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2013년 12월

과정의 은총을 사모하자

발행인칼럼 오정호 목사_ 전국 CAL-NET 대표

제자훈련 목회는 정도(正道)를 걷는 목회를 의미한다. 정도를 걷는다는 말은 치열한 훈련과정을 걷겠다는 의미다. 목회를 하다 보면 ‘과정생략’의 유혹이 여기저기에서 손짓하기 마련이다. 모든 목회자가 예외 없이 직면하는 유혹 가운데 가장 집요하게 달려드는 것이 ‘단기간 내의 교회부흥과 성장’이다. 누구라도 쉽게 이런 유혹을 떨쳐버리지는 못한다. 왜 ‘과정생략’과 단기간 내의 ‘수적 성장’이 유혹이 되는가?
그 이유는 우리나라 목회자들의 DNA 가운데 특이하게 대박을 터뜨리고자 하는 자기 야망이 있기 때문이다. 목회를 대박을 터뜨려야 하는 비즈니스로 격하시킬 때, 그 능력의 증명이 ‘과정생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한다는 논리는 건강한 목회자가 결코 채용할 수 없는 자본주의에 경도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잠재된 것이 ‘성공을 향한 조급증’이다. 이 유혹을 떨쳐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주님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의 시간표에 사인해 주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주님의 뜻과 시간에 겸손하게 복종하기로 충성을 결단하는 마음의 전환에 있다.
어떤 이유로 제자훈련이 과정의 은총을 경험하는 현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첫째, 예수님께서는 제자훈련의 현장에서 과정을 존중하셨다. 능력이 충만하신 예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 말썽꾸러기인 제자들과 작심하고, 여러 해를 함께 보내셨을까? 그냥 우리식 대로 제자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한 명씩 안수하며 속성으로 제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제자훈련의 능력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으시고, 제자들과 씨름하시며 그들을 인격적인 존재로 존중해 주셨다. 훈련의 마에스트로이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몰아가지 않으시고 여러 과정과 방법을 통해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를 원하셨다.
때때로 우리는 훈련 현장에서 예수님보다 앞서려고 하는 주제넘은 일을 일으킨다. 인격의 세워짐과 인간관계의 성숙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변화는 거기에 합당한 값을 반드시 요구한다. 예수님께서는 속성과 제자훈련 단기 코스를 우리에게 결코 보여주시지 않았지만, 우리는 열매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제자훈련을 속성으로 마치려 한다.
둘째, 사도 바울의 사역이 과정의 은총을 보여준다. 주님을 만난 이후 사도 바울은 과정을 생략하라는 달콤한 소리에 결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바울은 그가 가진 학문적 배경이나 혈통적 배경 그리고 바리새주의자로서의 특권에 몰입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기 객관성을 가지고, 주님의 훈련시간표에 자신을 맞추기를 갈망했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 도상의 극적인 경험과 분명한 소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사역자의 길로 뛰어들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아라비아로 내몰았고 지역 교회인 안디옥교회에서 무명의 사역자 시절을 묵묵히 감당할 수 있도록 했겠는가? 그 이유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가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따르며, 전파하는 제자로서 영적인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에 새겼기 때문이리라.
바울은 주님 앞에서 기본기를 다지는 과정을 어설프게 보낸다면, 자신이 양육하고 훈련하는 제자들 역시 부실한 열매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 “성경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ible)는 구호용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야 하는 삶의 실제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눈이 멀어 자신의 장자권을 생각 없이 야곱에게 팔아넘겼던 것처럼, 목회자로서 ‘속성 열매’의 유혹에 흔들려 ‘과정생략’의 어리석음을 범할까 두렵다. 제자훈련 목회는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훈련과정의 은총에 얼마나 자신을 굴복시키는지에 달려 있다. 비록 우리 모두 부족한 인생이지만, 주님의 은혜에 이끌려 제자훈련의 정도를 걷는다면, 주님께서 예비하신 과정의 은총은 물론, 예기치 않은 보너스의 은혜도 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