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21년 11월

어머니를 그리며

발행인칼럼 국제제자훈련원 원장 오정현

어머니가 소천하시기 전날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오전에 어머니께서 세상과 이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왜 그렇게 새벽까지 심신이 고통으로 뒤척였는지 깨달아지며 가슴이 메어 왔다. 이틀 전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 입원실을 찾았을 때, 비록 어머니의 몸은 쇠약했으나 아들의 손을 잡고 크게 즐거워하셨다. 그러나 적어도 몇 년은 어머니와 더 함께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은 인간의 미진한 생각에 불과했다.

어머니는 사모의 일생에 대해 이론적인 교훈을 넘어 삶으로 보여 주셨다. 60여 년 전 소위 달동네에서 개척 교회를 시작한 사명감에 불타는 목사의 아내가 보낸 하루하루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부친의 뜨거운 사명감의 커튼을 열면 어머니의 한없는 곤고함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역이 극히 어려웠을 때는 부친과 손잡고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찬양을 하면서 함께 이겨 내셨다. 힘들어도 부부가 하나 되면 극복할 수 있음을 당시 부모님의 모습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부친께서 복음의 열정으로 교인들과 이웃에게 자신을 내놓을수록, 찢어지는 가난함은 오로지 어머니의 몫이었다. 지금도 잔재가 있지만, 반세기 전 사모의 역할은 오직 남편의 사역과 교회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었다. 당시 사모는 세상에서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고,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뿌리 깊은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네 자녀의 교육과 생계는 현실이었다.

어머니는 한때 낮에는 부친과 심방을 하고 저녁에는 교인들의 눈을 피해 고무 공장에 나가서 일을 하셨다. 지금의 내게는 어머니의 살과 피, 눈물과 땀이 의연하고도 깊게 흐르고 있다.

어머니는 죽음까지 선물처럼 주시고 가셨다. 그날 아침에도 어머니는 가족과 안부 대화를 나누신 후, 한두 시간이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다. 한 주간 내내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차례로 보신 후 그토록 사모하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기꺼이 천국으로 향하셨다. 이렇게 어머니는 사랑하는 자녀의 슬픔을 오히려 위로하셨다.

어머니는 며느리들을 만날 때나 전화 통화할 때도 그 무엇을 하라거나 하지 말라는 훈계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먼저 전화를 하시는 것도 드물었고, 그냥 안부 전화를 드리면 그것으로 기꺼워하셨다. 그저 언제나 기도하셨을 뿐이었다. 그래서 며느리들은 어머니를 천사처럼 여겼고, 눈가로 흐르는 슬픔은 그만큼 더욱 깊었다.

지금도 “어머니” 하고 부르면 여전히 격렬한 전류처럼 아프고도 뜨거운 가슴 먹먹한 통증이 온몸을 뚫고 지나간다. 일생을 자녀들에게 몸으로 기억되는 신앙을 주신 어머니,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더할수록 강처럼 깊은 신앙으로 자녀들의 길이 되신 어머니. 나는 남은 자로서 어머니가 남긴 믿음의 유산을 붙들고, 주신 소명을 감당할 것이다.

어머니를 그리며 신앙의 수선대후를 다시 생각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6개월 이상 현장 예배에 참석하지 못해 소위 전도 대상자가 돼 버린 길을 잃은 성도들, 1 년 이상 현장 예배에 참석하지 못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분명하고도 선명한 복음을 기필코 다음 세대에 계승해야 한다. 깊은 위로로 모친상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의 사랑과 격려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