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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오정현 원장_ 국제제자훈련원
30년 이상 제자훈련을 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각인되는 것은 ‘훈련의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훈련받는 것이 오히려 위험해진다’라는 사실이다. 훈련이 어떤 수단이나 방법으로 전락하는 것은 훈련의 동기가 잘못됐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우리가 제자훈련을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빚진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기가 잘못된 훈련,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진 훈련은 21세기 바리새인, 경직된 율법주의자를 만들고, ‘자기의’로 치장한 사람을 만들 뿐이다.
제자훈련의 오염된 동기, 변질된 동기를 막고 생명을 귀히 여기고 공동체를 살리는 원천이 되는 길은 하나다. 어떻게 하든지 훈련생의 심령을 은혜의 각성으로 이끌어야 한다. 교회 내에는 은혜의 각성이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부류가 있다. 성도의 마음이 은혜로 각성된다는 것은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경험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대학생 때 예수를 믿었지만 그저 합리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세계관 속에서 지적으로 예수님을 탐구하고,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는 신앙인이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지성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지 18개월쯤 지났을 때, 옥스퍼드에서 좀 멀리 떨어진 위담 숲에서 빌립보서를 읽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는 말씀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 3:8)는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날 아침 나는 거룩한 야망을 가졌다. 세상 어느 것도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비할 수 없다는 바울의 확신을 나도 갖고 싶었다.” 그의 심령이 은혜로 각성이 된 것이다.
제자훈련의 처음과 끝은 은혜의 각성이 돼야 한다. 날마다 예수님을 닮고 싶은 거룩한 야망을 일깨우는 것이 제자훈련의 목표가 돼야 한다. 제자훈련의 프로그램과 교재, 인도가 좀 부족하더라도 훈련생 하나하나를 은혜의 각성을 경험하는 자리로 이끈다면 그 훈련은 걱정할 것이 없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행하는 많은 훈련이 적지 않게 문제를 일으키고 변질돼 후유증을 남기는 이유는, 훈련이 하나님의 은혜의 각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찬송하고, 말씀읽고, 기도하고, 과제물을 하는 제자훈련의 목표는 훈련생을 하나님의 은혜에 각성된 심령이 되도록 그들의 마음 밭을 기경하는 것이다. 은혜의 각성을 경험하고 사는 사람은 자신의 일생을 신앙훈련의 과정으로 삼고, 시간이 지나도 언제 어디서나 자신과 공동체를 예수의 향기로 채우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이다.