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왜 제자훈련을 해야 할까? 너무도 당연하지만 끊임없이 반추하는 질문이다. 이번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열린 제98기 미주 CAL세미나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는 내내 마음을 붙든 질문이기도 하다. 많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복음의 전사로 훈련되기 위해서, 작은 예수가 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그런데 이 모든 대답을 하나로 정리해 보면,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 이유는 ‘제물 되는 삶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제물 되는 삶’이라는 말은 언제나 내 마음을 격동시킨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은 영리하고 힘이 센 동물이 아니라, 어리석고 우둔하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양이라는 사실은 제자훈련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기적이다.
이리는 아무리 힘이 세고 영리해도 절대로 하나님의 제물이 될 수 없다. 오직 어린 양만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물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제자훈련이 무엇을 목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힘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지성을 키우는 데 시간을 쏟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제자훈련은 궁극적으로 제자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 제물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 나는 제자훈련의 목적이 그리스도인의 무력성을 체질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의 무력성은 전적으로 예수님이 없을 때에 오는 상태를 말한다. 제자훈련이 심화될수록 제자훈련을 잘 받았다는 징표는 그리스도인의 무력성이 얼마나 상시로, 장소에 상관없이 나타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의 제자훈련은 세상의 훈련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세상의 훈련이 근육을 강화하고, 체질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자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성경의 제자훈련은 세상의 근육을 약화시키고, 체질을 완전히 예수님 의존적으로 만들어서 예수님이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오직 예수님만 의존하는 존재로 만드는 훈련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기도 하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이처럼 예수님 없이는 양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살아갈 능력조차 없이 만드는 작업이 바로 제자훈련의 궁극적 본질이다. 왜 예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무력한 체질로 만드는 것이 제자훈련의 절대적 본질일까? 왜 제자훈련을 통해서 거룩한 무력성을 체질화하는 것이 중요할까? 왜냐하면, 그럴 때에만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기의 상황에 명확히 드러난다. 완장이 돼버린 제자훈련은 위기의 순간, 옛날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 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룩한 무력감이 체질화된 제자훈련은 위기의 순간, 하나님 앞에 제물 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제물 되는 삶! 이것이야말로 모든 제자훈련의 알파와 오메가가 돼야 한다. 머리 좋고 힘이 센 이리를 제물로 받지 않으시고, 어리석고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양을 제물로 받으시는 하나님의 방식이야말로 기독교의 기적이요, 제자훈련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