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김명호 목사_ 국제제자훈련원 대표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CAL세미나)가 시작된 1986년부터 지금까지 형제 교회와 동역자들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축복이었다. 96회의 CAL세미나와 92번의 체험학교를 섬기면서 제자훈련의 목회철학을 공유하고, 수많은 조국 교회와 선교지마다 평신도들이 깨어나 교회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지켜봤다. 내 평생을 들여도 아깝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역을 접고, 국제제자훈련원을 떠나게 되어 마지막 칼럼을 통해서 인사를 드린다.
옥한흠 목사님께서 소천하시기 직전부터 나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지금까지 조국과 세계 교회에 목회의 선도적 역할을 해온 제자훈련 사역이 하나의 기념비(monument)로 남지 않지 않고, 지속해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운동(movement)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대형 교회 하나가 주도해가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같은 뜻을 품고 있는 여러 교회가 함께 힘을 합해 풀뿌리 구조를 가져야 이 사역이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고 거룩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그래서 제자훈련에 헌신한 여러 동역자들과 교회들이 함께 국제제자훈련원의 운영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로 재정비돼야 한다는 생각을 사랑의교회 당회에 여러 차례 피력했지만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2011년 말 당회에 사의를 표했다. 현재의 구조 속에서 사역을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너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사랑의교회는 당회와 제자훈련에 헌신한 교회의 지도자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국제제자훈련원이 독립된 구조 아래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3개월도 안 되어 휴짓조각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의교회의 불미스러운 사태로 인해 CAL세미나는 개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국제제자훈련원의 사역은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제자훈련 사역에 헌신해온 동역자 여러분과 함께 나눈 소중한 세월을 되돌아본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무작정 시작한 1986년 첫 번째 CAL세미나. 숙소를 구하지 못해 반도유스호스텔과 근처 모텔들을 전전하면서 세미나를 치렀던 시간들. 제자훈련 교재 집필에 몰두하다가 과로로 쓰러진 옥한흠 목사님. 하지만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목회자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눈물로 기도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치렀던 일본목회자 세미나. 20주년을 맞아 방방곡곡에서 올라온 제자훈련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과 함께 안성수양관 마당에서 아름다운 뱅큇을 즐기던 어느 초여름 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밤새도록 잠 못 자고 벌벌 떨며 치러낸 브라질 CAL세미나. 보석과 같이 소중한 순간들이 기억난다.
되돌아보면 이런 순간마다 내 곁에는 귀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다. 목회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힘을 모아주신 CAL-NET의 소중한 동역자들. 사역이 펼쳐질 때마다 감동적으로 섬겨주신 섬김회 권사님들과 칼라(Color)의 동역자 한 분 한 분에게 마음 깊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동시에 부탁을 드린다. 이제는 제자훈련의 풀뿌리 네트워크가 필요한 시대다. 제자훈련으로 다져진 다양한 목회현장을 공개하고, 주변에 있는 동역자들을 격려하는 목회자들의 연대가 절실한 때다.
이를 위해 CAL-NET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제는 대표를 비롯한 임원들의 임기도 정하고, 실제로 시간을 내어 뛸 수 있는 젊은 목회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평택대광교회나 고성 삼산교회와 같이 지역별로 제자훈련 하는 다양한 목회현장을 공개하며, 제자훈련 정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세미나를 지원해야 한다. 형식 중심적인 조직이 아니라 사역 중심적인 조직으로, 다양한 현장에서 제자훈련 사역에 헌신하는 동역자들을 돕고 세울 수 있는 구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하나의 지역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 돌아가, 제자훈련의 한 사람 철학을 실천하려고 한다. 나 역시 제자 삼는 목회의 본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며 함께 동역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