주의가 발을 붙일 틈이 없을 것이다.
지난 사역에서 복음의 희락성으로 영혼을 춤추게 했던 때를 돌아보았다.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즐거움과 기쁨을 갖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서 어린 시절 성경암송했던 때의 설렘과 흥분이 되살아 났다. 이를 위해 사랑의교회는 새해부터 ‘토요비전새벽예배’때 성경암송을 시작했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경암송”이라는 구호로 시작해 매주 전교인이 성경을 한 구절씩 외운다. 열두 구절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외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토요비전새벽예배’때 함께하는 성경암송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성경암송을 기쁨으로 여기고, 함께 암송하는 시간을 설렘으로 기다리는 것은 복음의 희락성을 회복하는 작은 시작이다. 어릴 때부터 복음의 희락성을 몸에 새길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교회가 성도들에게, 사역자가 성도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영적 선물이 아닐까!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시 118:15~16). 이 말씀이 사역과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체화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